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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여중생의 한숨 “방학때 밤 12시까지 과외라니”

등록 2012-09-09 19:57수정 2012-10-08 08:44

학원 가느라 밥도 잠도 방학도 포기…행복하냐고요?
뉴스에 나오는 끔직한 일들…내 주변서 벌어질까 두려워
안타깝게도 대한민국 청소년의 불행은 학교에서 시작해 학원에서 끝난다. 과도한 학습 부담은 적당한 보살핌 속에서 건강하게 자랄 권리와 자신을 표현할 권리, 자신과 관련한 주요한 결정에 주체적으로 참여할 권리들을 질식시킨다. 서울 강북의 ㄴ중학교 2학년에 재학중인 ㅈ양의 입을 통해 그들의 하소연을 들어봤다. 평범한 중산층 부모와 사는 ㅈ양의 성적은 반에서 중위권이다. 인터뷰 내용을 1인칭 시점으로 재구성했다.

경쟁에 내몰려 시드는 꽃들…‘욕망의 사회’ 모두가 공범

아야! 또 수업시간에 졸다 어깨를 꼬집히고야 말았네요. 아파요, 선생님. 적당히 꼬집으세요. 아직 어리지만 그래도 꿈 많은 중2 소녀인데…. 애들이 저 쳐다보면서 웃으니까 창피하잖아요.

전들 수업시간에 졸고 싶겠어요? 선생님도 입장 바꿔 놓고 생각해보세요. 저 어제도 학교 끝나고 4시부터 9시까지 수학과외학원에서 공부했단 말이에요. 자그마치 5시간 동안이요. 과외쌤 집에 가서 다른 애들이랑 하는 거 있잖아요. 그거 끝나고 집에 가서 밥을 엄청나게 먹었어요. 저는 짜증나면 많이, 게다가 빨리 먹거든요. 그러고 나면 또 학원에서 내준 숙제를 해야 해요. 근데 무슨 숙제를 3시간은 해야 끝날 만큼 많이 내주죠? 집에서는 어차피 다 못하니까, 학교 수업시간에 그거 하다가 잠깐 존 거란 말이에요.

엄마·아빠한테 얘기해봐야 소용없어요. 수학학원 간 뒤로 수학 성적은 잘 나오니까, 그런 건 용서가 되나 봐요. 1학기 중간고사 때 98점, 기말고사 때는 100점 받았거든요. 아, 근데 그러면 뭐하냐고요. 다른 과목 성적이 잘 안 나오는데…. 그러니까 반 등수는 중간 정도지요. 그리고 수학 점수 잘 나와도 마음은 영 찝찝해요. 내가 잘해서 그런 게 아니라 과외쌤이 만들어준 것 같아서요. 어쨌건 수학과외 땜에 죽겠어요.

요즘 뉴스에서 스스로 끔찍한 선택을 하는 청소년들 얘기 들은 적 있으시죠? 왜 그랬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안쓰럽기도 하고, 내 주변에서 그런 일들이 일어날까 두렵기도 해요. 모쪼록 내 친구들과 고등학생 언니·오빠들이 그런 나쁜 생각만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저는 그런 생각을 결코 하지는 않지만, 여름방학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몸서리가 쳐져요. 학기 중엔 수학과외를 화·수·목 3일만 하면 되지만 방학 땐 월~금 5일 동안 아침 8시부터 낮 12시까지 과외받으러 갔거든요. 방학의 참맛은 늦잠인데, 진짜 늦잠 한번 제대로 못 잤어요. 그리고 방학 내내 아침밥은 거의 못 먹었다고요. 학기 중에도 웬만하면 먹었던 그 밥을요. 저 지금 성장기이거든요. 키 더 커야 한다고요. 올해부터 주5일제 수업하면서 방학이 짧아진 게 차라리 다행이에요.

방학 때 캠프 같은 것도 진짜 가고 싶었는데, 결국 못 갔어요. 과외쌤이 그런 걸로 며칠 빠지려면 갔다 와서 보충수업 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엄마·아빠한테도 가고 싶다고 그랬더니 “그럼 학원은 어떡하지?” 그러는 거 있죠. 뭘 어떡해요. 방학인데, 학원 며칠 빠질 수도 있잖아요. 아빠랑 함께 식구들이 계곡 한 번 간 것 빼고는 방학 내내 제대로 놀지도 못했다고요.

어젠 수학과외만 5시간 받았고
오늘은 학교서 졸다 꼬집혔어요
부모님은 방학캠프도 안 보내줘요

“미친놈”이라 욕하는 선생님
말 좀 곱게 하시면 안되나요
왜 공부 잘하는 아이 편만 드는지…

학교에서도 유일하게 재미있는 시간은 쉬는 시간뿐이에요. 친구들이랑 교실 밖에 나가 수다를 떨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수업 종 울리는 순간 교실 의자에 엉덩이 붙이고 있지 않으면 왜 벌금을 내야 하는 거죠? 아니, 조금 늦을 수도 있는 거잖아요. 학교가 무슨 군대냐고요.

그리고 선생님들, 저희한테 말 좀 곱게 하세요. 화나면 “미친놈”이라는 둥 “거지 같은 놈”이라는 둥 하시는데, 거친 말은 듣기 거북해요. 특히 울 과외쌤 누가 좀 말려주세요. 저보고 툭하면 “야, 그나마 점수 잘 나오는 수학 공부나 열심히 해” 그러는 거 있죠. 저를 무시하는 말이잖아요. 게다가 자꾸 제 외모 갖고 놀리지 좀 마세요. 학원에 딱 들어서면 “뚱뚱하다”거나 “너 왜 이렇게 못생겼냐”고 할 때마다 다른 애들이 웃는 거 못 봤어요? 정말, 장난도 한두 번이죠. 까먹으셨나 본데, 저 예민한 사춘기 여학생이라고요.

엄마·아빠도 맨날 “공부해라” “방 치워라” 그러시는데, 그 말 좀 안 하면 안 돼요? 그리고 걸핏하면 좋지 않은 표정으로 “나중에 커서 (왜 어릴 적에 공부하라는 잔소리 안 했느냐고) 엄마·아빠 욕하지 말고 지금 공부하라”고 비꼬지 좀 마세요. 어휴, 저 나중에 욕 안 할 거예요. 진짜로 안 한다고요.

선생님들이 공부 잘하거나 싹싹한 애들하고 그렇지 않은 애들을 차별하는 건 어디서 온 건지 모르겠어요. 저도 그 피해자예요. 국어 선생님, 기억하시죠? 1학기 때 제 친구 수진이(가명)와 복도에서 싸우고 수업에 조금 늦게 들어간 날이요. 울며 들어간 수진이한테만 “선생님이 뭐 도와줄 것 없냐. 이따 선생님에게 찾아오라”고 하셨죠. 아무리 수진이는 전교 1등이고 저는 반에서 중간이라지만,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사실 저도 그때 울고 싶었는데 참았던 거라고요. 선생님이 그러시면 반 아이들이 저를 어떻게 생각하겠어요? 나쁜 친구로 보잖아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선생님은 공부를 잘하나 못하나 동등하게 대해주면 좋겠어요.

앗, 벌써 쉬는 시간도 얼마 안 남았네요. 입을 뗀 김에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더 할게요. 제발, 우리 좀 놀게 해주세요. 주말에 친구들 만나 노래방 가거나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것 말고 주중에도 친구들 만나 수다도 떨고 예쁜 옷도 사러 가고 싶어요. 세상에서 친구들이랑 노는 게 제일 좋아요. 하지만 유일하게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건 주말에 친구 만나는 것뿐이라니…. 과외학원도 엄마가 어디서 듣고 와서 가라고 했죠, 학교에서 학급회의라고 한두 달에 한 번씩 하지만 거의 장난 수준이고 학교에서도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만 해야 하죠. 화장도 해보고 싶긴 한데, 그건 부모님이 개방적인 애들이나 해당되는 얘기죠. 우리 엄마한테 얘기하면 아마 난리 날걸요. 그나마 우리 학교는 다른 학교처럼 “귀 밑 몇㎝, 눈썹 위 몇㎝ 넘으면 안 된다”는 식으로 머리 길이 규제하고, 말 안 들으면 매질하고 그러지 않으니까, 그걸 위안 삼아야 할까요?

상황이 이러니 제가 사는 게 행복하겠냐고요. 하루하루가 시계추처럼 매일 똑같은데 말이죠. 어제의 하루와 오늘의 하루가 똑같기 때문에 내일의 하루도 오늘의 하루와 다르지 않을 거란 걸 알아요.

허걱, 4교시 시작 종 울렸어요. 저 이만 가봐야겠네요. 더 궁금한 게 있으면 한번 마음의 문을 열고 우리들 얘기를 조용히 들어보세요. “공부하라”는 말만 녹음기처럼 반복하는 그 입 좀 다무시고요. 그럼, 휘리릭.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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