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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연평도 주민들에게 대통령 선거란…

등록 2012-09-13 20:36수정 2012-09-14 08:41

연평도 주민 약전
한국전쟁 직후 연평도에는 3만여명의 피난민이 몰려들였다.

휴전 이후에도 많은 실향민들은 연평도에 눌러 앉았다. 고향과 가까운 곳에 남아야겠다고 생각한 이들이 많았다. 특히 분단 전 연평도가 속해 있었던 황해도 옹진군 북쪽 지역이나 황해도 해주에서 온 실향민들이 연평도 정착을 선택했다. 이후 연평도는 실향민의 섬이 됐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연평도 주민의 절반이 실향민 또는 그 직계 후손인 것으로 추정된다.

 그들 대부분은 제 의견을 털어놓기를 꺼렸다. “이곳은 소문이 빠른 동네”라고 주민들은 말했다. 좀처럼 말이 없던 연평도 주민들이 어렵게 털어놓은 생생한 목소리를 따로 모았다. 그들의 삶에는 보수 성향이면서도 평화를 지향하는 이유가 그대로 녹아 있다.

 

△강해숙(74ㆍ가명)

강 할머니는 경남 남해 삼천포에 살았다. 남편이 술을 마시고 빚보증을 잘못 서 야반도주를 했다. 부부가 찾은 곳은 연평도였다. 그렇게 50년 넘는 시간이 흘렀다. 아무 것도 가진 게 없는 부부는 연평도에 도착해 고생한 기억이 끔찍하다.

 “생각하기도 싫지. 빈 땅 파서 고구마 심어 먹고. 한 됫박 벌면 먹고 못 벌면 못 먹고. 집이 없어 남의 집에 얹혀살며 시집살이 하고.” 강씨는 긴 한숨을 쉬었다. 가난이 지나간 곳에는 외로움이 싹텄다. 딸과 아들은 모두 결혼해 육지에서 가정을 꾸렸다. “혼자 사니까 서럽고 그래.” 강 할머니는 말끝을 흐렸다.

 지난 연평도 포격 이후에는 외로움에 무서움까지 더해졌다. 칠순이 넘은 나이에 세상 무서운 것이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연평도 포격이 일어난 이후부터는 두려운 것이 생겼다. “세월이라도 좋으면 괜찮은데. 북한놈들이 또 그럴까봐(다시 포격할까봐) 무서워서 살겠나.”

강 할머니의 두려움은 북한 뿐은 아니었다. “여긴 노인네들 먹고 살길이 없어. 바다에 나간다고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야. 취로사업 해서 버는 돈으로 먹고 사는데 일이라도 많이 주면 좋겠어. 지금 몇 달 째 일이 없어.”

강 할머니가 가장 좋아하는 대통령은 노태우다. “그땐 다른 건 몰라도 편안히 잘 살았지.” 가장 싫어하는 대통령은 전두환이다. “그 OO는 없어졌으면 좋겠어. 사람도 많이 죽이고 같은 나라 사람한테도 얼마나 못되게 굴었나.” 이번 대선에는 박근혜 후보를 찍을 생각이다. “박근혜는 착하고 좋아.”

강 할머니의 가장 큰 걱정은 먹고 사는 문제다. “아무리 북한이 위협을 해도 먹고 사는 게 우선이야.” 강 할머니는 북한보다 가난이 더 무서웠다. 강 할머니는 박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조금은 나아질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한희선(56ㆍ가명)

한씨는 연평도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았다. 포격이 있기 직전인 2010년 8월에 섬에 직장을 구해 왔다. “인간적으로는 노무현 대통령이 가장 좋지만 업적은 박정희 대통령이 가장 잘했죠.” 한씨는 박 대통령의 경제정책 때문에 그나마 이렇게 먹고 살 수 있었다고 생각했다.

자신을 중도라고 밝힌 한씨는 대통령 선거에서 인물보다 정책을 더 중요하게 본다고 말했다. “정치는 개인이 할 수 있는 건 많이 없잖아요. 안철수 보세요. 아무리 잘 나도 사람이 없고 정책 방향이 없으니까 주변에서 조금 흠잡고 물어 뜯으면 바로 흔들리잖아요.”

한씨는 아직 대선에서 누구를 찍을 것인지 결정하지 못했다. 하지만 박근혜 후보에게 관심이 더 많다. “야권 후보는 결정도 안 됐잖아요. 박근혜씨는 여성이라서 그런지 갈등이나 분열보다 통합을 추구하는 것 같은 느낌이에요.”

한씨는 섬의 다른 사람들처럼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선 불신했다. “이번 정부 대북정책은 정말 잘못됐어요. 주체적으로 하는 게 없고 미국이나 주변 열강들의 이해관계에 너무 휘둘리잖아요.”

 

△강현식(58ㆍ가명)

강씨는 좀처럼 말이 없었다. 바지 주머니에 손을 찔러놓고 우두커니 서서 물어보는 질문에만 천천히 답했다. “나는 원래 야당 쪽인데.” 이씨는 질문을 받으면 몇초간 입을 다물고 있다가 아주 짧게 대답했다. “문재인과 박근혜, 두 후보를 눈여겨 보고 있어요. 정당보다는 인물을 보죠.”

강씨는 지금 생각으론 박근혜 후보보다 야권단일 후보를 찍을 생각이다. “박 후보는 아버지 문제 때문에 지금도 시끌시끌하니까.” 묵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인터뷰가 끝나고 대문 밖까지 배웅을 나온 강씨는 말했다. “여기 사람들은 기자를 싫어해서 설문조사를 잘 안 해줄 거에요.”

 

△현문석(66ㆍ가명))

연평도 토박이인 현씨는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단정하게 빚은 머리와 깔끔한 흰색 셔츠를 입고 양반다리를 한채 가게에 앉아있었다.

“다른 정당엔 투표 한 적 없어요. 아, 2002년에는 노무현 찍었구나.” 현씨는 한 차례를 빼곤 선거에서 매번 보수정당을 찍었다. “노무현은 젊었고 패기가 있을 것 같아서 찍었는데 많이 실망했어요.” 현씨는 이명박 대통령에게는 50점을 줬다. “북한에 퍼주기 안 한 거는 잘했다고 봐요. 하지만 경제 같은 거는 완전 바닥이잖아요. 그 사람이 경제는 박사라고 하면서 나왔는데, 지금은 바닥이잖아요.”

현씨는 박정희 대통령을 가장 좋아했다. “연평도 같은 경우는 한마디로 박정희 대통령이 되면서부터 일자리 지원 사업이 많이 나왔고, 서해5도에 집도 지어주고, 일자리도 만들어서 해주고. 참 고맙죠. 다른 사람들은 그런 게 없잖아요. 특히나 이번에 포격 맞은 뒤로 지원이 뭐 있어요. 집이나 좀 고쳐준 것밖에 더 있어요.”

그는 투표는 인물을 보고 한다고 말했다. 현씨에게 인물은 박근혜 후보였다. “그 사람은 포부가 있잖아요. 정치하면서 구김살이 없던 사람이에요. 단지 아버지 때문에 공세를 받아서 그렇지.”

하지만 강씨는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은 당연히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북한에 뭘 주면 국민에게 식량으로 배급되는 게 아니라 군사전력으로 쓰는게 문제긴 하지만 도와주긴 해야죠. 한민족인데 굶어죽는 거 보고 있어요?” 강씨는 되물었다.

 

△곽성태(47ㆍ가명)

김씨는 인천에서 태어났다. 9년전 쯤 이모가 살고 있던 연평도로 이사를 왔다. 그는 지난 8월 어느날 늦은 오후 골목길에 누군가 버린 의자에 앉아 담배를 피고 있었다. 목이 늘어난 검은색 티셔츠에 군모와 군복 바지를 입은 차림이었다. 국방색은 이미 원래 색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변해있었다.

“지금까지 살면서 투표한 적 없었어요. 근데 이번엔 박근혜 나오니까 하려고요.” 김씨는 박 후보 말고 다른 사람이 나왔다면 올해도 투표를 안 할 생각이었다. “살기는 전두환 때가 좋았죠.” 곽씨는 박근혜를 좋아하고 전두환 시절을 그리워하는 이유는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를 싫어했다. 그 이유는 분명했다. “너무 대북정책을 강경하게 했잖아요. 쟤들은 어르고 달래야 하는데.” 김씨는 담배꽁초를 비벼 끄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홍희선(33ㆍ가명)

홍씨는 딱 잘라 말했다. “대통령 선거 관심없어요.” 홍씨는 지금까지 투표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이번 대선에서도 투표하러 갈 생각이 없다. “먹고 살기도 바쁜데 정치에 관심가져서 무슨 소용이에요.” 말투는 매서웠다.

하지만 박정희 대통령에게는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섬에 전해진 이야기들을 듣고 난 후다. “듣기로는 지금까지 대통령 중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제일 잘했다고 하더라고요. 전 잘 모르지만 흙집 짓고 살던 시절에 집도 다 지어주고, 살기 좋게 해주고 그랬다고.”

 하지만 과거에 대한 관심을 두기엔 걱정이 많다. “가장 걱정 되는 건 아무래도 북한에서 또 포 쏠까봐 그게 가장 걱정이죠. 살면서도 아주 불안해 죽겠어요. 가족들이 다 여기 있고 애들이 학교 다니니까 여기 살지만 항상 불안해요.”

홍씨의 불안은 어느새 불만으로 변했다. “포 맞고 그 난리 났을 때 이명박 대통령이 한번 찾아와 본 적이 없어요. 아랫사람 시켜서 그냥 텔레비전으로 정책이나 틱 발표하고. 여기 주민들이 뭐가 힘든지 어떤 애로사항이 있는지 한번 들어보러 오질 않았어요. 그 후에 대통령이 한 게 뭐가 있어요. 우리는 그 고생을 하는데. 정말 서운하고 서럽고 그랬어요.”

정환봉 허승 기자 bon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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