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나이공정무역센터(PFTC)는 공정무역을 통해 농촌과 도시에 협동조합을 만들어 가난한 이들의 자립을 돕고 있다. 신복수 회장과 강석호 가공생산자 대표(앞줄 오른쪽부터) 등 한국생협연대 관계자들이 6일 오후 일로일로시에 있는 피에프티시 사무실을 찾았다.
[살맛 나는 삶터] 필리핀 공정무역 현장(하)
이탈리아 시정부·영국 단체서 공장건설 지원
한국생협연대, 아시아선 처음으로 교역 동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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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마다 같은 농민협동조합들이 공정무역을 할 수 있었던 데는 이들을 돕는 한 단체가 있어서 가능했습니다. 생협연대의 일로일로시 방문 일정을 안내한 ‘파나이공정무역센터(PFTC)’입니다. 지난해 10월 1차 답사에 이어 두 번째로 일로일로시를 찾은 생협연대 공정무역추진위 김태연(32) 간사는 피에프티시를 “공정무역활동을 총괄하는 단체”라고 소개했습니다.
이 단체 또한 여성들이 중심이 되어 세워졌습니다. 필리핀 도시의 빈곤여성을 지원하는 카바라카(연대라는 뜻)라는 단체의 주도로 1991년 만들어진 ‘파나이공정무역센터’는 이 지역 민중조직이 만든 사업단위로 볼 수 있습니다. 공정무역을 매개로 도시와 농촌의 공동체 건설과 이를 통한 일자리 창출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작업장이 사무실처럼 깨끗하고 품질 관리도 꼼꼼”
이를 위해 피에프티시는 3개의 농민협동조합 외에 일로일로시에 자리한 센터 건물 안에 가공 및 포장 공장을 만들어 바나나칩, 생강젤리, 파인애플생강·코코넛잼 등을 생산·포장하고 있습니다. 이 작업에는 3개 협동조합 20여 명의 조합원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대부분 센터 부근에 살고 있는 가난한 여성들입니다. 이처럼 피에프티시는 3곳의 농민협동조합과 3개의 생산협동조합을 총괄하고 있습니다.
피에프티시의 교역량은 마스코바도 설탕 300톤, 바나나칩 40톤, 생강젤리 5톤 등이다. 금액으로는 4억원어치가 넘습니다. 공장을 둘러본 강석호 생산자회 부회장은 “작업장이 사무실처럼 깨끗해 놀랐다”며 “품질 관리도 꼼꼼히 하고 있는 듯하다”고 소감을 말했습니다.
2004년 설탕공장이 만들어지고, 이어 농산물 가공공장이 세워지면서 공정무역을 추진할 틀은 갖춰졌습니다. 하지만 피에프티시의 고민은 여전합니다. 더 많은 가난한 농민들과 도시 빈민들의 자립을 돕기 위해 교역량을 늘리고 설탕공장과 생산협동조합을 더 많이 만들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단체를 이끌고 있는 로미오 카팔라(61) 상임운영위원은 “협동조합에 가입을 원하는 농민이나 도시빈민이 많아 교역량을 늘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쉽지는 않습니다. 부책임자인 앙헬 팡가니반(49)은 “설탕공장을 하나 짓는 데 4백만 페소 가량이 필요한데 이 금액을 자체적으로 마련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실제 카마다의 설탕공장은 이탈리아의 보자르노시 정부가, 자바파의 설탕공장은 영국의 공정무역단체 옥스팜에서 건설비를 지원했습니다. 피에프티시가 혼자 힘으로 2006년 모파와에 설탕공장 하나를 짓는 데 10년 이상이 걸렸습니다.
중앙·지방 정부선 지원은커녕 납치 등 음성적 탄압
그런 상황이라 이들은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자신들의 설탕을 사겠다고 찾아온 한국생협연대 관계자의 방문을 크게 반겼습니다. 특히 이들은 한국생협연대에서 설탕 한 봉지에 200원씩 생산자 지원을 위한 기금을 만들겠다는 뜻을 밝히자 거듭 고마움을 표시했습니다. 첫해 25톤에 이어 목표량인 100톤을 교역할 경우 한 해에 모이는 기금만 4800만원이나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한국생협연대에서 요구하는 연간 100톤의 설탕을 생산할 시설이 당장은 없다는 점이 고민이라고 밝혔습니다.
피에프티시가 다른 나라의 지원을 바라는 것은 필리핀 정부로부터 거의 도움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 단체는 파나이섬에서 세금을 가장 많이 내는 기업으로 지방정부에서 무시하지 못할 정도의 존재입니다. 하지만 중앙정부나 지방정부의 지원은 거의 없습니다.
도리어 음성적인 탄압을 받고 있습니다. 지난해 여성 농민 운동가이자 피에프티시의 운영위원 가운데 한 명인 마리아 루이사가 실종되어 지금까지 소재가 파악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 여성은 소작농 권리 확보를 위한 시위에 참여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어느 날 무장 괴한이 트럭을 습격해 운전자를 살해하고 루이사를 납치해갔다고 합니다.
그에 앞선 2005년에는 로미오 운영위원이 정부군에 납치되기도 했습니다. 그때 피에프티시와 교역하는 유럽의 여러 단체들이 중심이 되어 필리핀 정부에 로미오의 석방을 촉구하는 편지가 쏟아지고 국제인권단체들까지 나서서 구명운동을 했다고 합니다. 그 결과 로미오 운영위원은 1개월 만에 석방될 수 있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피에프티시를 떠받치는 주요한 힘 가운데 하나는 공정무역 물품을 사는 다른 나라의 ‘깨어 있는’ 소비자로부터 나온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이제 그런 소비자의 대열에 한국생협연대 회원들도 함께 참여하게 됐습니다. 생협연대의 필리핀 현지 방문과 교역 추진은 피에프티시가 중심이 된 필리핀 도농공동체 운동에 또 다른 큰 힘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들의 방문에 뒤이어 정직하고 공정하게 만든 몸에 좋은 설탕이 한국으로 가고, 생협연대 회원들이 설탕 값에 덧붙여 조성한 ‘연대의 기금’이 필리핀의 외딴 마을과 도시 빈민지역으로 갈 것입니다. 그런 오고감으로 필리핀 농촌의 무성한 덤불이 걷히고 진 땅이 굳어져 길이 만들어지게 될 것입니다. 모두가 함께 행복한 ‘공정한’ 세상으로 향하는 길 말입니다.
일로일로(필리핀)/글·사진 권복기 기자 bokkie@hani.co.kr
피에프티시 안에 있는 바나나칩 가공공장에서 여성노동자들이 바나나를 얇게 써는 작업을 하고 있다.
그런 상황이라 이들은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자신들의 설탕을 사겠다고 찾아온 한국생협연대 관계자의 방문을 크게 반겼습니다. 특히 이들은 한국생협연대에서 설탕 한 봉지에 200원씩 생산자 지원을 위한 기금을 만들겠다는 뜻을 밝히자 거듭 고마움을 표시했습니다. 첫해 25톤에 이어 목표량인 100톤을 교역할 경우 한 해에 모이는 기금만 4800만원이나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한국생협연대에서 요구하는 연간 100톤의 설탕을 생산할 시설이 당장은 없다는 점이 고민이라고 밝혔습니다.
파나이공정무역센터를 표현한 그림으로 노동자, 농민, 여성의 연대를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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