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명숙 원장은 환자의 몸은 물론 마음까지 치료해야 병을 제대로 고칠 수 있다고 믿는다. 지난 달 16일 전남 화순군 라이프크리닉을 찾아 암 수술을 받은 환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향기 나는 사람들] ‘전인치유’ 명의 최명숙 원장
암 재발에 무력감 느끼다 독일서 ‘참의학’ 목격
‘라이프크리닉’ 세워 몸-마음-영혼 함께 보살펴
암 재발에 무력감 느끼다 독일서 ‘참의학’ 목격
‘라이프크리닉’ 세워 몸-마음-영혼 함께 보살펴
광주 현대병원 유방암센터 최명숙(50) 원장은 환자의 몸은 물론 마음과 영혼까지 치료하려 애쓰는 의사입니다. 근본 치료는 "몸, 마음, 영혼을 함께 치료하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최 원장은 수요일이면 전남 화순군에 자리한 '라이프크리닉'을 찾습니다. 이 병원은 국내 유일의 암전문요양병원으로 보완의학과 전인치유 개념을 도입해 암환자의 회복을 돕는 곳입니다. 그는 이 병원의 홀리스틱힐링센터 소장을 맡아 암환자들의 마음과 영혼을 돌보고 있습니다.
16일 오전 9시30분 이 병원 1층 홀에 최 원장, 직원, 입원 환자 등 10여 명이 눈을 감고 손을 맞잡은 채 동그란 원을 그리고 서 있습니다. 최 원장이 선창을 하고 환자들이 그의 말을 따라 합니다. "라이프크리닉의 모든 사람들이 행복해지기를", "라이프크리닉에 더 많은 사람들이 와서 행복해지기를", "나는 행복하다", "나는 행복하다".
이 병원의 하루 일과는 이런 기도로 시작됩니다. 그는 수요일 하루 이곳에서 암환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다친 마음을 치료하는 일을 합니다. 환자는 물론 직원들까지 참여하는 명상 프로그램도 이끕니다.
환자는 물론, 직원까지 동참해 명상으로 하루 시작
최 원장이 환자의 마음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2002년, 한 선배 여의사의 죽음을 지켜보면서였습니다. 그 선배는 암으로 수술을 받았으나 그로부터 8년 뒤 암이 재발해 세상을 떠났습니다. 최 원장은 유방암 치료 분야에서 손꼽히는 의사입니다. 한 해에 60차례 이상 유방암 수술을 합니다. 대학병원이 아닌 지역의 작은 병원에서 이렇게 많은 수술을 하는 곳은 드물다고 합니다. 실력을 인정받고 있는 것이지요. 그럼에도 말기암 환자 앞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마지막에는 온몸에 암세포가 번졌는데 현대의학으로는 더 이상 해줄 것이 없었습니다. 그동안 환자가 암이 재발해 세상을 떠나더라도 솔직히 남의 일처럼 생각됐습니다. 하지만 그 선배의 죽음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선배가 세상을 떠난 뒤 왜 암이 재발하는지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그 전까지 최 원장은 서양의학 이외의 치료법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아홉번째, 호남 지역 최초의 여성 외과전문의로 자부심은 대단했습니다. 전문의 자격을 딴 뒤 1년 동안의 경험은 그 자부심에 확신을 줬습니다.
"다 죽어가던 환자가 수술 뒤 살아났습니다. 못 고칠 병이 없다는 자신감이 있었어요." 하지만 선배 여의사의 죽음은 최 원장에게 새로운 의학에 눈을 뜨게 해줬습니다. 그는 2003년부터 독일을 드나들며 보완의학을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베를린의 하펠회에병원 등 여러 병원에서 미슬토치료, 면역치료 등 보완의학에 바탕한 치료법을 배웠고, 슈타이너의 이론에 바탕한 인지의학을 공부했습니다. 특히 인지의학은 그에게 사람의 몸, 마음, 영혼이 서로 연결되어 있으므로 이를 모두 돌보는 전인치료가 필요함을 깨닫게 해줬습니다. 최 원장은 2003년 1월 베를린의 하펠회에병원을 방문했을 때 목격한 장면을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병원 안을 걸어가고 있었는데 한 의사가 병원 로비에서 암환자의 말을 30분 가량 들어주고 있었습니다. 독일어를 몰랐지만 느낌에 '별 볼 일 없는 얘기'인 것 같았습니다. 그럼에도 그 의사는 로비에 선 채 환자의 말을 경청하고 있었습니다. "제게는 아주 충격적인 장면이었습니다. 아, 이런 것이 참된 의학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항암제, 방사선, 수술은 몸만 치료하는 것입니다. 환자의 마음까지 헤아리는 게 제대로 된 의학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지요."
“대부분 큰 충격을 받았거나 마음 속에 엄청난 분노”
독일에서 돌아온 뒤 그도 환자와 상담을 시작했습니다.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저녁 병원 진료를 마친 뒤 7시부터 환자를 만나기 시작했습니다. 의대를 다닐 때 환자의 말을 많이 들어주고 나중에 필요한 말을 하는 의사가 되겠다던 다짐이 생각났습니다. 환자의 얘기를 들으면서 암이 재발하는 원인 가운데 하나를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환자들 대부분 큰 충격을 받았거나 마음속에 엄청난 분노를 갖고 있었어요. 병과 마음이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더군요. 몸만 치료하고 그대로 두면 병이 재발하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상담을 하고 나면 몸은 지칠 대로 지쳐 집에 오면 쓰러져 자기에 바빴습니다. 하지만 최 원장은 도리어 상담의 범위를 가족으로 넓혔습니다. 환자의 마음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게 가족 등 가까운 이들이기 때문입니다.
상담을 하면서 독일처럼 인지의학에 바탕한 병원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더욱 간절해졌습니다.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가진 이들과 함께 한다면 환자에게 더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라이프크리닉은 그렇게 탄생했습니다. 그런 배경을 가진 병원이기에 라이프크리닉은 미슬토 치료, 온열요법, 메가비타민 요법, 미술치료, 치유기공, 아유르베다 마사지 등 다양한 보완의학적 요법을 써서 환자를 치료합니다.
최 원장은 병원 시설도 환자 치료에 필요한 최적의 상태로 만들려고 노력했습니다. 건물은 물론 침구류까지 친환경 소재를 썼습니다. 심지어 풍수까지 고려했습니다. 병원에서 제공되는 식사는 자연농으로 기른 친환경유기농산물만을 써서 만듭니다. 그는 직원들의 행복에도 신경을 씁니다. 환자를 돌보는 직원들이 행복하지 않다면 환자들에게 부정적인 느낌이 전달된다고 생각해서입니다. 그런 이유에서 그는 직원들과 스스로의 삶을 행복하게 꾸려가는 데 도움이 되는 다양한 종류의 마음공부를 함께 합니다. 그 자신도 정신세계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노자> <장자> 등 동양철학과 불교를 공부하고 있고, 대학원에서 상담심리학을 배우고 있습니다.
하지만 병원을 만드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병원 건립에 20년 가까운 의사생활로 번 돈의 상당 부분이 들어갔습니다. 그의 말대로 "돈벌이와는 크게 상관없는 병원"에 말입니다. 주위에서는 "최 원장이니까 할 수 있는 일"이라고 격려했지만 개원 초기 입원환자는 2명뿐이었습니다. 하지만 걱정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뜻이 아름다우면 결과도 아름답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처음 2명의 환자로 시작했지만 지금 라이프크리닉은 운영비는 충당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습니다. 그는 병원이 성공하기를 바랍니다. "실패하면 좋은 뜻도 함께 묻히기 때문"입니다. 그보다 최 원장은 라이프크리닉이 환자 치료에 크게 도움이 되고 있는 것 같아 기쁘다고 했습니다. 그는 "다행스럽게도 최근 2년간 수술한 환자 가운데 돌아가신 분은 없다"고 마음까지 다스리는 자신의 치료 방법이 낳고 있는 성과를 내비쳤습니다.
89년 이래 자신이 수술한 모든 환자에 해마다 ‘러브레터’
최 원장은 자신을 따르는 후배들에게 좋은 의사의 조건으로 실력과 경험 외에 환자에 대한 사랑과 연민을 강조합니다. "그런 마음이 없는 의사는 기계나 다름없다"는 게 그의 생각입니다. 대학 시절 의대생으로는 드물게 야학을 했고, 민중신학에도 관심이 많았던 그는 환자에 대한 애정도 남다릅니다. 그는 89년 의술을 펴기 시작한 뒤부터 지금까지 자신이 전신마취를 한 뒤 수술한 환자의 기록을 모두 보관하고 있습니다. 그는 그 환자들에게 해마다 연하장을 보냅니다. 처음 125장으로 시작한 '러브레터'는 한때 1만2천 장까지 늘었으며 지난해 말에도 8천 장의 카드를 보냈습니다.
"외과 과장으로 첫 해를 마칠 때쯤 환자들에게 너무 감사한 마음이 들었어요. 여의사라고 거부하지 않고 자신의 생명을 맡긴 분들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더라구요."
최 원장이 유방암 전문의가 되기로 마음먹은 것도 남자가 대부분인 외과의사 앞에서 옷 벗는 것을 부담스러워 하는 여성들이 안쓰러워서였습니다. 그의 '사람'에 대한 사랑은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입니다. 자수성가한 뒤 광주에서 큰 약국을 경영했던 아버지는 그에게 늘 '역지사지'를 강조했고, 어머니는 늘 "어려운 이웃을 돕고 살라"고 가르쳤습니다. 그의 부모님은 남을 도울 때 가능하면 현금을 주라고 했습니다. 가장 필요한 데 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부모의 가르침을 잊지 않고 그는 해마다 이곳저곳에 1천만원 이상을 기부합니다.
최 원장은 <노자>의 유명한 구절 '상선약수(上善若水)'를 좋아합니다. 그가 쓰는 호도 여수(如水)입니다. 물처럼 살기. 그에게 물은 끊임없이 자신을 낮추고, 맑고 탁함을 구분하지 않고 모든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감싸는 예수의 사랑을 닮은 존재입니다. 그가 의학의 새로운 길을 가기 위해 세운 라이프크리닉에는 이런 글이 붙어 있습니다.
그대 자신을 아무런 조건 없이 사랑하십시오. 그대 자신을 사랑함같이 모든 이를 사랑하십시오.'
화순/권복기 기자 bokkie@hani.co.kr
"다 죽어가던 환자가 수술 뒤 살아났습니다. 못 고칠 병이 없다는 자신감이 있었어요." 하지만 선배 여의사의 죽음은 최 원장에게 새로운 의학에 눈을 뜨게 해줬습니다. 그는 2003년부터 독일을 드나들며 보완의학을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베를린의 하펠회에병원 등 여러 병원에서 미슬토치료, 면역치료 등 보완의학에 바탕한 치료법을 배웠고, 슈타이너의 이론에 바탕한 인지의학을 공부했습니다. 특히 인지의학은 그에게 사람의 몸, 마음, 영혼이 서로 연결되어 있으므로 이를 모두 돌보는 전인치료가 필요함을 깨닫게 해줬습니다. 최 원장은 2003년 1월 베를린의 하펠회에병원을 방문했을 때 목격한 장면을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병원 안을 걸어가고 있었는데 한 의사가 병원 로비에서 암환자의 말을 30분 가량 들어주고 있었습니다. 독일어를 몰랐지만 느낌에 '별 볼 일 없는 얘기'인 것 같았습니다. 그럼에도 그 의사는 로비에 선 채 환자의 말을 경청하고 있었습니다. "제게는 아주 충격적인 장면이었습니다. 아, 이런 것이 참된 의학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항암제, 방사선, 수술은 몸만 치료하는 것입니다. 환자의 마음까지 헤아리는 게 제대로 된 의학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지요."
라이프크리닉은 환자와 직원들의 행복을 기원하는 기도로 하루를 시작한다.
라이프크리닉 가족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