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진 여성학 강사
[토요판] 정희진의 어떤 메모
<무엇을 할 것인가?>
V. I. 레닌 지음, 김민호 옮김, 도서출판 백두, 1988 1901년 러시아 혁명 당시 레닌이 ‘우리 운동의 긴급한 문제’(부제)에 답하기 위해 쓴 이 책을 해석할 능력도 지면도 없다. 대신 슬라보이 지제크의 견해에 전부 동의하지는 않지만 <지젝이 만난 레닌-레닌에게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를 권한다. 마르크스라면 몰라도 요즘 세상에 웬 레닌? 이렇게 생각한다면, 레닌주의에 관한 오해가 아니라 지식 일반에 대한 오류다. 사상은 과학이든 이데올로기든 조류(潮流)가 아니라 현실의 필요와 상황에 근거한 것이다. 사상의 발생은 연대기일 수 있지만 어떤 사유도 그 자체로는 시대착오거나 시기상조일 수 없다. 어떤 지역에서 ‘한물간’ 이야기가 다른 이들에겐 절실할 수 있고 가장 올바른 길일 수 있다. 사상은 보편성이 아니라 공간적(local) 맥락에서 논해져야 한다. 한국 사회에서 레닌주의의 시련은, 마르크스주의 내부에서 레닌의 팔자인지 ‘분단조국의 운명’인지 모르겠으나, 부당하다. 이 사회는 그를 학술적으로 다루지 않는다. 몇 가지 에피소드. 나는 10대의 마지막 해, 타자기로 친 이 팸플릿을 기억이 안 날 만큼 수십번 읽었다. 외워야 했기 때문이다. 문헌 전체도 아니었고 이해했을 리도 없다. 아니, 이해가 필요치 않았다. 1988년 당시 주요 사회과학 출판사 중 하나였던 ‘백두’에서 나온 이 책의 원서는 러시아어가 아닌 영어인데다 번역자 이름이 표지(김민호)와 서지사항(김민숙)이 다르다. 어느 헌신적인 지식인의 가명이었을 것이다. 옮긴이 후기도 통상적이지 않다. 87년 6월항쟁 평가와 ‘시에이(CA) 그룹’ 비판 등 정세 분석이 깨알만한 크기로 28쪽이나 서술돼 있다. 요즘 이런 글자 크기의 책이 있기나 할까. <무엇을 할 것인가?>의 요지는 변혁운동에서 나타나는 경제주의 비판과 그 대안으로서의 전위조직 건설이다. 두가지는 같은 주제의 얘기다. 사회구조와 개인의 관계에 대한 현실 마르크스주의자 레닌의 크레도(신조)다. 근대성의 핵심은 계몽, 기획성, 인간 의지에 의한 사회와 자연 개조다. 나는 이 책이 근대적 사유를 (좋은 의미에서) 끝까지 밀어붙인 최고의 텍스트라고 생각한다. 레닌은 구조와 개인을 극도로 배타적으로 보았다. 이 두 개념 사이에 어떠한 상호작용도 매개도 혼란도 없다. 있다면 구조에 의한 개인의 ‘오염’뿐이다. “차르 체제 혹은 자본주의 아래서는 혁명가가 나올 수 없으며 자생적인 것은 근본적으로 반혁명적이다.” 때문에 변혁은 대중의 참여와 연대가 아니라 고도의 훈련과 목적의식으로 무장된 직업 혁명가에 의해 지도돼야 했고, 또 (그럴 때) 성공했다. 사회 구조가 각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은 동일하다는 전제, 세상에 물들지 않은 목적의식성, 따라서 계속적인 전진. 이러한 이분법은 낯설지 않다. 70년대 마르크스주의 출신의 급진적 페미니스트인 캐서린 매키넌의 유명한 선언, “가부장제 아래서 모든 섹스는 폭력이다”도 개인과 사회의 환원 불가능성(결국 환원성)을 잘 보여주는 언설이고, 이성애 삽입 섹스의 부분적 현실이기도 하다. 어쨌든 ‘상록수 정신’이든 ‘새마을운동’이든 인간 스스로에 대한 인간의 믿음은 진보(발전주의)라는 이름 아래 지속되고 있다. 하지만 구조와 개인의 관계는 이미 알튀세르, 푸코, 무페 등 수많은 포스트구조주의자에 의해 ‘해결’됐다. 내가 이 글을 쓴 진짜 이유는 다음과 같다. ‘무엇을 할 것인가?’(What is to ‘be done’?), 이 수동태 표현이 숨 막힌다. ‘하면 된다’도 아니고 무엇인가가 ‘되어 있어야 한다’니. 이젠 무엇을 함으로써가 아니라 안 함으로써 세상이 바뀌길 바란다. 무엇을 안 할 것인가? 무엇이 가장 올바른가보다 최소한 어떤 행동은 하지 말아야 한다가 화두가 돼야 한다. 북반구의 7, 8월. 뜨거운 에어컨, 무너지는 빙하…. 무엇인가 꼭 해야 하는 이들을 제외하고, 이 계절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살길이다. 여름 세끼, 하는 것도 먹는 것도 고역이다. 30도 날씨에 생계 노동은 말할 것도 없고 잠드는 것조차 힘에 부친다. 개인의 기력만이 문제가 아니다. 지구가 망가지고 있다. 무엇을 할 것인가? 아무것도 하지 말자. 레닌 동지도 동의할 것이다. 정희진 여성학 강사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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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I. 레닌 지음, 김민호 옮김, 도서출판 백두, 1988 1901년 러시아 혁명 당시 레닌이 ‘우리 운동의 긴급한 문제’(부제)에 답하기 위해 쓴 이 책을 해석할 능력도 지면도 없다. 대신 슬라보이 지제크의 견해에 전부 동의하지는 않지만 <지젝이 만난 레닌-레닌에게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를 권한다. 마르크스라면 몰라도 요즘 세상에 웬 레닌? 이렇게 생각한다면, 레닌주의에 관한 오해가 아니라 지식 일반에 대한 오류다. 사상은 과학이든 이데올로기든 조류(潮流)가 아니라 현실의 필요와 상황에 근거한 것이다. 사상의 발생은 연대기일 수 있지만 어떤 사유도 그 자체로는 시대착오거나 시기상조일 수 없다. 어떤 지역에서 ‘한물간’ 이야기가 다른 이들에겐 절실할 수 있고 가장 올바른 길일 수 있다. 사상은 보편성이 아니라 공간적(local) 맥락에서 논해져야 한다. 한국 사회에서 레닌주의의 시련은, 마르크스주의 내부에서 레닌의 팔자인지 ‘분단조국의 운명’인지 모르겠으나, 부당하다. 이 사회는 그를 학술적으로 다루지 않는다. 몇 가지 에피소드. 나는 10대의 마지막 해, 타자기로 친 이 팸플릿을 기억이 안 날 만큼 수십번 읽었다. 외워야 했기 때문이다. 문헌 전체도 아니었고 이해했을 리도 없다. 아니, 이해가 필요치 않았다. 1988년 당시 주요 사회과학 출판사 중 하나였던 ‘백두’에서 나온 이 책의 원서는 러시아어가 아닌 영어인데다 번역자 이름이 표지(김민호)와 서지사항(김민숙)이 다르다. 어느 헌신적인 지식인의 가명이었을 것이다. 옮긴이 후기도 통상적이지 않다. 87년 6월항쟁 평가와 ‘시에이(CA) 그룹’ 비판 등 정세 분석이 깨알만한 크기로 28쪽이나 서술돼 있다. 요즘 이런 글자 크기의 책이 있기나 할까. <무엇을 할 것인가?>의 요지는 변혁운동에서 나타나는 경제주의 비판과 그 대안으로서의 전위조직 건설이다. 두가지는 같은 주제의 얘기다. 사회구조와 개인의 관계에 대한 현실 마르크스주의자 레닌의 크레도(신조)다. 근대성의 핵심은 계몽, 기획성, 인간 의지에 의한 사회와 자연 개조다. 나는 이 책이 근대적 사유를 (좋은 의미에서) 끝까지 밀어붙인 최고의 텍스트라고 생각한다. 레닌은 구조와 개인을 극도로 배타적으로 보았다. 이 두 개념 사이에 어떠한 상호작용도 매개도 혼란도 없다. 있다면 구조에 의한 개인의 ‘오염’뿐이다. “차르 체제 혹은 자본주의 아래서는 혁명가가 나올 수 없으며 자생적인 것은 근본적으로 반혁명적이다.” 때문에 변혁은 대중의 참여와 연대가 아니라 고도의 훈련과 목적의식으로 무장된 직업 혁명가에 의해 지도돼야 했고, 또 (그럴 때) 성공했다. 사회 구조가 각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은 동일하다는 전제, 세상에 물들지 않은 목적의식성, 따라서 계속적인 전진. 이러한 이분법은 낯설지 않다. 70년대 마르크스주의 출신의 급진적 페미니스트인 캐서린 매키넌의 유명한 선언, “가부장제 아래서 모든 섹스는 폭력이다”도 개인과 사회의 환원 불가능성(결국 환원성)을 잘 보여주는 언설이고, 이성애 삽입 섹스의 부분적 현실이기도 하다. 어쨌든 ‘상록수 정신’이든 ‘새마을운동’이든 인간 스스로에 대한 인간의 믿음은 진보(발전주의)라는 이름 아래 지속되고 있다. 하지만 구조와 개인의 관계는 이미 알튀세르, 푸코, 무페 등 수많은 포스트구조주의자에 의해 ‘해결’됐다. 내가 이 글을 쓴 진짜 이유는 다음과 같다. ‘무엇을 할 것인가?’(What is to ‘be done’?), 이 수동태 표현이 숨 막힌다. ‘하면 된다’도 아니고 무엇인가가 ‘되어 있어야 한다’니. 이젠 무엇을 함으로써가 아니라 안 함으로써 세상이 바뀌길 바란다. 무엇을 안 할 것인가? 무엇이 가장 올바른가보다 최소한 어떤 행동은 하지 말아야 한다가 화두가 돼야 한다. 북반구의 7, 8월. 뜨거운 에어컨, 무너지는 빙하…. 무엇인가 꼭 해야 하는 이들을 제외하고, 이 계절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살길이다. 여름 세끼, 하는 것도 먹는 것도 고역이다. 30도 날씨에 생계 노동은 말할 것도 없고 잠드는 것조차 힘에 부친다. 개인의 기력만이 문제가 아니다. 지구가 망가지고 있다. 무엇을 할 것인가? 아무것도 하지 말자. 레닌 동지도 동의할 것이다. 정희진 여성학 강사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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