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진 여성학 강사
[토요판] 정희진의 어떤 메모
<성의 변증법>, 슐라미스 파이어스톤, 김예숙 옮김
풀빛, 1983 박사학위 Ph. D.의 ‘여성형’은 Ph. T.(Putting husband through)다. 남편 뒷바라지를 비꼬는 말이라고 한다.(219쪽) 하지만 이는 슐라미스 파이어스톤이 활동했던 1960~70년대 얘기고 박사가 넘쳐나는 지금 여성들은 바깥일과 집안일, 두 개 ‘학위’가 요구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결혼 제도가 지속되는 한 여성해방은 여성의 이중노동일 뿐이라는 얘기다. 비혼, 저출산… 당시(1970년 출간) 그녀가 제시했던 대안은 이제 ‘해방’을 피하기 위한 여성들의 생존 전략이 되었다. “근친상간 금기는 가족을 보존하기 위해서만 필요하다.”(67쪽) 오해하기 쉬운 아니, 이해하기 어려운 이 ‘변태적’ 구절은 다른 페미니즘 사상들까지 몰상식으로 몰고 갈 만하다. 이 문장은 3장 ‘프로이트주의: 오도된 여성해방론’의 정신분석의 한계와 가능성을 논하는 과정에서 등장한 것으로, 맥락적 이해가 필요하다. 대개 가족 내 성폭력 가해자들은 근친 ‘강간’(强姦)을 ‘상간’(相姦)이라고 강변하지만, 프로이트 입장에서 보면 반대다. 그에 의하면 전자는 ‘도착’(倒錯)이고 후자는 ‘본능’이다. 파이어스톤은 프로이트에 부분적으로 동의하지만, 그의 이론이 진단, 즉 현실 묘사에 그쳤다고 본다. 결정적으로 프로이트는 아동의 사랑 대상, 즉 부모의 사회적 위치(성차별)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않았다. 근친강간 중 아버지가 가해자인 경우가 어머니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것은 성이 사랑의 감정에서 권력 관계로 변질된 결과다. 물론 이 주장은 <성의 변증법>이 처음이 아니다. 가족, 국가 등 사회 단위는 인간의 성 활동에 기초해 만들어진다는 원리는 프로이트, 뒤르켐, 마르쿠제 이론의 출발이다. 파이어스톤은 남성 이론의 모순을 해명하고 발전시켰을 뿐이다. 여성운동에 헌신하면서 25살의 나이에 말이다. <성의 변증법>을 급진주의 페미니즘의 대표작, 여성학의 고전이라고 소개하는 것은 부정의하다. 이 책은 그냥 인류의 고전이다.(남성이 쓴 고전도 특정 분야의 것이긴 마찬가지다.) 급진주의(radical) 페미니즘에서 ‘급진’은 “지나치게 앞선” “센 진보”라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과거 인류의 경험으로 돌아가 문제에 대한 근본적 고찰을 의미하는 ‘발본색원’(拔本塞源)의 그 발본이다. 근친상간에 대한 급진적 시각? 단지 발본적 접근이라는 소박한 의미다. “근친상간 금기는 가족 보존을 위해서만 필요하다”는, 근친상간과 근친강간은 같다거나 인간의 본능이라거나 심지어 가족제도 비판을 위해 근친상간을 실천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이 구절의 관심사는 근친상간이 아니라 가족이다. 가족은 여성의 노동 착취를 미화하는 표현인 성별 분업과 세대 개념, 두 가지를 통해 구성된다. 부부 외 가족 구성원 간에 성과 사랑이 발생하면 계급 재생산, 군사주의, 사회복지 무용론, 남성 연대, 여성 혐오 등 사회가 원하는 가족의 기능은 정지된다. 부모 사랑 금기는 오이디푸스/엘렉트라 콤플렉스, 동성애 혐오를 낳았다. 파이어스톤은 이 세가지 억압이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의 기본 장치이며 가족 폐지를 통한 근친상간 금기의 종식은 성, 계급, 자아 개념을 바꾸는 인류의 혁명을 가져올 것으로 보았다. 현재 가족은 계급 우월과 인생의 성패의 기준으로 절대시되고 있다. 가족제도가 만악의 근원이라거나 인간이 발명한 가장 폭력적인 행위(둘째는 전쟁)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필요한 것은, 가족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가장 인위적인 제도라는 인식이다. 사족 1. 일부 신문에 파이어스톤의 저서로 소개된 <여자 환관>(Female Eunuch)은 저메인 그리어의 책(<여성, 거세당하다>, 이미선 옮김)이다. 파이어스톤의 다른 책은 자신의 정신분열증 투병을 그린 <진공 상태>(Airless Spaces)다. 2. 며칠 전 헌책방에서 니체의 <선악을 넘어서>를 1000원에 샀다. 들뜬 마음에 그 책을 쓰려고 했지만 그녀의 부고를 접하고 다음으로 미룬다. 작가로서도 개인적으로도 그녀는 행복하지 않았다. 니체가 연대사를 건넨다. “축첩조차도 부패했다. 결혼 제도 때문에.”(1982, 97쪽) 정희진 여성학 강사 <한겨레 인기기사>
■ ‘협박전화 공방’ 안철수도 상처…자칭‘보수’ 호감도 썰물
■ ‘도곡동 땅 실소유주 증인’ 안원구씨 “국감 나갈 것”
■ 야권단일후보 누가 적합한지 물었더니…
■ ‘내수 악화 조짐’에 강남 사는 김여사도 지갑 안연다
■ “공정위 4대강 늑장처리, 청와대와 협의 정황”
■ 70년대 가수왕 ‘오동잎’ 최헌 별세
■ [화보] 알록달록 색 입은 가을
풀빛, 1983 박사학위 Ph. D.의 ‘여성형’은 Ph. T.(Putting husband through)다. 남편 뒷바라지를 비꼬는 말이라고 한다.(219쪽) 하지만 이는 슐라미스 파이어스톤이 활동했던 1960~70년대 얘기고 박사가 넘쳐나는 지금 여성들은 바깥일과 집안일, 두 개 ‘학위’가 요구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결혼 제도가 지속되는 한 여성해방은 여성의 이중노동일 뿐이라는 얘기다. 비혼, 저출산… 당시(1970년 출간) 그녀가 제시했던 대안은 이제 ‘해방’을 피하기 위한 여성들의 생존 전략이 되었다. “근친상간 금기는 가족을 보존하기 위해서만 필요하다.”(67쪽) 오해하기 쉬운 아니, 이해하기 어려운 이 ‘변태적’ 구절은 다른 페미니즘 사상들까지 몰상식으로 몰고 갈 만하다. 이 문장은 3장 ‘프로이트주의: 오도된 여성해방론’의 정신분석의 한계와 가능성을 논하는 과정에서 등장한 것으로, 맥락적 이해가 필요하다. 대개 가족 내 성폭력 가해자들은 근친 ‘강간’(强姦)을 ‘상간’(相姦)이라고 강변하지만, 프로이트 입장에서 보면 반대다. 그에 의하면 전자는 ‘도착’(倒錯)이고 후자는 ‘본능’이다. 파이어스톤은 프로이트에 부분적으로 동의하지만, 그의 이론이 진단, 즉 현실 묘사에 그쳤다고 본다. 결정적으로 프로이트는 아동의 사랑 대상, 즉 부모의 사회적 위치(성차별)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않았다. 근친강간 중 아버지가 가해자인 경우가 어머니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것은 성이 사랑의 감정에서 권력 관계로 변질된 결과다. 물론 이 주장은 <성의 변증법>이 처음이 아니다. 가족, 국가 등 사회 단위는 인간의 성 활동에 기초해 만들어진다는 원리는 프로이트, 뒤르켐, 마르쿠제 이론의 출발이다. 파이어스톤은 남성 이론의 모순을 해명하고 발전시켰을 뿐이다. 여성운동에 헌신하면서 25살의 나이에 말이다. <성의 변증법>을 급진주의 페미니즘의 대표작, 여성학의 고전이라고 소개하는 것은 부정의하다. 이 책은 그냥 인류의 고전이다.(남성이 쓴 고전도 특정 분야의 것이긴 마찬가지다.) 급진주의(radical) 페미니즘에서 ‘급진’은 “지나치게 앞선” “센 진보”라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과거 인류의 경험으로 돌아가 문제에 대한 근본적 고찰을 의미하는 ‘발본색원’(拔本塞源)의 그 발본이다. 근친상간에 대한 급진적 시각? 단지 발본적 접근이라는 소박한 의미다. “근친상간 금기는 가족 보존을 위해서만 필요하다”는, 근친상간과 근친강간은 같다거나 인간의 본능이라거나 심지어 가족제도 비판을 위해 근친상간을 실천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이 구절의 관심사는 근친상간이 아니라 가족이다. 가족은 여성의 노동 착취를 미화하는 표현인 성별 분업과 세대 개념, 두 가지를 통해 구성된다. 부부 외 가족 구성원 간에 성과 사랑이 발생하면 계급 재생산, 군사주의, 사회복지 무용론, 남성 연대, 여성 혐오 등 사회가 원하는 가족의 기능은 정지된다. 부모 사랑 금기는 오이디푸스/엘렉트라 콤플렉스, 동성애 혐오를 낳았다. 파이어스톤은 이 세가지 억압이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의 기본 장치이며 가족 폐지를 통한 근친상간 금기의 종식은 성, 계급, 자아 개념을 바꾸는 인류의 혁명을 가져올 것으로 보았다. 현재 가족은 계급 우월과 인생의 성패의 기준으로 절대시되고 있다. 가족제도가 만악의 근원이라거나 인간이 발명한 가장 폭력적인 행위(둘째는 전쟁)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필요한 것은, 가족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가장 인위적인 제도라는 인식이다. 사족 1. 일부 신문에 파이어스톤의 저서로 소개된 <여자 환관>(Female Eunuch)은 저메인 그리어의 책(<여성, 거세당하다>, 이미선 옮김)이다. 파이어스톤의 다른 책은 자신의 정신분열증 투병을 그린 <진공 상태>(Airless Spaces)다. 2. 며칠 전 헌책방에서 니체의 <선악을 넘어서>를 1000원에 샀다. 들뜬 마음에 그 책을 쓰려고 했지만 그녀의 부고를 접하고 다음으로 미룬다. 작가로서도 개인적으로도 그녀는 행복하지 않았다. 니체가 연대사를 건넨다. “축첩조차도 부패했다. 결혼 제도 때문에.”(1982, 97쪽) 정희진 여성학 강사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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