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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인간관계가 가장 어려웠다

등록 2012-06-29 21:06

정희진 여성학 강사
정희진 여성학 강사
[토요판] 정희진의 어떤 메모
<조울병, 나는 이렇게 극복했다>
케이 레드필드 재미슨 지음, 박민철 옮김/하나의학사, 2000

투병기에는 “~극복했다”는 제목이 많다. 이 책은 의학 전문서로서 번역도 훌륭하고 우리말 제목도 설득력 있지만 원제를 알아두는 것도 좋다. ‘An Unquiet Mind’(1995). 요동치는 마음. 저자는 평온한 상태만 건강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완치보다 “사람의 마음에는 늘 추진력이 되면서 동시에 문제가 되는 힘이 있다”(277쪽)고 믿는다. 병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다. 질병은 고통을 준다. 그러나 죽음을 포함한 평화와 삶의 매혹적인 비밀을 깨닫게 해주는 선물이기도 하다.

저자는 평생 조울증을 앓아온 생존자이며 미국 존스홉킨스대학 정신과에 재직중인 임상심리학자이다. 그녀의 다른 책도 명저다(<자살의 이해> <천재들의 광기>). 저자는 뛰어난 학자이자 유명한 환자다. 역시 우울증 환자이면서 22개 언어로 번역된 베스트셀러의 저자인 앤드루 솔로몬의 <한낮의 우울>에 보면, “저는 케이 재미슨 같은 사람이 아니잖아요?”라고 하소연하는 내담자(환자)가 나온다. 그만큼 그녀는 투병 공개와 연구로 많은 이들의 목숨을 구한 성공한 환자로 알려져 있다.

조현병(정신분열증)과 함께 2대 정신병의 하나라는 조울증(躁鬱症)은, 흥분 상태(manic)와 우울한 상태(depressive)가 주기적으로 교대로 혹은 한쪽이 우세하거나 혼재되어 나타난다. 이 병은 인체를 구성하는 절대적 요소인 감정이 통제되지 않는 기분장애(mood disorder)다. 병의 주요 증상이, 타인은 이해하기 힘든 갑작스런 불성실과 무능력이다 보니 건강 문제가 아니라 ‘인간성 추락’으로 인식되기 쉽다.

“인간관계가 가장 어려웠다”는 말은 평범하다. 누구나 절감하는 삶의 근본 문제다. 건강해도 인간관계는 원래 어려운 법이다. 나는 인간관계와 기분(스트레스 관리)이 인생의 관건이라고 생각한다. 인생에서 중요한 결정, 욕망, 생과 사, 행과 불행은 모두 인간관계와 관련되어 있다. 관계가 삶의 질과 생사를 결정한다.

주변사람들에게 이해, 공감, 수용받고 싶은 욕구는 생존에 필수적이다. 인간은 자신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알아주기 바라는 마음에서 자살하기도 하는 관계적 존재다. 소통을 위해 죽는 것이다. 이것은 아이러니도 잘못된 선택도 아니다. 이 책 페이지마다 나오는 말, 정신질환을 앓아가면서 사회생활을 해야 하는 사람들에겐 “인간관계가 가장 어렵다”. 죽도록 아픈데 아니, 죽음만이 유일한 해결책인데 숨겨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우울증은 살아있는 죽음이다. 살아있는 죽음을 살 것인가, 죽음으로써 살 것인가.

나의 관심사는 이들의 고통에 대한 ‘홍보’(또다른 편견을 낳을 것이다)나 공감에 대한 호소(자칫 배려한다는 우월의식으로 연결되기 쉽다)가 아니라 사회의 태도다. 두가지로 나눈다면 하나는 빨리 나으라는 채근과 기대이고, 또 하나는 낙오자 취급(“쟤는 끝났어”)이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환자는 두가지 반응 모두 죽으라는 독촉으로 받아들이기 쉽다고 한다.

정신질환자의 자살률이 가장 높은 시기는 병세가 호전되어 병원에서 퇴원할 때다. 병은 나았지만 이미 인간관계와 경제적 능력… 모든 것을 잃은 상태이기 때문에 생활고로 죽는 것이다. 경쟁과 생산력 중심 사회에서 머리가 아픈? 마음이 아픈? 아니 몸이 아픈! 사람들은 ‘진정한’ 낙오자로 간주된다. 달리기에서 넘어진 것이다. 흔히 사회적 소수자로 나열되는 여성, 장애인, 동성애자들은 ‘타고났다’고 생각하기 때문에(물론 그렇지 않다) 관용하는 측면이 있지만 건강 약자에게는 안도감과 공포가 뒤섞인 마음에서, 선을 긋는 가혹함을 보인다. 중년 이후의 정신질환자에게는 특히 그렇다.

두가지가 기억에 남는다. 그녀는 교수직에 지원할 때 오랜 조울증 병력과 현재도 투병중임을 밝힌다. 대학 당국은 “환자의 고통을 잘 이해할 수 있고 이는 연구자의 자원”이라며 병력을 채용 이유 중 하나로 삼는다. 이런 점에서 미국은 선진사회다. 또 하나는 전세계를 무대로 한 그녀의 ‘미친 짓’을 무조건 이해하고 수습해주고 격려를 포기하지 않았던 오빠다. 그녀의 존재는 이런 사회와 관계의 승리일지도 모른다.

정희진 여성학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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