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사회일반

“학원비 없어 자격증 못따…지방대생 문제 공감할 후보 없나요”

등록 2012-10-09 22:12수정 2012-10-11 18:06

지난달 21일 오후 강원도 춘천 강원대 중앙도서관에서 한 학생이 공부에 열중하고 있다. 춘천/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지난달 21일 오후 강원도 춘천 강원대 중앙도서관에서 한 학생이 공부에 열중하고 있다. 춘천/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2012 대선 만인보]
국토종단 민심기행
③ ‘취업 바늘구멍’ 앞에 선 강원대 학생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전국을 발로 뛰며 바닥 민심을 듣는 ‘2012 대선 만인보-국토종단 민심기행’ 세번째 순서로, 강원도 춘천의 강원대에서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재학생과 졸업생들을 만났다. 각 분야 전문가들의 자문을 구하면서 9월 중순부터 사전취재를 시작해 9월 말과 10월 초, 두 차례에 걸쳐 강원대 춘천 본교 캠퍼스에서 100여명의 재학생과 26명의 졸업생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이 가운데 졸업생 15명을 따로 만나 심층인터뷰 했다. ‘2012 대선 만인보-국토종단 민심기행’은 주 1회 정도씩 연말까지 연재한다.

1980년대 중반만 해도 강원대·경북대·부산대·전남대 등 지방 국립대의 일부 학과 커트라인이 연세대·고려대보다 높았다. 그 시절엔 서울의 웬만한 사립대에 가느니 강원대를 택하던 ‘개천의 용’들이 있었다.

요즘엔 등록금이 서울 사립대와 지방 국립대를 선택하는 잣대다. 올해 강원대 등록금은 409만9000원, 4년제 사립대 평균 등록금은 737만3000원이다. 똑똑하지만 부모가 가난한 20살 청춘은 300여만원의 차이를 감당할 수 없어 국립대에 진학한다.

한국장학재단 자료를 보면, 강원대 학생 100명 가운데 부모의 소득이 상위 10%에 속하는 경우가 14명이다. 같은 국립대인 서울대 학생 100명 가운데는 부모 소득 상위 10% 이내인 경우가 36명이다. 전국 4년제 대학 평균은 21명이다. 공부는 착실히 했지만, 사립대 등록금을 감당할 형편이 안 되는 학생들이 지방 국립대에 많이 들어왔다는 이야기다.

등록금 싸 지방국립대 선택
하루 생활비 7천원
컵라면으로 점심 때워
등록금 벌려고 알바·휴학
졸업하는 데 8년이나 걸려
일자리 찾긴 했는데 비정규직
임금 낮고 언제 잘릴지 몰라
공무원밖에 없어요

집안 형편 되는 친구는
강남·종로 영어학원 다니고
졸업 후엔 노량진으로
100만원 넘는 학원 수강료
돈이 없었고 지금도 없고
미래에도 없을까 두려워요

기득권인 박근혜는 안돼요
안철수·문재인 중에 골라야죠

■ “연봉 1500만원 일자리, 장남인데 어떻게….” 50여개의 건물을 삼등분하는 와이(Y)자 형 대로는 강원대 캠퍼스의 뼈대 구실을 한다. 오전 수업이 끝난 낮 12시께 각 단과대에서 학생들이 수업을 마치고 이 길로 쏟아져 나오면 강원대생의 특징이 한눈에 들어온다. 헐렁한 운동복에 슬리퍼를 신은 학생들이 적지 않았다. 부유한 부모들이 대학 입학 선물로 자녀들에게 건넨다는 ‘명품 백’을 든 여학생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수수한 차림의 강원대 재학생과 졸업생들은 고립감과 절망감을 호소했다. “우리의 문제를 공감해 달라”는 정서도 공유하고 있었다. 오는 12월 대선에서 그런 기대에 부응해줄 대통령이 등장할 것을 바라고 있었다.

강원대 졸업생이자 구직자인 홍종호(가명·28)씨도 자신의 고립을 이해해줄 정치인을 찾고 있다. 지난 9월18일 밤 12시 무렵, 홍씨는 별관도서관 휴게실 의자에 몸을 파묻고 1000원짜리 떡볶이맛 컵라면을 먹고 있었다. 하루를 7000원으로 나자면 1000원 컵라면으로 한 끼니를 버텨야 한다.

키가 크고 마른 홍씨는 춘천에 있는 작은 건설회사를 다니다 지난 4월 그만뒀다. 지금은 9급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고 있다. 그는 돈이 없었고 지금도 없다. 앞으로도 돈이 없을까 두렵다.

2003년 입학한 홍씨는 수능이 끝나자마자 등록금을 벌려고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주유소, 고깃집, 학원 등에서 돈을 벌었다. 졸업하는 데 8년이 걸렸다. 이른바 ‘스펙’(취업을 위한 자격·이력)을 쌓을 여유도 없었다.

학자금 대출도 받았다. 지금도 원리금을 갚느라 월 20만~30만원이 필요하다. 교재비·생활비로 월 100만원이 또 들어간다. “최대한 절약해서 공부하고 있긴 한데…. 건설사에서 일할 때 모아둔 돈이 다 떨어져가요.” 봉지커피를 탄 종이컵을 들고 홍씨가 피곤한 얼굴로 말했다.

처음부터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한 건 아니다. 졸업 뒤 한달여 동안 다른 일자리를 알아봤다. 광고 팸플릿을 만드는 작은 인쇄소는 연봉이 1500만원이라고 했다. “한달에 100만원이 조금 넘는 돈을 어떻게 받아요. 그래도 장남인데….”

춘천의 번화가인 명동에 있는 대형 문구점에 매니저 자리가 났다고 하여 갔더니 “그 학벌로 왜 이런 일을 하느냐”며 퇴짜를 맞았다. 유명 구두회사의 신발 판매원으로 취직하려 했지만, 한번 판매원이 되면 관리직으로 승진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포기했다. “일자리를 계속 알아보긴 했는데 정년보장은커녕 임금도 너무 낮고 언제 잘릴지 모르고…. 공무원밖에 없어요.”

시장에서 더덕을 파는 홍씨의 부모도 가난하다. “부모님은 영세민”이라고 홍씨는 표현했다. 지난 4월 총선에서 60대 어머니는 통합진보당을 찍었다. “평생 없이 살아 그런지 자연스레 끌리나봐요.” 졸업 무렵 홍씨가 목도한 현실은 ‘계급적’이었다. “공무원 시험 준비하는 사람들 중에 돈 벌면서 공부하는 경우는 별로 없더라고요. 부모의 지원이 안 되면 버티기 힘들어요. 출발선이 달라요.”

■ “돈이 있어야 자격증 따고, 취업도 하죠.” 특히 ‘별도’라 불리는 별관도서관에 모여 앉은 졸업생들은 그 가운데서도 형편이 곤란한 이들이다. 두꺼운 수험서, 방석, 슬리퍼 등이 이들의 살림살이다. 이들은 일터에서 천덕꾸러기 취급을 당한 경험도 갖고 있다. 별도에서 <한겨레>의 설문조사에 응한 26명의 졸업생 가운데 12명이 취업 경험이 있었고, 2명을 뺀 10명이 기간제 교사, 계약직 행정인턴, 중소기업의 비정규직 노동자를 경험했다. 일단 취업했으나, 비정규직의 현실에 실망해 다시 취업 준비에 나선 경우가 많다는 뜻이다.

부모가 취업 준비 비용을 지원해 주는 학생들은 대부분 졸업과 동시에 서울로 떠나 버린다. 대학 시절엔 서울과 춘천을 잇는 전철을 타고 강남과 종로에 있는 영어학원에 다니고, 졸업하면 공무원 시험 대비 학원들이 즐비한 노량진 고시원으로 거처를 옮기는 것이다.

그 대열에 합류하지 못한 이들의 상실감은 더 크다. 지난달 18일 강원대 학생회관 1층 학생식당에서 만난 영어교육과의 박진국(가명·25)씨도 자신의 출발선이 남들과 다르다고 생각했다.

박씨의 눈빛은 반짝였지만 낯빛은 창백했다. “아르바이트 하느라 너무 힘들어 그런가봐요.” 박씨 아버지의 월급은 200만원이 채 안 된다. 국립대의 한 학기 등록금을 내기에도 벅찼다. “일찍 독립하고 싶었어요.” 고교 때부터 명석했던 박씨는 ‘독립’이라는 말로 가난한 부모를 오히려 위로했다. 대형마트에서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하고, 바로 옆 버스 터미널에서도 같은 시간대 일을 구해 두 곳을 넘나들며 일하기도 했다.

“‘국제신용장 전문가 자격증’이란 게 있어요. 응시료 90만원에 학원비가 110만원이에요. 그걸 제 친구가 갖고 있더라고요.” 박씨는 그 친구에 대해 ‘부럽다’고 말하지 않았다. “부익부 빈익빈이죠.” 돈이 있어야 자격증을 따고, 자격증이 있어야 취업이 가능하다는 것을 박씨는 사무치게 알고 있다.

박씨는 한국수출보험공사에서 일하고 싶지만, 채용공고에는 ‘공인재무분석사(CFA) 자격증, 재무위험관리사(FRM) 자격증이 있을 경우 제출하라’는 문구가 있다. 취업 준비생들에게는 “자격증을 따라”는 소리나 다름없다.

두 자격증을 따기 위한 학원 수강료만 각각 170만원과 110만원이다. 학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해 한달에 40만원을 받는 박씨는 엄두가 나지 않는다. “놀 때 놀고 공부할 때 공부하고 도전할 때 도전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것은 한에 사무친 말처럼 들렸다. 특별히 힘들이지 않고도 홍씨나 박씨 같은 이들을 강원대에서 숱하게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은 굶거나 밤새 일하면서 겨우 학업을 이어갔고, 취업까지는 더 많은 산을 남겨두고 있었다.

■ “20대가 먹고살게 해줄 후보를 찾고 있어요.” 별관도서관에서 만난 졸업생 이재식(가명·33)씨의 어머니는 강원도 속초에서 작은 수선집을 운영한다. 교정직 공무원이었던 아버지는 이씨가 중학생일 때 과로사했다. 이씨는 한양대 공대에도 합격했지만, 등록금 때문에 강원대를 택했다.

학창 시절 내내, 이씨는 하루 두시간씩 자며 공사장, 술집, 피시방, 당구장 등을 옮겨가며 하루 4개씩 아르바이트를 했다. “대학생들이 돈 벌려고 불법적인 일도 하는 거 알아요?” 이씨는 경비용역 아르바이트에 대해 말했다. 공사장에서 하루 종일 벽돌을 지면 5만원을 받는데, 경비용역 아르바이트를 하면 하루에 10만원을 벌 수 있다는 것이다.

신한은행 공채에 합격해 캠퍼스 곳곳의 펼침막에 자신의 이름을 알린 조문혁(가명·25)씨도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해왔다. 식당 설거지, 노래방 웨이터, 책방 점원, 공사장 막노동 등을 가리지 않았다. 은행 공채에 합격한 4명 가운데 한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 와중에도 자격증 3개를 땄기 때문이다.

그렇게 20대 초중반을 보낸 지방 국립대생들은 이번 대선을 벼르고 있다. <한겨레> 설문조사에서 졸업생 26명 가운데 12명이 안철수 무소속 후보를, 6명이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를, 2명이 야권 단일후보를 찍겠다고 답했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 지지자는 3명뿐이었다. 같은 설문조사에서 재학생 101명 가운데 안철수 지지자가 41명, 문재인 지지자가 17명, 박근혜 지지자가 15명, 야권 단일후보 지지자가 3명이었다.

특히 안철수 후보는 삶의 ‘구원투수’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지난 4월 총선에서 통합진보당을 찍었다는 이다름(가명·22)씨는 “20대 청년들의 고민과 문제를 공감해 줄 것 같아서 안 후보를 지지한다”고 말했다. 고립된 20대를 대변해줄 것으로 기대했던 진보정당에 대한 지지까지도 안 후보가 흡수하고 있는 형국이다.

다른 학생들도 야권 단일후보를 찍겠다는 경우가 많았다. “안철수와 문재인 중에 누가 됐건 야권후보가 나오면 찍을 거예요.” 부잣집 또래들이 비싼 자격증 따는 세상이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박진국씨가 말했다.

“저는 무조건 야권 단일후보예요. 박근혜는 기득권이라 안 돼요.” 10월 미국으로 어학연수를 떠나는 강태산(25)씨는 재외국민 투표를 신청해서라도 선거를 하겠다고 별렀다. 어학연수 비용의 상당 부분은 강씨가 아르바이트로 번 돈이다. 가난한 부모 밑에 태어나면 저임금 비정규 노동을 전전하며 20대를 보내야 하는 세상을 투표를 통해 바꿀 수 있다고 강씨는 믿는다.

문제는 투표율이다. 지난 4월 치러진 19대 총선에서 25~29살의 투표율은 37.9%였다. 전 연령대를 통틀어 가장 낮은 수치다. 투표율로만 보자면 ‘정치 무관심 집단’에 가깝다. 여기에는 곡절이 있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25~29살 경제활동인구의 실업률은 7.2%다. 2004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그런데 내가 밥 먹고 살고 결혼하는 데 도움이 되는 대통령 후보가 없잖아요.” ‘별도’ 옥상에서 만난 김영철(가명·28)씨가 난간에 펼쳐놓은 수험서에서 눈을 떼지 않고 말했다. 청년실업자를 투표소로 불러내는 공약을 내건 정치인이 등장하기를 김씨는 기다리고 있었다.

춘천/진명선 허승 조애진 기자 torani@hani.co.kr

강원대생 약전

강원도 춘천 강원대생이 당면해 있는 등록금과 취업의 문제는 강원대생에게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다른 지방 국립대나 서울의 사립대에 다니는 20대가 처해있는 공통의 문제다. 대선 후보들이 강원대생의 표심을 20대의 표심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다.

■ 이재식(가명·33)

교정직 공무원이었던 아버지는 중학교때 돌아가셨다. 범죄자들을 상대하는 아버지는 스트레스가 심했다. 이틀에 한번 꼴로 술을 마셨고 이씨와 동생이 잘못하면 무조건 회초리를 들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야 어머니는 “아버지가 너희들이 잠들면 회초리 자국에 연고를 발라줬다”고 말해줬다.

아버지는 추억과 함께 가난을 물려줬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서울의 한양대와 홍익대를 붙고도 국립대인 강원대를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이씨는 대학생이 된 뒤 하루에 2시간만 자고 아르바이트를 할 정도로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 그렇게 번 돈으로 영국에서 2년 동안 머물면서 어학연수를 했다. 영국을 택한 건 어학연수생에게 일하면서 돈을 벌 수 있는 워킹비자를 내줬기 때문이었다.

영어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던 이씨는 지난 2007년 졸업할 때 대기업 취업에 대한 기대가 있었다. “난 영어도 되고, 공대치고는 학점도 나쁘지 않고, 리더십도 있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러나 대기업 인사팀에 있던 먼 친척이 불길한 말을 전했다. “지방 국립대 출신들의 서류는 위에서 몇 장만 들어내고 나머지는 쓰레기통에 버린다.” 그 말은 곧 현실이 됐다. 서울에 있는 대기업 공채에는 빠지지 않고 원서를 썼으나 서류 조차 통과하기 힘들었다. 결국 서울에 있는 중소 인테리어 회사에 취직했다. “말이 좋아 실내건축이지, 노가다예요. 언제까지 이일을 한 건가 싶더라고요.”

이씨는 2010년 일을 그만둔 뒤 지금까지 7급, 9급 공무원 시험을 가리지 않고 보고 있다. 수험생활 중에 얻은 병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운동부족으로 여기저기가 아파서 1년 전부터는 물리치료를 받는다. 불면증에 과민성대장증후군까지 생겼다. 10분 마다 배가 아파서 한때는 버스를 못 탈 정도였다.

이씨는 9월 22일 치른 시험이 마지막이라고 했다. 10월 초에 이씨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을 때 그는 강원도 속초 고향집에 있었다. “집 마당에 있는 나무가 너무 못생겨져서 다듬어주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마지막 시험을 잘 치렀냐고 묻자 “그냥 지금은 아무 생각도 안 하려고 해요.”라고 떨리는 목소리로 대꾸했다. 그 시험은 정말 이씨의 마지막 시험이 될 수 있을까.

■ 정다름(가명·22)

어머니는 공부를 잘하는 정씨가 “내 삶의 낙”이라고 말했다. 남편은 배를 타고, 자신은 청소일을 하는 빠듯한 살림이지만 정씨를 위한 사교육에는 돈을 아끼지 않았다. 그룹으로 영어 회화 과외도 받았다. 고등학교가 비평준화 되어 있어 시험을 치러야 하는 강원도 동해에서, 정씨는 어머니의 기대대로 제일 좋은 학교에 갔다.

제일 좋은 대학에 가는 데는 어려움이 있었다. “원서 쓸 때 그냥 국립대로만 썼어요.” 정씨가 지망하는 학과는 수도권에 있는 경원대가 제일 좋은 대학이라면서도 “등록금이 너무 비싸 쓰라는 말을 못하겠다”고 담임 선생님은 말했다. 정씨는 강릉에 있는 국립대에 4년 전액 장학금을 받는 자격으로 합격했다. 정씨는 조금 욕심을 부렸다. 장학금은 없지만 강원대에 진학했다. 어머니는 아직도 “내가 돈만 있었어도 우리 애 강원대 안 보냈다”고 푸념하신다.

정씨는 강원대에서 만난 학생 가운데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는 몇 안되는 학생이었다. “엄마가 공부에만 집중하라고 하셔서요.” 그래서 정씨는 다른 친구들이 아르바이트를 하는 시간에 동아리를 할 수 있었다. 동아리에서 정씨는 쌍용차 등의 사회문제에 대해 글을 쓰고, 눈을 떴다. 정씨는 강원대에서 만난 유일한 ‘운동권’이었다.

그러나 정씨가 했던 동아리는 영수증 처리를 잘못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지난해 해산당했다. “제 친구가 저한테 그러더라고요. 교지편집위원회가 예산 4000만원을 받아서 학생들끼리 나눠쓰고, 그 돈의 일부가 민주노동당 학생위원회로 갔다고요.” 정씨는 이 일이 못내 억울하고 부당하다고 느낀다. “학생들이 많이 모이는 인터넷 카페에는 운동권을 집중적으로 테러하는 사람이 있어요. 운동권에 대한 시각이 많이 좋지 않아요.”

3학년인 정씨는 다른 친구들과 달리 현재 가장 고민되는 문제로 ‘취업’이 아닌 ‘가족’을 꼽았다. “아버지가 원양어선을 타시는데요, 배를 타시려면 포항까지 가셔야 해요. 거기서 혼자 계시면서 술을 많이 드시나봐요.” 나이든 어머니가 청소일을 감당할 수 있을지도 걱정이다. “제가 취업해서 자리 잡기 전에 쓰러지시면 안 되는데….” 정씨의 동생은 특성화고에 들어가 바로 취업을 한다고 한다. 고졸 일자리가 는다지만, 직장의 질을 장담할 수 없다. 정씨의 취업이 가세를 결정한다. 어려운 집안의 장녀가 성공한 뒤 가세를 일으키는 헤피엔딩을 정씨는 기대하고 있었다.

■ 김현곤(가명·24)

김씨는 지금까지 연애를 해 본 적이 없다. “쫓기듯 살아서요.” 멋쩍게 웃는 김씨 역시 서울에 있는 사립대에 합격하고도 등록금과 생활비 부담 때문에 등록을 포기했다. 대학에 입학한 뒤 등록금은 부모님이 대주셨지만 용돈은 스스로 벌어썼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적금을 부었다. 휴학을 하고서는 공사 현장에서 일했다. “일당 6만원에서 9만원까지 받을 수 있어요. 시간 날 때 딱 할 수 있는 일은 공사장 뿐이예요.”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하던 중에도 퇴근 뒤에 아르바이트를 했다. 직장인도 모으기 힘든 1000만원이라는 거금이 20대를 노동과 맞바꿔 생겼다. 김씨는 이 돈을 4학년 2학기, 취업 준비 비용으로 쓴다.

김씨의 아버지는 버스운전기사로 일하다가 지난 2007년 김씨가 대학에 입학한 뒤 실직했다. 지난 2010년 복직했지만 예전만큼 대우가 좋지 않다. 복직한 직후에는 1년 정도 집에 오지 못할 정도였다.

아버지는 김씨가 사범대에 다니는 것을 뿌듯해한다. 아들이 선생님, ‘님’자가 붙는 직업을 갖는 것은 아버지에게 남다른 의미가 있다. 어머니가 춘천에서 자취를 하는 김씨의 원룸에서 일주일의 절반을 보내며 뒷바라지 하는 것도 아버지가 갖고 있는 기대의 다른 표현이다. 김씨의 형은 나이트클럽에서 일하면서 한달에 200만원을 살림에 보탠다. 특성화고를 졸업하고 돈 벌어서 대학에 간다고 했던 형이 공사판만 전전하다 찾은 안정적인 일자리다. 형이 보내주는 돈이 형이 김씨에게 갖고 있는 기대의 또 다른 표현이다.

하지만 지금은 사범대 입학이 곧 교원 임용이던 호시절이 아니다. 졸업하는 선배들의 절반이 서울 노량진에 있는 고시원으로 떠나는 것을 지켜보면서 김씨는 조금 불안해진다. 김씨가 할 수 있는 일은 도서관에 가서 수험서를 펴는 일 밖에 없다.

▷ 국토종단 민심기행 [2012 대선 만인보] 기획연재

[관련기사]

▷ 정규직 일자리 사라져간 20년, 지방 국립대생들에 무슨 일이…
▷ [79학번-00학번 비교] 점점 좁아지는 서울 취업길…대기업 입사 엄두도 못내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인권위 ‘윤 방어권 보장’ 안건 재상정 의결…야 “인권위 사망한 날” 1.

인권위 ‘윤 방어권 보장’ 안건 재상정 의결…야 “인권위 사망한 날”

경쟁률 최고 2255 대 1…“아무일 없었다는 윤석열에 절망” 2.

경쟁률 최고 2255 대 1…“아무일 없었다는 윤석열에 절망”

전한길, 부정선거 근거 묻자 답 못해…음모론을 음모론으로 덮어 3.

전한길, 부정선거 근거 묻자 답 못해…음모론을 음모론으로 덮어

“비싸지만 효과 좋대서”…비급여 독감 치료주사 급증 4.

“비싸지만 효과 좋대서”…비급여 독감 치료주사 급증

필살기가 발등 찍고, ‘집안싸움’ 점입가경…원전 수출의 결말 5.

필살기가 발등 찍고, ‘집안싸움’ 점입가경…원전 수출의 결말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