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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무솔리니가 집권하자 기차가 정시에 도착했다

등록 2013-01-04 20:27

정희진 여성학 강사
정희진 여성학 강사
[토요판] 정희진의 어떤 메모
<극단의 시대: 20세기 역사>, 에릭 홉스봄 지음
이용우 옮김, 1997, 까치

내가 평소 좋아하는 글귀가 두 개 있다. 하나는 “사랑(관계)은 아무나 하나, 그 누가 쉽다고 했나”고 하나는 이 글 제목이다. 전자는 인간을, 후자는 세상을 요약한다. 고민의 순간마다 상기되면서 할 말을 잃게 하는 매혹이 있다. 이 매혹의 정체는 인간(나)의 무능과 이중성.

원래는 “무솔리니가 기차를 정시에 달리게 했다”(Mussolini made the trains run on time, 번역본 839쪽 중 177쪽)인데, 내가 조금 고쳤다. 에릭 홉스봄(1917~2012)은 <혁명의 시대> <자본의 시대> <제국의 시대> 등을 쓴 당대를 대표하는 비판적 지식인으로 ‘라이벌’ 에드워드 톰슨(<영국 노동계급의 형성>)과 함께 영국 지성의 자부심이다.

원제는 “1914~1991”로 시기 표기가 있다. 자본주의가 지구를 목 죄기 시작한 1990년대까지 포함되었다면 저자는 ‘극단의 시대’를 너머 ‘종말론의 시대’를 분석해야 했을 것이다. 20세기 들어 인류는 7000년에서 8000년 걸릴 변화를 70여년 동안 겪었다. 옮긴이의 전언대로, 이 책은 “20세기의 자서전”이다.

20세기는 상반되는 가치의 갈등, 협력, 길항의 연속이었다. 홉스봄은 20세기의 결정적 시기를 파시즘에 맞선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동맹, 30~40년대라고 본다. 파시즘.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 상황이 다양해 정의하기 어렵지만 개념상으로는 ‘대중의 지지에 기반 한 우익 국제공산주의’다. (참고로, 한국의 군사 독재정권은 파시즘이 아니다.)

중세의 어둠을 뚫고 자유주의가 가져올 계몽과 발전(progress), 자유를 낙관했던 19세기 유럽의 ‘평범한 남자’들은 페미니즘, 마르크스주의, 파시즘처럼 자유주의 안에서 태동했으나 동시에 자유주의를 내파하는 ‘돌연변이’들이 줄줄이 출현할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무솔리니가 집권하자 기차가 정시에 도착했다.” 히틀러의 스승이자 변절한 사회주의 언론인 베니토 무솔리니가 파시즘의 우월성을 시위하는 선동으로 손색이 없다. 이 말은 널리 퍼졌고 무질서를 응징하는 파시즘의 에너지와 능력을 증명하는 상징이 되었다. 어느 누가, 사회적 약자일수록, 이 효율성에 안도하지 않을 수 있으랴.

하지만 이는 실제가 아니라 담론의 효과였다. 이탈리아 기차는 무솔리니가 등장한 1922년 전부터 1차 대전 피해에서 복구되어 이미 잘 달렸고, 당시 시민들의 증언에 의하면 기차는 시간표대로 정확히 운행되지 않았다고 한다.

자주 언급되지 않지만 근대 자본주의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이전 시대와 비교할 수 없는 기하급수적 인구 증가다. 계급, 젠더, 인종은 인구 증가의 원인이자 결과이면서 ‘부수적 피해’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지구 자체의 몰락 앞에서 살길은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인데, “우리는 하나”를 선포하고 단결을 강조하는 파시즘과 국민국가는 인간과 자연의 공멸 시스템이다.

나를 포함하여 사람들이 폭력을 선택하는 이유는 저항과 자유를 포함한 ‘무질서’에 대한 공포 때문이다. 비인간적 규정, 억압적 관료주의, 무신경, 군기, 일벌백계는 무질서에 대한 매력적인 대응책들이다. 체벌은 교실의 ‘평화’를 위해 교사가 이 편의성의 매력에 굴복할 때 발생한다. 나는 그들의 선택을 충분히 이해한다. 인간에 대한 존중은 집단이 아니라 구체적 개별일 때만 가능하다.

파시즘을 향한 대중의 지지는 질서의 효능에 대한 믿음 때문이다. 현행 ‘주폭’(酒暴) 단속이 좋은 예다.(물론 이는 ‘적정선’에서 규제되어야 한다.) 싹쓸이! 질서(order)는 글자 뜻 그대로, 대중의 주문이자 지배자의 명령이다. 통치자의 입장에서는 편리하고, 나만 희생자가 아니라면 대중은 “기차가 정시에 도착”하리라는 환상에 동의한다.

지금 집권당과 당선인이 강조하는 사회 안정과 법질서가 실현되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무솔리니처럼 질서의 불가능성, 이 복잡한 역사에 무지하다면 이는 거짓일 수밖에 없다. 그들은 “정권교체를 넘은 시대교체(패러다임의 변화)”의 의미를 알고 주장한 것일까. 몰랐다면, 가정만으로도 소름끼치지만 이들의 ‘안정’은 ‘공안’이 될 가능성이 크다.

정희진 여성학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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