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의 ㄱ고등학교를 다니고 있는 박민석(가명·18)군은 아르바이트로 치킨 배달을 하고 있다. 박군은 수업이 끝나자마자 가게로 가서 오후 5시부터 밤 12시까지 일한다. 배달 일이 많을 땐 새벽 2시를 넘기는 경우도 있다. 밤 10시 이후 청소년 노동은 고용노동부 장관의 허가를 받아야 가능하지만, 가게 주인도 박군도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다. 시간당 임금은 밤이나 낮이나 5000원으로 동일하다. 야간수당도 4대 보험도 없다. 야간 배달은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다. 박군은 최근 1년 동안 20여차례의 크고 작은 사고를 겪었다. 6개월 전에는 크게 다쳐 한달이나 입원을 해야 했다. 그는 “배달은 밀려 있고, 늦게 가면 손님한테 욕을 먹으니까 신호를 무시할 때가 많아 충돌 사고가 잦다. 사고 뒤 한달 동안은 또 부딪힐 수도 있다는 생각에 오토바이 타는 게 겁났다”고 말했다.
수업 마치고 밤12시까지 치킨배달
야간수당 없고 4대보험도 ‘남일’
1년간 20번 사고…1달간 입원도
식당서 이유없이 열흘만에 해고
최저임금 요구하다 협박받기도
특성화고 현장실습도 강제잔업
전체 사업장의 91%가 ‘법 위반’
전국 안심알바신고센터 111곳 중
이용실적 있는 곳은 6곳에 불과
사고가 나면 아픈 것은 둘째이고, 돈 걱정이 앞선다. 병원비나 오토바이 수리비는 모두 박군의 몫이다. 노동자를 고용하는 모든 업체에 산재보험이 적용되지만, 아트바이트 학생에게는 먼 나라 얘기다. 박군은 “상대방 잘못이면 그나마 치료비 등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지만, 내 실수일 때는 병원비가 아까워 그냥 집에서 며칠 쉰다”고 말했다.
박군이 이렇게 위험한 일을 하는 이유는 뭘까? 그는 “휴대폰 비용도 많이 나오고, 사고 싶은 것도 많은데 부모님한테 말하기는 미안해서 용돈을 벌려고 일을 한다. 주유소나 편의점은 안전하지만 돈이 너무 적다”고 말했다. 남자 고등학생들에게 배달은 ‘막장 아르바이트’로 통한다. 임금은 다른 일에 견줘 높지만, 너무 위험한 탓이다. 쉬는 날이 거의 없다는 것도 큰 문제다. 박군은 “여름휴가나 명절을 제외하고는 거의 쉬지 못한다”고 말했다. 저녁도 대충 때운다. 그는 “가게 사장님이 기분이 좋으면 치킨을 튀겨 주기도 하는데, 대부분은 편의점에서 컵라면에 삼각김밥으로 저녁을 해결한다”고 했다.
부산의 ㄴ고등학교를 다니는 김기철(가명·18)군은 지난달 샤브샤브 음식점에서 일하다가 열흘 만에 해고를 당했다. 지금도 왜 해고가 됐는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김군은 “사장님이 ‘우리 가게와 잘 맞지 않는 것 같다. 미안한데 내일부터 나오지 말라’고 했다”며 “어이가 없었지만 그냥 참았다”고 말했다. 근로기준법에는 합리적 이유가 없으면 해고를 할 수 없다고 돼 있지만, 이 규정도 10대 청소년에게는 무용지물이다.
부당해고만 문제인 건 아니다. 일을 시작할 때 근로계약서도 쓰지 않았고, 자정까지 일하는 날이 많았다. 시간당 임금도 최저임금보다 80원 적은 4500원을 받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노동법은 지켜지지 않았다. 김군은 “다른 건 몰라도 최저임금은 인터넷 검색을 해서 알아봤는데 80원이 적었다. 치사하다고 생각했지만, 사장님과 관계가 불편해지는 것도 싫고 괜히 혼이 날까봐 따지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김군은 친구의 얘기를 들려줬다. “친구가 막창집에서 일했는데요. 사장이 시간당 임금을 처음 약속한 것보다 500원씩 깎아서 주길래 친구가 항의를 했어요. 그랬더니 사장이 제 친구를 밖으로 데리고 가 ‘눈에 띄면 죽인다’고 협박을 해 일을 그만둔 적이 있어요.” 김군은 “어차피 일을 할 생각이면 조용히 지내는 게 낫다”고 했다.
10대 청소년들의 불법노동은 특성화고에서 공식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현장실습도 예외가 아니다. 인천의 ㄷ특성화고 학생인 이순일(가명·18)군은 지난 7월 말부터 자동차부품 회사에서 현장실습을 하고 있다. 오전 8시30분부터 오후 5시까지가 근무시간인데 회사는 틈만 나면 밤 8시까지 잔업을 시켰다. 이군은 “직원들이 모두 잔업을 하기 때문에 빠지기가 쉽지 않다. 토요일까지 특근을 하고 있는데 많이 힘들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기아자동차 광주공장에선 현장실습을 하던 학생이 이런 ‘강제잔업’ 과정에서 쓰러져 의식불명 상태가 되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처럼 우리나라에선 일하는 청소년에 대한 보호가 너무나 취약하다. 우리 사회가 아직까지 아르바이트나 현장실습을 하는 청소년들을 노동자로 생각하지 않는 탓이 크다. 한두 곳이 법을 어기는 것이 아니라 10대 청소년을 고용하고 있는 사업주 대부분이 노동법을 지키지 않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지난 2월 연소자(18살 미만)를 고용하고 있는 전국의 사업장 918곳을 점검한 결과, 91.2%(837곳)가 법을 위반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304곳의 사업장에서 확인된 체불금액만 4억2400만원이다. 사업장 점검은 사전에 통보를 한 뒤 실시하는데도 이렇게 법 위반 비율이 높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중·고등학생 약 400만명 가운데 20%가 넘는 80만명가량이 아르바이트를 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어, 청소년들의 노동권 보호는 시급한 상황이다.
정부는 지난 2005년부터 청소년근로보호종합대책을 만들어 추진해오고 있다. 나이 어린 노동자를 고용하는 사업장을 대상으로 지도점검을 1년 2회 실시하고 있지만 법 위반 사항이 줄어들지 않고 있다. 노동부가 지난해 도입한 ‘안심알바신고센터’도 별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안심알바신고센터는 각급 학교에 만들어져 전담 교사가 수집한 피해사례를 지방노동지청의 전담 근로감독관에게 전달하면, 이들이 센터와 연계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현재 전국의 111개 학교에 설치돼 운영중이다.
그러나 신고센터에 대해선 운영 초기부터 문제점이 지적됐다.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는 지난해 12월 “안심알바신고센터가 법에 대한 지식과 절차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청소년에 대한 고려 없이 학생들에게 직접 진정을 넣게 한다거나, 수업 시간에 지방노동관서 출석을 요구하거나, 아무런 보호조치 없이 사업주와 대질조사를 하는 경우가 있었다”며 노동부의 개선을 요구하기도 했다.
운영 내용뿐만 아니라 이용 실적이 거의 없다는 점도 심각한 문제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새누리당 김성태 의원이 노동부로부터 받은 자료를 보면, 전국 111개 신고센터 가운데 단 한건이라도 이용 실적이 있는 곳은 6곳에 불과했다. 나머지 105곳(95%)은 신고가 단 한건도 들어오지 않아 ‘개점휴업’ 상태다.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의 이수정 노무사는 “학생도 일하는 동안은 노동자로서 누려야 할 권리가 있다. 하지만 학생이라는 신분을 약점으로 삼아 제대로 인정하지 않는다. 일하는 학생은 아무렇게나 대해도 된다는 사회적 인식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소연 기자
dand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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