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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학교 안팎 차별·폭력세상…아이들 구할 인권법을 부탁해

등록 2012-12-25 21:15수정 2012-12-25 21:26

서울과 경기 등의 학생인권조례 제정으로 아동·청소년 인권에 대한 감수성이 높아지면서, 이번 기회에 조례를 넘어 아동청소년인권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학생인권조례제정운동 서울본부 등 교육·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지난해 1월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후문에서 교육과학기술부의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악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서울과 경기 등의 학생인권조례 제정으로 아동·청소년 인권에 대한 감수성이 높아지면서, 이번 기회에 조례를 넘어 아동청소년인권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학생인권조례제정운동 서울본부 등 교육·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지난해 1월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후문에서 교육과학기술부의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악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인권이 최고의 아동·청소년 복지다
⑩ 알바 청소년도 노동자
김아무개(18)군이 다니는 대구 ㄷ고는 올해 서울대 정시모집에서 대구 고교들 가운데 가장 많은 22명의 합격자를 배출했다. 그러나 이런 ‘걸출한’ 성과 뒤에는 ‘그림자’가 자리잡고 있다. 학생들의 ‘유보된 인권’이다. 남고인 이 학교는 학생들의 머리카락 길이를 5㎝로 제한하고 있다. 교복에 단 명찰을 가린다며 점퍼와 코트도 입지 못하게 해, 겨울이면 아이들은 온몸을 움츠리고 다닌다. 3학년은 아침 8시에 등교해서 밤 11시30분까지, 1~2학년은 밤 9시까지 강제로 야간자율학습을 해야 한다. 인사를 잘 안 하거나 쓰레기를 복도에 버리거나 수업 시간에 졸기라도 하면 체벌을 한다. 김군은 “1학년 때 한 선생님 차 안테나에 다른 애가 꽂아놓은 요구르트병을 보고 웃었다가 매로 엉덩이를 33대 맞았다. 양쪽 뺨을 42대나 맞은 적도 있다”고 말했다.

학교를 벗어난다고 인권 침해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은 아니다. 김군은 아르바이트로 6개월간 식당에서 정해진 휴식시간도 없이 일했지만 최저시급 4580원에도 못 미치는 3660원을 받았다. 카페에서 일할 땐 성추행을 당하기도 했다. 화장실 청소를 하는데 술취한 중년 남성이 “예쁘장하네”라며 김군의 성기를 툭 치고 갔다.

알바생 최저시급도 못받고 성추행
학생인권조례는 ‘교내 보호용’ 한계
그마저 조례 거부하는 법 앞에 흔들

아동청소년인권법 내년 2월께 발의
초중등교육법·학폭예방법 개정 등
315개 시민단체, 국회에 요구 채비

경기도(2011)와 서울·광주(2012)에서 시행된 학생인권조례는 과거 어떤 조처보다 학생들의 인권을 획기적으로 신장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학생인권조례는 제한된 지역의 학생에게만 적용된다는 한계가 있다. 조례가 제정되지 않은 지역이나, 학교를 벗어난 아동·청소년들에겐 그저 부러움의 대상일 뿐이다. 또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조례’라는 형태로는 법체계상 우위에 있는 ‘법’에 의해 무력화할 위험성이 상존한다. 서울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자, 교육과학기술부가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개정해 일선 학교에 사실상 ‘조례 거부’를 지시한 것이 단적인 예다.

학생인권조례를 넘어 아동청소년인권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아동청소년인권법 제정 운동은 학생인권조례의 첫발을 내딛은 경기도교육청이 밑불을 지폈다. 경기도교육청은 올해 5월 아주대 글로벌인권센터에 연구용역을 의뢰했고, 오동석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팀은 9월 교사 6명 등과 함께 초안을 만들었다. 같은 달 김상곤 경기도교육감과 법안 발의 협약식을 맺은 김상희 민주통합당 의원이 현재 법안을 완성해 놓은 상태다. 박홍근 민주통합당 의원이 5월부터 자체적으로 만든 같은 제목의 법안과 조율해 다음해 2월 임시국회에서 공동발의할 예정이다.

아동청소년인권법은 기본법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제정이 된다고 해서 곧바로 모든 아동·청소년에 대한 체벌이 금지되고 집회·시위의 자유가 보장되지는 않는다. 현실에서 변화가 일어나기 위해서는 관련 법 개정이 연달아 이뤄져야 하는데, 그런 움직임은 시민사회에서 일고 있다. 전국 315개 시민사회단체가 모여 10월 ‘인권친화적 학교+너머’ 운동본부를 출범시켰다. 운동본부는 아동청소년인권법 제정과 함께, 학생들의 인권을 보장하는 내용으로 초·중등교육법과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을 개정하도록 국회에 요구할 계획이다.


아동·청소년인권법안 주요 조항 (김상희 민주통합당 국회의원 안)

제16조(정치적 활동 및 집회·결사의 자유에 관한 권리)

① 아동·청소년은 자신의 권리와 이익을 보장받기 위하여 적법한 범위 안에서 연대하며 정치적 활동을 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 ② 아동·청소년은 집회 및 결사의 자유를 행사할 권리를 가진다.

제23조(체벌을 거부할 권리)
① 아동·청소년은 자신에게 가해지는 체벌을 거부할 권리를 가진다.

제24조(차별받지 않을 권리)
아동·청소년은 성별, 연령, 종교, 사회적 신분, 재산, 학력, 신체조건, 인종 등의 영역에서 합리적인 이유 없이 차별받지 아니하며, 불합리한 차별이 있는 경우 그 차별을 시정할 것을 요청할 권리를 가진다.

제27조(휴식 및 놀이를 즐길 권리)
아동·청소년은 휴식과 여가의 기회를 가지며, 신체적·정신적인 발달 수준에 적합한 놀이를 즐길 권리를 가진다.

제38조(아동·청소년인권정책위원회)
① 이 법에 따라 아동·청소년의 인권을 보장하는 기본계획안을 심의·조정하고 시행계획에 따른 추진실적을 평가하기 위하여 국무총리 소속으로 아동·청소년인권정책위원회를 둔다.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에는 학교에서 체벌·두발규제·강제학습 등 인권 침해 행위를 금지하고, 교육청에 학생인권센터와 학생인권옹호관을 두도록 하는 내용을 포함시킬 것을 요구하고 있다. 또 교육과정을 편성할 때 교사들에게 일차적인 결정 권한을 주고 민주적인 인사위원회를 구성하는 등 교사들의 권리를 강화하는 내용도 담도록 할 계획이다.

학교폭력예방법 개정안에는 학교폭력 가해학생에 대한 징계 기록을 원칙적으로 보존하지 않도록 하고, 학생의 동의와 재판 및 수사상 필요에 의하지 않고는 조회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을 계획이다. 이 개정안이 통과되면, 학교생활기록부에 학생징계위원회와 학교폭력화해조정위원회의 징계 사실을 적도록 한 현행 교과부 훈령은 무효가 된다. 교과부가 지난달 학교폭력 가해 사실을 학생부에 기재하지 않도록 한 김상곤 경기도교육감과 김승환 전북도교육감을 직무유기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발한 상황인 만큼, 학교폭력예방법 개정 추진은 뜨거운 논란을 불러올 것으로 보인다.

배경내 ‘인권친화적 학교+너머’ 운동본부 공동집행위원장(인권교육센터 ‘들’ 상임활동가)은 “보수 세력의 반대에 부딪혀 통과가 쉽지는 않겠지만, 아동청소년인권법 등은 이 땅의 모든 아동·청소년들이 보편적으로 인권을 누리는 인권친화적인 사회를 만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법”이라고 말했다. <끝>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선진국, 헌법에 ‘아동·청소년 인권 보장’ 명시

국외에선

상당수 국가들은 헌법에 아동과 청소년의 인권 보장을 별도로 명시하고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경우, 아동이 가족이나 부모의 보호를 받아야 하고, 가족에게서 떨어졌을 때에는 그에 상응한 보살핌을 받을 권리가 헌법에 적혀 있다. 민사소송에 휘말린 아동에게 부당한 결과가 예상될 때는 국선변호인을 선임할 권리도 보장돼 있다. 포르투갈 헌법은 아동, 특히 부모가 없는 고아 등은 일체의 차별과 억압, 권력 남용으로부터 사회와 국가의 특별한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으며, 직업훈련이나 첫 직장 진입 때 특별한 보호를 해줘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가·사회적 보살핌 받을 권리에
이해관계 의견 피력할 권리까지
개별법 등 인권친화 분위기 형성

아일랜드 헌법에는 “아동의 부모가 신체적 혹은 도덕적 사유로 아동에 대한 의무를 이행하지 못하는 예외적인 경우, 국가는 공익의 수호자로서 적절한 수단으로써 부모의 역할을 대신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만, 항상 아동의 자연적 및 불가침적 권리를 적정하게 고려해야 한다”는 내용이 명시돼 있다. 스페인 헌법은 “교원, 부모,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 학생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정부가 지원하는 시설의 통제와 관리에 개입할 수 있다”고 규정해 학생도 주체적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놨다. 벨기에 헌법도 “모든 어린이는 자신의 도덕적, 신체적, 정신적 및 성적 완전성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 모든 어린이는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는 모든 문제에 대하여 자신의 견해를 피력할 권리를 가진다. 어린이에 관한 모든 결정에서 어린이의 이익이 가장 우선된다”고 밝히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 헌법에는 아동·청소년 인권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만 돼 있을 뿐이다.

라트비아의 경우 헌법에 아동 권리를 규정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아동권리보호법도 제정돼 있다. 이 나라 헌법은 “국가는 혼인, 가족, 부모와 자녀(아동)의 권리를 보호하고 지원한다. 국가는 장애아동, 부모의 보살핌으로부터 유기되었거나 폭력으로 고통받는 아동에 대한 특별한 지원을 제공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근거한 아동권리보호법은 아동 권리의 보호체계와 주요한 작동원리를 규정하고 있다. 복지부 장관 소속의 아동권리보호감독관이 아동의 권리를 모니터링·지원하고 각종 교육적인 활동을 한다.

오동석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선진국들의 경우 아동 인권을 보장하는 헌법 또는 개별 법률이 마련돼 있거나 문화적으로 인권 친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헌법에도 명확한 규정이 없고 관련 법률들도 산발적이거나 빠진 부분이 많다. 또 입시 경쟁이 치열하고 사회 분위기도 인권과 거리가 멀어 아동·청소년 인권 관련 기본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종휘 김지훈 기자 symbi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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