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진 여성학 강사
[토요판] 정희진의 어떤 메모
문대성씨의 박사학위 청구 논문은 진중권 교수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의 노고로 표절이 아닌 것으로 판명되었다. “복사” “다운로드”라는 게 중론인 듯하다. 이번 사건은 정치, 선거 이슈라기보다 학계와 대학 사회 문제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정치인은 북한과 지위가 비슷한 ‘동네북’이라, 대학을 대신해 ‘희생양’이 됐다. 주변에 학계(와 그 근처)에 있는 지인들이 많다 보니, “표절이 왜 나빠? 대필이 더 나쁘지!” “새누리당, 당사자, 발급 대학 중 가장 중요한 행위자는 누구인가?” “나보다 잘 쓰는 사람이 없어 표절 못 하겠던데” “외국 거 베끼면 되잖아” 등 분노, 분석, 조롱이 오갔다.
내 관심은 노동이다. 표절을 필사(筆寫)로 생각하는 기계치인 입장에서 표절-복사-다운로드는 기술 발전에 따른 노동 강도 순서다. 이 과정조차 다른 이에게 시키는 사람도 있겠지만, 어쨌든 다운로드가 가장 쉬워 보인다. 공부에 해당하는 한·중·일 의 한자는 각기 다르다. ‘工夫’(한국), ‘勉强’(일본), 중국. 우리말이 공부의 의미와 가장 가깝다. 언젠가 도올 선생은 ‘工’은 공부가 ‘노가다’라는 의미이고, 지식인은 ‘노동의 달인’이라고 해석했다. ‘工夫’는 라이트 밀즈의 “지식인은 장인(匠人, craftsman)”과 정확히 조응한다.
찰스 라이트 밀즈(1916~1962)의 <사회학적 상상력>은 어떻게 소개하든 사족이다. 이 책은 전공을 막론하고 공부를 주제로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읽고, 인식하고, 갖춰야 할 정치학과 윤리학을 다루고 있다. 1959년에 출판됐지만 유명한 고전이라 원서도 번역서도 여러 판본이 있다. 이 글의 텍스트는 1977년 강희경, 이해찬(세종시에서 당선된 그분 맞다)이 공동 번역한 1992년 중판 2쇄본이다.
이 책은 냉전 이후 미국 사회과학계의 보수성과 관료주의에 대한 비판에서 시작됐지만, 밀즈는 좌파를 포함한 어느 진영에도 속하지 않고 외톨이를 자처했으며 두려움이 없었다. 1957년 자서전 성격의 편지에서도 “셀프메이드”(self-made)를 강조했다. 이후 신좌파의 선구자, 순교자, 뼛속까지 유목민(radical nomad)으로 불렸다.
많은 비평가들이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논하는 부분은 특이하게도 부록인 “장인기질론”이다. 지식인을 화이트칼라로 여기는 것은 앎에 대한 가장 치명적인 오해다. 이런 인식이라면 절대로 공부를 잘할 수 없고 좋은 글이 나올 수 없다. 자료 조사, 인터뷰, 독서, 집필…. 논문 하나를 위해 수천쪽의 자료를 읽는 것은 기본이다. 체력과 끈기가 관건. 연구는 고된 노동이다.
밀즈가 좋아한 용어 ‘기예’(技藝, craft)는 세가지 조건을 함축한다. 외롭고 지루한 노동, 완성도에 대한 비타협성, 창의력. “기존의 집단 문화에 저항하라. 모든 사람이 자신만의 방법론자가 되자. 모든 사람이 자신만의 이론가가 되고, 이론과 방법이 지식(craft)을 생산하는 실천이 되도록 하자.”(261쪽)
4살에 작곡한 모차르트 같은 이를 제외하면, 대개 지식의 수준은 헌신한 노동의 시간과 질에 의해 결정된다. 사유 자체가 중노동이다. 획기적인 문제의식은 노동의 산물이다. 여기에 선한 마음이 더해진다면 인간의 기적이요, 공동체의 축복이다. 공부를 잘하는 방법? 지적으로, 정치적으로 빼어난 글을 쓰는 방법? 책상에 8시간 이상 앉아 있을 수 있는 몸이 첫째다.
경쟁 사회에 국한하면 인간이 행복해지는 방법은 두가지다. 욕망을 다루는 도인이 되거나 욕망을 달성하거나. 평생 욕망을 관리하느라 몸부림치는 것보다 (구조의 제약이 크긴 하지만) 달성하는 편이 더 쉬울지 모른다. 욕망을 이루려면 노력해야 한다. 특히 지식인, 운동선수, 예술가는 부자나 권력자와 달리 혼자만의 노동, 자신과의 결투가 성공에 절대적인 분야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에 이르는 노고와 박사가 되는 노동은 동일하다고 생각한다. 전자는 잘하고 후자는 어렵고? 전자는 운동선수고 후자는 지식인이고?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같은 공부다. 그렇지 않다면, 둘 다 아닐 가능성이 많다. 여성학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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