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오후 충남 논산시 연산면 연산리 ㅁ 아동센터 아이들이 맑은 웃음을 지으며 모여 있다. 아동센터장은 아이들의 이름·나이가 일일이 밝혀지는 건 꺼렸지만, “어려움 속에서도 씩씩하게 자라나는 아이들 모습을 사람들에게 전하는 건 괜찮다”며 사진촬영을 승낙했다. 논산/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2012 대선 만인보 국토종단 민심기행
⑥ 충남 연산면 아동센터 ‘외로운 아이들’
⑥ 충남 연산면 아동센터 ‘외로운 아이들’
부모와 사는 아이 8명 뿐
“4살때 아빠·엄마가 헤어져”
“아빠가 일자리 찾아 먼데 가” ㅁ아동센터 21명의 어린이(중학생 1명 포함) 가운데 부모와 함께 사는 이는 8명이다. 그 아이들의 생활도 한부모가정 또는 조손가정의 아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재은(가명)의 엄마는 아침 9시부터 밤 9시까지 동네 마트에서 일한다. 엄마가 버는 월급 100만원에 온 식구가 기댄다. 건축 현장에서 일했던 아빠는 몇달째 일거리가 없어 쉬고 있다. 재은이는 집에서 아침밥을 못 먹는다. 대신 등굣길에 엄마와 함께 삼각김밥이나 도너츠를 먹는다. 일에 지친 엄마는 아침에 일어나 밥 차리는 게 벅차다. 재은에겐 소원이 있다. “엄마 닮은 로봇을 갖고 싶어요.” 엄마 닮은 로봇한테 일 다 시키고, 자기는 엄마랑 방에 누워 텔레비전을 실컷 보는 게 재은의 꿈이다. 보건복지부의 2011년 조사를 보면, 6~12살 어린이 가운데 기초생활수급 아동은 9만8000명이다. 이 나이대 어린이 가운데 2.8%다. 가난한 어린이들은 도시보다 농촌에 더 많다. 서울은 1.9%, 인천은 2.6%인데 전북은 6.0%, 전남은 5.2%다. ㅁ아동센터가 있는 충남은 3.1%다. 전국 평균치에 가깝다. 전국을 통틀어 ‘평균적으로 가난한’ 아이들이 모인 ㅁ아동센터는 연산면에서 한때 가장 번화했던 연산시장을 끼고 있다. 시장 골목에는 하루 종일 손님이 없다. 뒷골목에 돌아가보면, 문 닫은 지 오래된 가게들이 즐비하다. 지역 경제의 몰락을 은유하는 듯했다. 소희(가명)의 엄마는 자영업을 하다 망해 가족을 떠났다. 소희의 아빠는 일자리를 찾아 다른 도시로 떠났다. 아이들이 부모와 함께 지내지 못하는 이면에는 먹고살 것이 없는 사회경제적 상황이 놓여 있다. 김미숙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아동복지의 출발점은 부모의 고용안정”이라고 말했다. “스웨덴 복지정책의 핵심은 부모 모두 안정적인 일자리를 갖도록 하는 데 있고, 이를 통해 아동·노인 등에 대한 복지 전달 효과를 꾀한다”는 것이다. 서울로 직업체험 다녀온 뒤
새로운 꿈 찾은 아이들
“자동차디자이너 될래요
그런 게 있는 줄도 몰랐어요” ■ “마음의 힘이 되어주세요” 친구들과 아동센터 다락방에서 구르는 것을 좋아하는 희진(가명)이는 지난해 여름 아동센터에 처음 왔다. “저는 인천에서 왔어요.” 도시에서 지낸 적 있다는 것을 희진은 은근히 자랑했다. 인천엔 아빠와 오빠들이 있다. 아빠는 남의 건물에 카펫 깔아주는 일을 한다. 도시의 살림을 감당하기 어려웠던 희진이네 식구들은 지난해 여름 중대 결심을 했다. 엄마는 친정이 있는 연산면으로 옮겨와 희진을 외할머니에게 맡기고 일자리를 구했다. 엄마·아빠가 자녀를 각각 거느리고 살림을 나눈 채 맞벌이를 시작한 것이다. 엄마는 한달에 이틀 쉬고 꼬박 식당에서 일해 80만원을 번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이 10월 발표한 ‘아동빈곤가구 복지사각지대 현황 분석’ 보고서를 보면 기초생활수급 혜택을 받는 18살 미만 아동은 전체 아동인구의 6.0%인 37만1000명에 이른다. 차상위계층 아동은 16만9000명(2.3%)이다. 이들을 제외하고 중위소득 50% 이하의 상대적 빈곤 가구 아동도 24만1000명(3.9%)이다. 아동센터 21명 아이들 가운데도 차상위계층(국민건강보험료 납부액 기준)이 15명이고 기초생활수급권자가 2명이다. 각기 사연은 달라도 가난이 그려낸 결과는 대개 비슷하다. ㅁ아동센터 아이들의 집에는 엄마가 없거나, 아빠가 없거나, 둘 다 없다. 21명 중 13명이 그렇다. 변혜숙 센터장은 “상실을 겪고 마음에 생채기가 생긴 채 센터에 온 아이들은 마음의 힘이 약하다. 우선 그런 아이들의 자존감과 내공을 키워줘야 한다”고 말했다. 처음 공부방에 왔을 때 호진(가명)이도 그랬다. 잘못을 지적하면 호진은 문 뒤로 숨어버리며 말했다. “상관 쓰지 마세요. 내가 여기 다신 오나봐.” 호진의 말버릇이었다. 엄마·아빠와 모두 헤어진 채 지내는 소희(가명)는 거의 날마다 눈물바람이었다. “너 아빠 없지? 엄마도 없지?” 그런 말을 들으면 소희의 눈에선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드러내놓고 표현하지 못하는 아이들도 외로움을 달래는 방법을 안다. 아동센터 아이들은 하루 종일 선생님 자리에 있는 전화기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자꾸 어딘가로 전화를 걸어 누군가를 찾아 말을 걸었다. 성태숙 전국지역아동센터협의회 정책위원장은 “빈곤가정 또는 조손가정의 아이들은 가정이나 학교에 적응하기 어려워하는 경우가 많다.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일대일 멘토링 시스템 등 양육 과정에서 필요한 도움을 얻을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먹고 살아야 한다’며
너무 일찍 커버린 아이
전문가들 “자존감 키워주고
1대1 멘토링 도움 줘야” ■ 작아지는 꿈 어릴 때 영미의 꿈은 날마다 바뀌었다. 간호사, 디자이너, 화가 등 하고 싶은 일이 많았다. 요즘엔 누군가 꿈을 물으면 영미는 당황한다. “지금 꿈이 없거든요. 일단 회사 다니고, 결혼하면 그만둘 거예요.” 영미의 말엔 무기력이 배어 있다. 엄마처럼 고되게 일하기는 싫다. 그래도 직업은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하나다. “먹고살아야 하니까.” 영미는 어른의 말을 일찍 배웠다. 영미에게도 잘하는 일은 있다. 그림 그리는 것이다. “제가 잘 그린다는 걸 남에게 알리고 싶어요.” 영미는 그 꿈의 그림을 완성하는 법을 아직 배우지 못했다. 빈곤계층 아이들일수록 문화적 경험이 적다. 연산면에는 놀이터도, 미술관도, 영화관도 없다. 가난한 부모들은 다른 도시로 아이들을 데려갈 엄두를 내지 못한다. 성태숙 정책위원장은 “문화적 경험이 사회적 자본이 되는 시대이기 때문에 어린이에게 어떤 발달 자극을 줄 것인지가 아주 중요하다”고 말했다. “우리 연산면에 소설책, 만화책 많은 도서관을 지어주세요.” 대통령 후보에게 바라는 바를 적게 했더니, 시연(가명)이는 도서관을 첫손에 꼽았다. 고학년인 시연이는 벌써 학교 도서관에 있는 책은 모두 읽었다. 꿈의 크기는 경험의 크기에 비례한다. 지난해 아동센터 아이들은 여러 직업을 체험해볼 수 있는 어느 테마파크에 다녀왔다. 아이들이 그곳에 갈 수 있었던 건 충남도가 “가난한 어린이들에게 정서지원비를 5만원씩 주겠다”고 했던 도지사의 공약을 지켰기 때문이다. 덕분에 빠듯한 아동센터 예산을 쪼개지 않고도 아이들은 서울 나들이를 했다. “대통령이 우리를 위해 더 크고 멋진 공약을 해주면 얼마나 좋을까요.” 아동센터 아이들은 말했다. 서울에 다녀온 뒤 견우(가명)는 장래희망란에 ‘자동차 디자이너’라고 적기 시작했다. 그전엔 보고 듣는 세상이 좁아 그런 직업이 있는 줄도 몰랐다. 견우 주변의 어른들은 장사를 하거나 공장에 다녔다. “나는 그림도 잘 그리고 창의력이 있으니까 자동차 디자이너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선생님이 말했어요.” 견우는 자신있게 말했다. 그런 꿈을 품는다 해도 넘어야 할 산은 남아 있다. 지난 2일 저녁 만난 규진(가명) 아버지는 다섯 아들 자랑을 늘어지게 했다. “우리 애들 머리가 진짜 좋아요.” 규진 아버지는 농부다. 상추와 수박을 재배한다. 화물차 운전도 배워 부업 삼았다. 그래도 주름진 살림은 펴지지 않았다. 그사이 아내와 이혼했다. 혼자 꾸리는 살림은 더 옹색해졌다. 다섯 아들 보습학원비를 대느라 허씨는 1000만원의 빚을 졌다. 아들들을 더이상 학원에 보낼 수 없게 된 지난 8월 허씨는 속으로 피눈물을 흘렸다. 어린 규진을 위해 아버지가 해줄 수 있는 일은 이제 많지 않다. “아버지인 내가 사고나 치지 말아야죠.” 아버지는 고개를 떨궜다. 논산/엄지원 박아름 기자 umkija@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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