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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어떤 사람이 대통령 됐으면 좋겠냐” 아이들에 물으니…

등록 2012-11-12 21:12수정 2012-11-12 21:13

2012 대선 만인보 국토종단 민심기행
⑥ 충남 연산면 아동센터 ‘외로운 아이들’
△ 형주(가명)

통통한 배를 누가 좀 놀려도 형주는 무던하다. 친구들도 입을 모아 “형주는 순하다”고 할 정도다. 엄마 이야기가 나올 때만 조금 시무룩해진다. 형주는 “엄마가 날 버렸다”고 생각한다. 아빠는 직장일 때문에 이틀에 한번 집에 온다. 대신 형주를 봐주는 건 할머니, 고모, 삼촌이다. 세 사람이 형주를 금이야 옥이야 키운다.

“어떤 사람이 대통령이 됐으면 좋겠냐” 물으니 다른 아이들과 달리 형주는 특정 후보의 이름을 이야기한다. “교수라서 어린이들을 지원해줄 것 같다”고 했다. 형주가 받고 싶은 지원은 스스로를 위한 것이 아니다. 공부방 선생님들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하는 ‘봉고차’다. 봉고차만 있으면 친구들 많이 많이 함께 놀러다닐 수 있을 것 같다.

형주는 커서 되고 싶은 것이 너무 많다. 하나만 고르기 어렵다. 요사이엔 꿈을 하나로 모았다. “골인~ 축구선수! ” 얼마전까지 요리사가 꿈이었다. 겁이 많은 형주는 손 데일까봐 무서워서 요리사의 꿈은 접었다.

△ 가영(가명)

“파프리카를 씹으면 아삭 하는 소리가 나잖아요. 전 그 소리를 들으면 비온 다음날 풀잎에 맺힌 빗방울이 생각나요. ” 시인처럼 말하는 가영은 감수성이 예민하다. 피아노 치는 법도 아동센터에서 언니들 어깨 너머 배웠다. “예술가가 되라”고 하니 “동물들 돌봐주는 애견숍 주인이 되고 싶다”고 했다.

예민한 손녀딸의 마음을 지켜주기 위해 가영의 할머니는 좌불안석이다. 가영은 집에 엄마가 없다. 가영이 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엄마와 아빠가 헤어졌다. 가끔 만나는 엄마와 통화를 하려면 휴대전화를 사용해야 한다. “집 전화도 있긴 한데, 하기가 좀 그래요. ”

정많은 가영은 처음 만난 사람에게도 찰싹 안겨 떨어지질 않았다. 내민 손을 내치면 아이는 금세 삐친다. 그래서 가영은 자신을 딸처럼 예뻐해주는 아동센터장을 “공부방 엄마”라고 부르며 따른다.

학교에서 가는 수련회를 앞두고도 할머니는 내내 걱정이었다. “가영이 위에 걸칠 옷이 없는데…. 짐가방도 없는데…. 속상해 할 것 같어. ” 할머니는 손녀딸 기죽지 말라고 여기저기서 준비물을 얻어다 챙겼다.

가영의 아빠는 비교적 안정적인 직장에 다닌다. 박봉인 건 남과 다르지 않다. 마음은 굴뚝같아도 아빠가 딸을 챙기니 살뜰하게 돌보지는 못한다. 아빠가 쉬는 날마다 피자, 치킨, 짜장면을 먹어서 가영은 다른 아이들이 좋아하는 그런 음식이 싫다. 담박한 김치찌개를 좋아한다.

가영은 “생일 선물 받아본 적이 한번도 없다”고 푸념했다. 할머니는 “케이크가 선물”이라고 타박한다. 11월엔 가영의 생일이 있다. 가영이 갖고 싶은 선물은 큰 것이 아니다. “마트에 가면 로봇 강아지가 있어요. 그 인형 갖고 싶어서 만날 봐요. ”

△ 규진(가명)네 형제들

규진의 아빠는 농부다. 햇볕에 그을러 실제 나이보다 검고 주름진 얼굴이었다. 규진의 형제는 모두 다섯이다. 다섯 가운데 규진만 남의 집에 맡겨 키웠다. 논산의 명물 딸기 농사를 지어 아들들 공부시키려고 규진 아빠는 작은 희생을 치렀다.

규진은 말수가 적다. 무얼 물어도 “모른다”고만 답한다. 공부방의 다른 아이들보다 감정을 드러내는 일이 적은 규진이 눈물을 보일 때는 엄마 얘기을 할 때다. 엄마는 올해 아빠와 이혼했다. 아빠는 그냥 “성격 차이”라고 한다. 형제들은 그런 일이 왜 일어났는지 알지 못한다. 행복을 위해 필요한 게 뭔지 규진에게 물으니 “부모님”이라고 답했다.

새벽 5시부터 밤까지 밭에서 일하는 규진 아빠는 일주일에 한번은 꼭 외식을 한다. “영양 보충, 영양 보충. 엄마의 손길이 못 미쳐서 지금도 마음이 아파요.” 무뚝뚝한 아빠가 해줄 수 있는 일은 다만 성실히 끼니를 챙겨주는 것이다.

아들 다섯은 아빠의 자랑이다. 어딜 가든 남 호령하며 살기를 아빠는 바랐다. 규진의 맏형 현진(가명)은 축구에 큰 소질을 보였다. 체육교사도 규진에게 축구를 계속할 것을 권했다.

아들이 축구하는 걸 허씨는 본 적이 없다. 그래도 남들이 잘한다니 신이 났다. 큰맘 먹고 축구부가 있는 논산시내의 초등학교로 전학을 보냈다. 중학교도 축구 명가로 보냈다.

축구를 하는 데엔 돈이 많이 들었다. 다달이 100만원은 보통이었다. 줄줄이 동생들을 있는 집에서 현진은 더이상 축구를 할 수 없었다. 뒤늦게 축구를 그만둔 현진은 공부에도 뜻을 두기 어려웠다. 그때부터 시작된 방황이 3년동안 종잡히지 않는다. 국가대표가 되어 아빠, 엄마 호강시켜드리고 싶었다던 현진은 아르바이트를 전전하고 있다.

넷째 규진의 꿈은 달나라 가는 우주인이다. 우주인이 못되면 과학자가 되고 싶다. “동생들은 나처럼 안됐으면 좋겠어요. ” 18살 현진이 말했다.

△ 연우(가명)

ㅁ공부방을 찾으면 갓 껍질깨고 나온 병아리처럼 재잘거리는 아이를 볼 수 있다. 가무잡잡하게 그을은 피부의 연우는 원래 도시인 대전에서 태어났다. 까맣다고 놀리면 “전 시골에 사니까요!”하며 씩씩거린다. 또래는 물론이고 언니·오빠들도 휘어잡는 맹랑한 꼬마지만 그 작은 몸 한구석에 슬픔이 숨어 있다.

까불이 연우는 집에만 오면 말수가 줄어든다. 돈 필요한 일이 있어도 할머니에게 투정을 부린 일이 연우에겐 없다. “저는 부끄러움 많이 타고 용기가 없어가지고요. ” 할머니가 “배우고 싶은 것이 있느냐”고 물어도 그저 연우는 말없이 고개만 젓는다. 할머니는 웃자란 아이가 기특하기도, 딱하기도 하다.

사실 연우는 손연재 언니처럼 리듬체조를 배우고 싶다. 혼자서 자꾸 팔다리만 뻗어본다. 애니메이션 <꿈빛 파티시엘>을 재밌게 본 연우와 친구들은 죄다 ‘파티셰’가 되고 싶다며 들썩거리기도 했다.

연우는 엄마·아빠의 이혼으로 논산에 왔다. 함께 살았던 아빠는 직장도 다니고 자격증 시험 공부도 해야 한다며 혼자 대전으로 갔다. 연우는 할아버지·할머니·오빠와 산다. 연우와 연우 오빠를 끔찍이 아끼는 아빠는 주말마다 아이들을 보러 온다. 열살도 안된 연우는 집안 이야기를 할 때만 의젓하다. “아빠는요. 시험만 보면 직장 그만둘 때 돈 벌 수 있다고요. 대전으로 가셨어요. 주말에 오시면 공부하고, 조금 놀다가 다시 공부하시고 그러죠. 우리 필요한 거 있으면 사주시고. ”

△ 영선(가명)

ㅁ공부방을 찾는 아이들 가운데 유일한 중학생이다. 초등학교 5학년때 담임교사의 추천으로 공부방에 오기 시작했다. 교사들은 이따금 알림장을 잘 못 챙기는 아이가 있으면 ㅁ공부방으로 연락을 해왔다.

어린 영선은 기초생활수급권자다. 다섯살때 엄마와 아빠는 이혼했다. 가족에게 경제적으로 전혀 도움을 주지 않았던 아빠는 지난해 병으로 세상을 떴다. 3교대로 섬유공장에서 눈코뜰새 없이 일하는 엄마의 벌이는 일정치 않았다.

영선에게 가난은 익숙하다. 웃풍이 들이치는 다세대주택의 거실에서 영선과 엄마, 동생 영미 세 모녀는 전기장판에 옹기종기 웅크려 잔다. 밤샘 근무를 하는 엄마는 아침밥상을 챙겨주지 못했다. 아침 먹는 일이 속 껄끄러워 이제 영선은 아침을 먹지 않는다.

공부방에 오기 전 영선은 자신의 꿈이 무엇인지도 잘 몰랐다. 무슨 재능이 있다고는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방에서 텔레비전 보며 뒹굴거리는 일이 전부였다. 세상 돌아가는 일을 많이 알지 못하는 엄마가 영선을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이라곤 속셈학원을 보내주는 것 정도였다.

공부방에 와서 영선은 글쓰는 일에 눈떴다. 시를 쓰고 독후감을 쓰니 선생님이 칭찬을 해주었다. 모두 귀찮았던 영선은 기꺼이 문학에 빠졌다. 노랫말도 쓰고 소설도 끄적인다. 유명한 어린이 잡지를 통해 ‘등단’도 했다.

여전히 영선은 귀찮은 일이 많고 답하기 싫은 일이 많다. 그러나 누가 철들라고 하지 않아도 철은 절로 드는 것이다.

매달 공부방 동생들과 장애어린이들을 돕는 봉사활동을 다니는 영선이 어느날 변혜숙 센터장에게 물었다. “봉사확인증 계속 받아야 하나요? ” 영선은 봉사점수를 쌓을 수 있는 봉사확인증을 더 받기 싫다고 했다. 어려운 사람을 돕고 점수를 쌓는 일이 염치없는 것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지난 가을 영선은 부쩍 자라 있었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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