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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부모들이여, 상상력 허하지 않는 교육관리와 싸워라

등록 2012-10-22 20:15수정 2012-10-23 09:52

기고/이승욱 ‘닛부타의숲 정신분석클리닉’ 원장
지난 10월1일은 애플의 전 최고경영자(CEO) 스티브 잡스 1주기였다. 한국의 많은 젊은이들도 그를 인생의 롤모델로 삼는다.

지난 봄 지하철에서 잡스와 관련된 조금 다른 경험을 했다. 학교가 파할 무렵이라 객차 안에는 학생들이 많았다. 여중생 두 명이 내 옆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요즘 학생들은 무슨 이야기를 하나 싶어 살짝 귀를 열어두었다. 한 여학생이 지하철 출입구 위 광고판에 걸린 잡스의 자서전 광고를 한참 바라보더니 친구에게 새침한 투로 말했다. “짜증나. 저거 우리 엄마나 좋아하는 책이야.” 여학생은 별다른 관심이 없다는 듯 이내 화제를 다른 곳으로 옮겼다.

학생이 던진 말 한 마디에는 부모의 욕망과 그런 부모를 바라보는 아이의 냉소적인 시선이 너무나 잘 응축되어 있었다. 아무리 잡스를 칭송하며 상상력의 시대니 융합과 통섭의 시대니 해도, 대한민국 부모들의 궁극적인 기대는 결국 그 모든 것이 경쟁에서 살아남아 유명하고 돈 많이 버는 사람이 되는 것뿐이다.

상상력은 자신이 모르는 것을 찾아내는 것이 아니다. 상상력은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과 경험을 벗어날 수 없고, 결국은 그것을 재구성하고 재배치하는 것이다. 상상의 날개를 아무리 펴봐도 결국은 자신이 알고 경험한 범위를 벗어날 수는 없다. 그것이 대한민국 부모들이, 한국의 교육관료들이, 정치인들이 아이들을 위한 ‘다른 삶’을 상상하지 못하는 이유다.

부모들도 아이들의 삶이 자신들의 상상력의 범위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우격다짐한다. 하급공무원 부모들은 자녀들이 고급공무원이 되기를 바라고, 회사원 아버지는 본부장이나 사장이 된 아들을 꿈꾼다. 생산직 노동자 아버지는 사무직 노동자 자녀를 원하고, 권력을 흠모하는 부모들은 변호사나 의사 같은 전문직을 가져야 한다고 자녀들을 닦달한다. 말로는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아이들의 미래를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사실 부모들의 욕망이며 그들의 상상력이 설쳐댈 수 있는 범위가 ‘거기’까지밖에 안되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그 이상을 허용하지 못한다. 이것이 많은 한국 부모들의 한계다.

필자는 종종 1급 정교사 자격 연수교육을 위한 강사로 불려간다. 교원 연수에 참여한 선생님들의 나이는 대체로 20대 후반이나 30대 초반이다. 중고등학교 시절 서태지의 노래 ‘교실 이데아’에 격하게 공감했던 분들이다. 선생님들에게 ‘교실 이데아’ 동영상을 보여주면 오랜만에 보는 서태지의 노래를 신나게 따라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영상이 끝나고 나서 그들에게 묻는다. “이 노래를 듣던 학생 때와 선생님이 된 지금을 비교해보았을 때 학교는 많이 달라졌습니까?” 그러면 선생님들의 얼굴은 바로 흙빛이 된다. 이것이 한국 교사들이 느끼는 한국 교실의 현주소다.

학생시절 선생님들에게 “됐어, 됐어, 이제 그런 가르침은 됐어!”라고 비아냥거렸던 그들이 그런 가르침을 그대로 물려받는 이유는 뭘까. 무엇보다 참담할 정도로 말라 비틀어져버린 교육 관료와 정치인들의 상상력 때문이다. 학생들이 사고를 쳐서 자신들이 문책당하지 않기 위해 오직 학생들을 관리하고 자신을 보신하는 데만 관심이 있는 관료들 앞에서 교사들은 주눅들어 있다. 안전함만 강조하는 환경에서 과감함을 발휘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어느 혁신 교육 현장에서 만난 교사들은 내게 “혁신적인 공교육을 위해 아무리 중요한 제안을 해도 정작 교육청은 토착 교육관료들의 공고한 카르텔과 도의회의 지속적인 딴지걸기로 쓸데없이 시간을 허비하느라 정작 중요한 일에는 눈도 돌리지 못한다”고 하소연했다. 이 얘기를 들었을 때, 대한민국의 교육을 망치는 주범들이 누군지 똑똑히 확인할 수 있었다.

부모는 교육이라는 명분으로 아이들을 경쟁의 정글에 던져 놓았다. 이 나라의 교육 관료들과 대학과 정치인들이 부모를 불안하게 만드는 정책을 만들고, 그 불안 때문에 부모들은 아이를 잡느라 여념이 없다. 진정으로 아이들을 생각하고 새로운 교육을 시도하는 교사들은 결코 새로운 상상력을 허용하지 않는 대부분의 교육관료, 그들에게 아부하는 교사들과 싸우다가 힘이 다 빠진다.

분명히 알아야 한다. 부모들이 싸워야 할 대상은 아이들이 아니다. 부모들이 싸워야 할 대상은 아이들을 틀에 찍어 관리하기 편한 ‘대상’으로 전락시키고, 교사의 노력을 무력화시키는 교육관료다. 3000개가 넘는 전형을 만들어대는 대학과 그런 대학을 고무·격려하는 국가다. 아이들의 상상력을 고사시키는 철가면·철심장의 교육관료와 정치인들을 상대로 종주먹을 들이대며 아이들에게 상상력을 허하라고 외쳐야 한다. 부모들도 아이들의 미래는 아이들 자신의 상상력과 책임에 맡겨야 한다. 그것이 ‘인간의 기본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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