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진 여성학 강사
[토요판] 정희진의 어떤 메모
<군대를 버린 나라-코스타리카 사람들의 평화 이야기>
아다치 리키야 지음, 설배환 옮김, 2011, 검둥소 전쟁과 평화. 이 단어들이 늘 붙어 다니는 이유는 둘 다 뜻이 모호하기 때문 아닐까. 같이 써 놓으면 인식 가능할 것이라는 착각. “전쟁은 안개와 같다.”(Fog of War) 클라우제비츠가 시작해서 로버트 맥나마라가 답한 전쟁의 의미다. 불확실하고 인과관계는 엉키고 너무나 복잡하고…를 넘어, 안개처럼 거의 보이지 않는다(알 수 없다)는 뜻이다. 전쟁도 모르겠는데 평화는 얼마나 알기 어렵겠는가. 이 글의 제목은 저자가 코스타리카 여행 중 외무부 직원에게 들은 말이다.(27쪽) 빈곤과 고립이 평화의 비밀이라니! 코스타리카는 실질적, 합법적으로 군대가 없는 지구상 유일한 국가다. 사람들은 그럴 수 있는 이유를 알고 싶어 한다. 왜 그렇게 됐냐, 어떻게 그게 가능하냐, 심지어 사실이냐? 책은 스페인 식민지 시대 이후 코스타리카 역사와 문화를 성실히 설명하고 있지만, 아마 대부분 ‘대한민국 국민’들에게는 지구 밖 세상처럼 느껴질 것이다. 나는 이유를 궁금해하는 대신 다른 방식으로 생각해보기로 했다. 빈곤과 고립이 평화의 조건인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비(非)평화가 왜 발생하는가. “잘살아 보세~” 사고방식 때문 아닌가? 코스타리카 사람들은 영원한 경제 성장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군대가 없는 나라라고 해서 신기하거나 ‘좋은’ 문화만 있는 것은 아니다. 다른 말로 하면, 어느 사회나 코스타리카처럼 될 수 있다는 얘기다. 남성성과 군사주의는 상호 지지한다는 것이 전통적 이론인데, 이 나라는 군사주의는 없지만 ‘마치스모’(마초) 문화의 원산지로 남성의 폭력, 무책임, 우월의식이 유별나다. 2000년 태어난 유아 가운데 50% 이상이 부친이 없어, 빈곤 모자가정 문제가 심각하다.(‘물론’, 여성이 아버지를 지명하면 국가가 무료로 디엔에이 검사를 해준다.) 그래도 모든 국민이 군대가 없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갖고 있으며 코스타리카는 환경·인권·평화 선진국의 정책과 이미지를 전세계에 선전하여 이를 방위력과 외교력으로 전환시켰다. 군대가 없기 때문에 오히려 침략당할 가능성이 적다. 유명한 비무장 국가를 침략한다면 국제사회의 반응이 어떻겠는가. 이것이 바로 무기 없는 국방의 힘이다. 약자 혐오는 작금의 자본주의는 물론 이제까지 인류(서구) 역사를 유지시켜온 기반이다. 빈곤과 고립이 평화의 본질에 가장 가까운 이유다. 영화 <묵공>(墨攻)의 문법이라면, 유랑. 사람들의 바람과 달리 선함과 강함, 힘 있는 정의는 양립할 수 없다. 선과 정의는 객관적인 가치가 아니라 저마다 생각이 다른, 경쟁적인 담론이기 때문이다. 전쟁은 자신의 옳음을 증명하려는 대표적 행위다. (“정의의 전쟁”, “성전”…) 그러니 “선한 자보다 약한 자가 되어라.”(니체) 무력과 군대 비판은 평화의 관심사가 아니다. 다만 이는 특정한 사고방식 안에서만 설정 가능한 의제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사회는 남성을 인간의 모델로 삼고 이들을 ‘보호자’로 상정, 시민권의 위계를 만든다. 하지만 실제 폭력 행위자는 이들이다. 보호자보다 피보호자인 ‘비(非)국민’-노인, 아픈 사람, 장애인, 어린이, 타인을 보살피는 이들-이 훨씬 많다. 이들의 주요 관심사가 대결, 경쟁, 전쟁일까? 어떤 인간을 보편적 인간으로, 어떤 삶을 인간의 조건으로 상정하고 사유의 기반으로 삼을 것인가에 따라 평화의 개념은 달라진다. 미국과 북한만 외국이 아니다. 지구상에는 다양한 사회가 있다. 책이 전하는 몇가지 감동. 코스타리카 교도소는 담장이 없다. ‘탈출 가능한 철조망’은 있다. 교도 행정의 목표는 수감자가 자신에게 어떤 권리가 있는지 알게 하는 것. 갱생의 첫걸음은 자기 인식, 자기 평가, 자기 긍정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재범률은 20%에 불과하다. 보험료를 못 낸 사람이나 ‘불법체류자’도 국립 병원에서 무료로 치료해준다. 몬테베르데 자연보호 구역에는 포식자를 피해 움직이지 않는 나무늘보원숭이가 있다. 먹는 시간 외에는 정말 움직이지 않아서 ‘진화의 낙오자’로 불리지만, 움직이지 않음이 이 동물의 자연에 대한 적응이다. 참, 이 나라는 국회의원의 연속 재선도 금지하고 있다. 정희진 여성학 강사
아다치 리키야 지음, 설배환 옮김, 2011, 검둥소 전쟁과 평화. 이 단어들이 늘 붙어 다니는 이유는 둘 다 뜻이 모호하기 때문 아닐까. 같이 써 놓으면 인식 가능할 것이라는 착각. “전쟁은 안개와 같다.”(Fog of War) 클라우제비츠가 시작해서 로버트 맥나마라가 답한 전쟁의 의미다. 불확실하고 인과관계는 엉키고 너무나 복잡하고…를 넘어, 안개처럼 거의 보이지 않는다(알 수 없다)는 뜻이다. 전쟁도 모르겠는데 평화는 얼마나 알기 어렵겠는가. 이 글의 제목은 저자가 코스타리카 여행 중 외무부 직원에게 들은 말이다.(27쪽) 빈곤과 고립이 평화의 비밀이라니! 코스타리카는 실질적, 합법적으로 군대가 없는 지구상 유일한 국가다. 사람들은 그럴 수 있는 이유를 알고 싶어 한다. 왜 그렇게 됐냐, 어떻게 그게 가능하냐, 심지어 사실이냐? 책은 스페인 식민지 시대 이후 코스타리카 역사와 문화를 성실히 설명하고 있지만, 아마 대부분 ‘대한민국 국민’들에게는 지구 밖 세상처럼 느껴질 것이다. 나는 이유를 궁금해하는 대신 다른 방식으로 생각해보기로 했다. 빈곤과 고립이 평화의 조건인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비(非)평화가 왜 발생하는가. “잘살아 보세~” 사고방식 때문 아닌가? 코스타리카 사람들은 영원한 경제 성장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군대가 없는 나라라고 해서 신기하거나 ‘좋은’ 문화만 있는 것은 아니다. 다른 말로 하면, 어느 사회나 코스타리카처럼 될 수 있다는 얘기다. 남성성과 군사주의는 상호 지지한다는 것이 전통적 이론인데, 이 나라는 군사주의는 없지만 ‘마치스모’(마초) 문화의 원산지로 남성의 폭력, 무책임, 우월의식이 유별나다. 2000년 태어난 유아 가운데 50% 이상이 부친이 없어, 빈곤 모자가정 문제가 심각하다.(‘물론’, 여성이 아버지를 지명하면 국가가 무료로 디엔에이 검사를 해준다.) 그래도 모든 국민이 군대가 없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갖고 있으며 코스타리카는 환경·인권·평화 선진국의 정책과 이미지를 전세계에 선전하여 이를 방위력과 외교력으로 전환시켰다. 군대가 없기 때문에 오히려 침략당할 가능성이 적다. 유명한 비무장 국가를 침략한다면 국제사회의 반응이 어떻겠는가. 이것이 바로 무기 없는 국방의 힘이다. 약자 혐오는 작금의 자본주의는 물론 이제까지 인류(서구) 역사를 유지시켜온 기반이다. 빈곤과 고립이 평화의 본질에 가장 가까운 이유다. 영화 <묵공>(墨攻)의 문법이라면, 유랑. 사람들의 바람과 달리 선함과 강함, 힘 있는 정의는 양립할 수 없다. 선과 정의는 객관적인 가치가 아니라 저마다 생각이 다른, 경쟁적인 담론이기 때문이다. 전쟁은 자신의 옳음을 증명하려는 대표적 행위다. (“정의의 전쟁”, “성전”…) 그러니 “선한 자보다 약한 자가 되어라.”(니체) 무력과 군대 비판은 평화의 관심사가 아니다. 다만 이는 특정한 사고방식 안에서만 설정 가능한 의제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사회는 남성을 인간의 모델로 삼고 이들을 ‘보호자’로 상정, 시민권의 위계를 만든다. 하지만 실제 폭력 행위자는 이들이다. 보호자보다 피보호자인 ‘비(非)국민’-노인, 아픈 사람, 장애인, 어린이, 타인을 보살피는 이들-이 훨씬 많다. 이들의 주요 관심사가 대결, 경쟁, 전쟁일까? 어떤 인간을 보편적 인간으로, 어떤 삶을 인간의 조건으로 상정하고 사유의 기반으로 삼을 것인가에 따라 평화의 개념은 달라진다. 미국과 북한만 외국이 아니다. 지구상에는 다양한 사회가 있다. 책이 전하는 몇가지 감동. 코스타리카 교도소는 담장이 없다. ‘탈출 가능한 철조망’은 있다. 교도 행정의 목표는 수감자가 자신에게 어떤 권리가 있는지 알게 하는 것. 갱생의 첫걸음은 자기 인식, 자기 평가, 자기 긍정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재범률은 20%에 불과하다. 보험료를 못 낸 사람이나 ‘불법체류자’도 국립 병원에서 무료로 치료해준다. 몬테베르데 자연보호 구역에는 포식자를 피해 움직이지 않는 나무늘보원숭이가 있다. 먹는 시간 외에는 정말 움직이지 않아서 ‘진화의 낙오자’로 불리지만, 움직이지 않음이 이 동물의 자연에 대한 적응이다. 참, 이 나라는 국회의원의 연속 재선도 금지하고 있다. 정희진 여성학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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