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의 사람, 문화, 자연을 맛깔스럽게 담아내는 월간지 <전라도닷컴>은 우리가 지키고 널리 퍼트려야할 소중한 것들을 발로 뛰어 찾아내 세상에 전하고 있다.
[살맛 나는 삶터] 전라도닷컴
황토길·갯내음 삶 ‘매시러운’ 사투리로 담아
‘징헌’ 독자 큰힘…지역벽 넘는 팔도닷컴 꿈
황토길·갯내음 삶 ‘매시러운’ 사투리로 담아
‘징헌’ 독자 큰힘…지역벽 넘는 팔도닷컴 꿈
소설가 공선옥씨는 <전라도닷컴>에 대해 "전라도를 사랑하지 않고는 배기지 못하게 하는 일"을 하는 곳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또 경상도의 독자 박현숙씨는 "잘 익은 곶감을 하나씩 하나씩 야금야금 꺼내 먹듯이 며칠 동안 전라도닷컴의 내용 하나하나를 그렇게 읽습니다"라며 "갱상도 처자의 맘까지 움직여 놓는"다고 합니다.
고향 찾으면 만날 수 있는 이웃들 있는 모습 그대로
<전라도닷컴>을 읽을 때면 잡지계의 전설이 된 <뿌리깊은 나무>와 <샘이 깊은 물>이 떠오릅니다. 서구, 근대, 개발 등의 단어가 '지고의 선'으로 여겨지던 군부독재 시절, '우리 것'은 '낡고 추한 것'으로 천대받았습니다. 그때 이들 잡지는 조용한 목소리로 '우리 것은 소중한 것이여'라고 속삭였더랬습니다. 그들의 그런 목소리는 강퍅한 시대에 독자의 가슴에 삶과 사람을 보듬는 마음이 '뿌리'내리게 했고, 미래의 희망을 잃지 않도록 영혼의 '샘'을 자극했습니다.
2000년 온라인 사이트에 이어 2002년 월간지로 세상에 얼굴을 보인 <전라도닷컴>도 그렇습니다. 성공하려면 '얼리 버드'가 되어야 하고 '오륀지'라고 혀 꼬부라진 소리를 내야 하는 시대에 이 잡지는 21세기판 <뿌리…>와 <샘…>입니다. 문화마저 산업에 종속되어 돈이 되는 것 아니고는 모두 홀대받는 때에 지역 문화와 공동체 문화로 표현되는 소중한 것들을 '매시러운' 전라도 사투리로 고스란히 담아 맛깔지게 전하고 있습니다.
<전라도닷컴>은 사람을 보는 눈부터가 여느 잡지들과 다릅니다. 등장 인물들이 그렇습니다. 글줄깨나 읽고 나름의 철학과 소신을 가진 이들도 가끔 눈에 띄지만 이 잡지에는 담양의 벌 치는 할아버지, 강진에서 3대째 정미소를 운영하는 아저씨, 곡성의 베 짜는 할머니, 5일장의 나물장수 등 고향을 찾으면 쉽사리 만날 수 있는 이웃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합니다. 그들은 텔레비전에서처럼 과장된 몸짓으로 요란을 떨지 않습니다. 모두 평소 하던 모습과 말 그대로를 보여줍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 그래서 그들의 말에는 힘이 있고 그들이 들려주는 삶에는 감동이 느껴집니다.
"희망이 그리운게 희망이라고 썼겄제. 희망이 없는 것 같애서 갖고 싶어서 썼겄제. 희망을 놓고 가면 폭폭헌게 썼겄제."(전봇대에 희망이라는 이름판을 단 고물상 주인의 말)
마음이 헛헛하고 폭폭할 때 들춰보면 ‘빙그레’ 하지만 삶의 대부분을 우리 사회의 뒤안길에서 지낸 이들이라 입을 열고 말문을 트기까지의 과정이 쉽지는 않습니다. <전라도닷컴> 기자들이 기다림에 익숙한 이유입니다. 기자들은 그들에게 대처에 나간 '아그들'처럼 가까워질 때까지 고샅길에 쭈그리고 앉아 담배를 나눠 피고 장터에서 함께 물건을 팔기도 합니다. <전라도닷컴>에서 풍겨나오는 '포스'는 그렇게 먼지 뽀얀 시골길과 갯내음 나는 섬마을을 뒤져 찾은 사람들로부터 나옵니다. 이 잡지는 여성월간지나 시사월간지처럼 두텁지도 않습니다. 84쪽의 '얇은' 책입니다. 하지만 그 안에는 늘 알찬 기사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습니다. 땅, 처음, 다리 등 달마다 꾸며지는 기획특집과 필부필부의 이야기를 다룬 '사람과 삶', 전라도를 알고 찾고 싶은 이들을 위한 '떠나고 싶다', 예향 전라도의 멋과 맛을 알려주는 '문화야 놀자' 등. '사라지지 말아라'를 주제로 만든 기획특집을 볼까요. 기자들은 우시장, 논, 산골 분교, 간이역, 구전민요, 고향 남새밭, 수달 등 다양한 대상에 대해 사라지지 말아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런 정성과 따뜻한 마음이 담긴 글이라 "어느 글 하나 버릴 게 없다"거나 "두고두고 곱씹어가며 읽는다"는 독자들의 반응처럼 한 달 내내 읽어도 지겹지 않고, 마음이 헛헛할 때면 들쳐보다 빙그레 미소를 짓게 하는 잡지가 바로 <전라도닷컴>입니다. 이 잡지에는 소풍갈 때 싸들고 가던 달걀에 얽힌 추억을 담은 글에서 쓰레기 무단 투기를 보다 못한 마을 통장님의 속 타는 심정을 담은 방송 멘트를 옮겨 적은 글도 귀하게 실립니다. "및 번 방송을 해도 말을 안 들은께 인자 누 집 것인지 밝혀지믄 쓰레기 들고 가서 그 집 마당에 꽉 부서불랑께 알아서들 허씨요." 지역색 조장 오해…사람 사는 얘기로 소통과 화합
제호에 왜 하필 전라도를 썼을까? 이름 때문에 험한 말도 많이 들었고, 지역색을 조장한다는 오해도 받았습니다. 선거 때면 경상도 패들이 사이트에 들어와 욕을 해댔습니다. 전북의 어떤 이들은 "왜 너네들이 전라도를 대표한다고 하느냐"며 거칠게 항의를 하기도 했습니다. 황풍년(44) 대표는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 등 지역을 가리키는 이름이 갈등, 반목, 충돌에 쓰여 금기시되고 있었다"며 "전라도닷컴을 통해 '본때'를 보여주자고 생각했다"고 말합니다. 전라도의 문화, 역사, 자연환경은 물론 지나온 세월 속에서 겪은 아픔과 그 안에서 몸부림치는 사람들의 삶을 통해 다른 지역 사람들로부터 "그래, 사람 사는 것은 다 똑같구나"라는 말을 듣고 싶었다고 합니다.
"다른 지역 사람들이 전라도의 이야기를 읽고 거기에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 살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지역 사이의 소통이나 화합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전라도는 우리가 잘 알고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곳이었구요."
황 대표와 기자들은 경상도닷컴, 충청도닷컴, 강원도닷컴 등 온 나라에 비슷한 회사가 생겨 팔도닷컴을 만들 날을 꿈꿨습니다. 팔도닷컴이 만들어지는 날 지역감정도 사라질 것이라고 믿고 말입니다. 그렇게 8년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그런 꿈이 영글기도 전에 <전라도닷컴>에는 위기가 닥쳤습니다. 창간 때부터 잡지 발간을 후원하던 향토기업 '빅마트'가 경영상의 어려움으로 지원을 중단했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11월 황 대표와 6명의 기자들은 갑작스레 삭풍이 매서운 벌판에 서게 됐습니다. 결국 12월호를 내지 못했습니다. 꿈은 사라지는 듯했습니다.
그런데 이 잡지가 존폐 위기에 섰다는 얘기가 들리자 광주와 전남은 물론 전국의 독자들이 자발적으로 잡지 살리기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지난해 11월 '전라도 닷컴 응원의 밤'이 열렸고, 화가들의 전시회를 비롯해 여러 종류의 후원 행사가 개최됐습니다. 특히 향토사학자 김경수씨는 일곡동 자신의 집 2층을 사무실로 내줘 올해 1월 잡지가 다시 나오는 데 큰 도움을 줬습니다. 독자들의 도움으로 정기독자는 4천여 명으로 늘었습니다. 특히 독자 가운데 책값 3000원에 후원금을 얹어 다달이 5천~1만원씩을 내고 잡지를 받아보는 이들도 500명이나 됩니다. '오진' 잡지에 '징헌' 독자들이지요.
“이런 잡지 하나 가지는 건 시민의 권리이자 의무”
그럼에도 <전라도닷컴>의 미래는 여전히 불투명합니다. 구독료와 황 대표가 어렵사리 따오는 몇 안되는 광고 몇 건으로 1천여 만원에 이르는 제작비는 간신히 메우고 있지만 인건비는 아직 줄 엄두도 못 내고 있습니다. 잡지나 소식지의 제작을 대행하고 단행본도 펴내고 있지만 수익성을 높이는 데 크게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지방자치단체의 도움이 절실합니다. 외부에서는 전라도닷컴을 전남도에서 내는 줄 알 정도로 지역의 문화와 풍물을 알리는 매체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지자체에서 홍보 책자로 구입을 한다거나 지역 축제와 같은 행사 광고를 게재해주면 좋겠어요. 하지만 상당수 공무원 분들은 전라도닷컴을 그저 수많은 잡지 가운데 하나로만 보는 것 같습니다."
어려움은 많지만 보람은 크다고 합니다. 황 대표는 "다른 지역 사람들로부터 '전라도를 새롭게 알게 되고 오해를 풀었다, 전라도에 가고 싶어졌다. 전라도를 다녀와서 너무 좋았다'라는 말을 들을 때가 가장 기분이 좋다"며 "지방자치단체나 뜻있는 기업의 지원도 바라고 있지만 후원회원이 크게 늘어 돈 걱정 없이 잡지를 내보는 게 소원"이라고 말합니다. 편집실을 떠날 때 6월호 제작으로 바쁜 가운데도 이들은 먼 길을 떠나는 손님에게 삶은 계란을 건넸습니다. 전라도의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두 손에 '따순' 마음을 받아들고 돌아 나오는데 책상 위에 놓인 글이 눈에 들어오더군요.
"우리 사회가 건강하다면 이런 잡지 하나는 가질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우리의 모금으로 잡지를 살릴 수 있다면 이 잡지는 더 많은 것을 돌려줄 것이다. 그것은 좋은 잡지를 가질 수 있는 시민의 권리이며 의무이다."(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권복기 기자 bokkie@hani.co.kr
<전라도 닷컴> 표지.
마음이 헛헛하고 폭폭할 때 들춰보면 ‘빙그레’ 하지만 삶의 대부분을 우리 사회의 뒤안길에서 지낸 이들이라 입을 열고 말문을 트기까지의 과정이 쉽지는 않습니다. <전라도닷컴> 기자들이 기다림에 익숙한 이유입니다. 기자들은 그들에게 대처에 나간 '아그들'처럼 가까워질 때까지 고샅길에 쭈그리고 앉아 담배를 나눠 피고 장터에서 함께 물건을 팔기도 합니다. <전라도닷컴>에서 풍겨나오는 '포스'는 그렇게 먼지 뽀얀 시골길과 갯내음 나는 섬마을을 뒤져 찾은 사람들로부터 나옵니다. 이 잡지는 여성월간지나 시사월간지처럼 두텁지도 않습니다. 84쪽의 '얇은' 책입니다. 하지만 그 안에는 늘 알찬 기사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습니다. 땅, 처음, 다리 등 달마다 꾸며지는 기획특집과 필부필부의 이야기를 다룬 '사람과 삶', 전라도를 알고 찾고 싶은 이들을 위한 '떠나고 싶다', 예향 전라도의 멋과 맛을 알려주는 '문화야 놀자' 등. '사라지지 말아라'를 주제로 만든 기획특집을 볼까요. 기자들은 우시장, 논, 산골 분교, 간이역, 구전민요, 고향 남새밭, 수달 등 다양한 대상에 대해 사라지지 말아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런 정성과 따뜻한 마음이 담긴 글이라 "어느 글 하나 버릴 게 없다"거나 "두고두고 곱씹어가며 읽는다"는 독자들의 반응처럼 한 달 내내 읽어도 지겹지 않고, 마음이 헛헛할 때면 들쳐보다 빙그레 미소를 짓게 하는 잡지가 바로 <전라도닷컴>입니다. 이 잡지에는 소풍갈 때 싸들고 가던 달걀에 얽힌 추억을 담은 글에서 쓰레기 무단 투기를 보다 못한 마을 통장님의 속 타는 심정을 담은 방송 멘트를 옮겨 적은 글도 귀하게 실립니다. "및 번 방송을 해도 말을 안 들은께 인자 누 집 것인지 밝혀지믄 쓰레기 들고 가서 그 집 마당에 꽉 부서불랑께 알아서들 허씨요." 지역색 조장 오해…사람 사는 얘기로 소통과 화합
광주비엔날레공원에서 열린 <전라도닷컴> 창립 2주년 기념음악회에서 흙피리 연주자 한태주씨가 아버지 한치영씨의 기타 반주에 맞춰 흙피리를 연주하고 있다.
<전라도 닷컴>은 애독자들 덕분에 존폐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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