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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정희진의 어떤 메모] 외로운 대중의 사랑

등록 2017-08-25 21:13수정 2017-08-26 02:15

[토요판] 정희진의 어떤 메모
<스타>, 에드가 모랭 지음, 이상률 옮김, 문예출판사, 1992

지금 한국 사회에서 최고의 스타는 누구일까. ‘이니’(문재인 대통령)가 아닐까. 그렇다면, ‘스타’(les stars)를 우리말로 어떻게 옮겨야 할까. 에드가 모랭의 <스타>는 ‘인기인’이라고 했지만 사람은 별이 아니므로 쉽지 않은 번역이다. 게다가 대통령은 아주 현실적인 사람이다.

모랭의 스타는 영화라는 ‘비현실’에 존재했다. 우리는 그/녀가 우주에서 반짝이는 천체가 아니라 사람이라는 것을 안다. 대중은 그 불일치를 즐긴다. 자연인, 직업인으로서 배우, 극중 역할은 별개지만 관객은 자기 마음대로 현실을 만들고 열광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나는 실제 인물 체 게바라를 좋아하지 않지만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에서 체 역할을 맡은 멕시코 배우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은 완전 사랑한다. <이 투 마마>부터 다 봤다. 나에게 체는 베르날이다.

대사인지 실제인지 모르겠지만, 이재용 감독의 영화 <여배우들>에서 김민희는 “도금봉이 누구야?”라고 묻는다. 윤여정과 고현정은 “너는 여배우가 도금봉도 모르냐”고 핀잔을 준다. 시네필로서 나는 분개했다. 도금봉을 모르다니! 찰턴 헤스턴은 스타가 아니라 미국무기협회 회장이었다. 나쁜 놈이다. 나와 동갑인 필립 시모어 호프먼이 죽은 후 내가 너무 오래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이야기들은 ‘합리성’ 없는 나만의 환상의 세계다. 사랑할 수 없는 사랑에 몰두하면, 고달픈 삶을 잊을 수 있다. 토니 스콧 감독의 <팬>(The Fan)은 인생에 낙이 없는 세일즈맨 로버트 드니로가 메이저리그 스타 웨슬리 스나입스의 팬에서 스토커가 되는 스릴러다. 드니로는 말한다. “나는 루저지만 내겐 야구가 있고 개막일은 언제나 온다.” 나도 똑같다. 나는 비록 외롭지만 영화가 있고 개봉하는 영화는 언제나 있다.

프랑스 철학자 에드가 모랭이 <스타>를 처음 썼을 때가 1957년이다. 내가 읽은 3판은 1972년에 출간됐다. 이후 미디어와 자본주의는 몇백년을 압축하여 달려왔다. <스타>를 지금 읽으면 단순한 내용이지만 대중문화 연구의 걸출한 시작이었다. 이 책은 현대 대중문화를 고대성과 현대성의 결합이라고 본다. ‘신으로서의 스타’와 ‘상품으로서의 스타’, 영화의 기능인 신앙(동일시)과 오락, 물신의 죽음과 불멸. 스타와 영화는 잊혀져도 영원히 보존된다(1장).

버나드 쇼의 말이 책의 요지다. “야만인은 나무와 돌로 된 우상을 숭배하고, 문명인은 살과 피로 된 우상을 숭배한다.” 이제는 반만 맞는 말이다. 현재 지구인은 나무와 돌을 포함, 모든 것을 숭배한다. 스타는 반신(半神)이 아니라 대중과 소통한다. 스타는 소비되고 질시의 대상이 되었다. 오로지 돈을 벌기 위해 작정한 사람들이 스타를 잔인하게 짓밟을 수도 있다. ‘타진요’는 인터넷 기반 혐오 산업과 인간성의 종말을 보여주었다.

지그문트 바우만의 지적대로, 자본은 대중에게 이케아 가구와 페이스북이라는 디아이와이(DIY) 장난감을 쥐여주었다. 에스엔에스(SNS)는 스스로를 스타로 만들 수 있다. 악명만으로도 셀럽이 될 수 있는 시대다. 스타는 사회 전 영역으로 확대되었다. 영화배우와 가수에서 정치인, 소설가, 학자, 사회운동가, 온라인 주민들, 연쇄살인범까지 망라한다. 모든 곳이 스크린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니’의 팬덤(fandom, ‘dom’은 왕국이라는 뜻)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산다. 그들의 사랑은 문재인 대통령의 든든한 정치적 자산이다. 문제는 정치 지도자가 연예인화되고, 지지자가 그를 맹목적으로 사랑할 때다. 팬심과 정치적 지지는 다르다. 지나친 염원과 비판 세력에 대한 적대감이 사랑의 엔진이 되면, 그들이 사랑하는 정치인의 지지 기반을 오히려 흔드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정희진 평화학 연구자
정희진 평화학 연구자
사도 바울처럼 사랑하는 대상을 위해 자신을 끊임없이 변화시키는 이는 드물다. 하지만 적어도 자기 사랑을 위해 타인을 배척해서는 안 된다. 미디어가 모든 것을 삼키는 시대에 국민과 팬의 경계는 흐려졌지만, 정치인의 팬덤에도 윤리가 필요하다. 스타는 꿈의 양식(174쪽)이지만 대통령은 현실의 양식이기 때문이다.

정희진 평화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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