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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향 판 수익금은 다시 사회에 '향'으로 환원

등록 2008-05-12 09:21수정 2008-05-12 10:34

능혜 스님이 기계에서 국수처럼 막 뽑아내 말리고 있는 향을 들어보이며 향 만드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건조실 안에 들어가면 몸에 향이 스며드는 듯 하다.
능혜 스님이 기계에서 국수처럼 막 뽑아내 말리고 있는 향을 들어보이며 향 만드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건조실 안에 들어가면 몸에 향이 스며드는 듯 하다.
[향기 나는 사람들] 향 퍼뜨리는 능혜 스님(하)
1천만원으로 '세속사업'… 4년만에 일어서
울릉도에 울향 심고 초·중·고 장학금 지원
능혜 스님은 단돈 1천만원을 들고 향사업에 뛰어들었습니다. “딸린 식구가 없으니 걸릴 게 없었습니다. 향 제작은 다른 공장에 맡겼고, 향을 담을 상자는 혼자 밤새 접으면 됐으니 인건비도 크게 들 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판로였습니다. 문방구, 불교용품점, 사찰 등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가장 큰 거래처는 문방구였습니다. 하지만 문방구와의 거래는 수행자인 스님이 알 수 없는 이상한 세계였습니다. 문방구와 거래하면서 스님은 어음이라는 말을 처음 알게 됐습니다. 어음 가운데 문방구어음이라는 비공식 어음이 있다는 것도 배웠지요.

“서울의 한 문방구에 천만원어치 향을 줬는데 어음을 주더라구요. 다른 사람에게 어음이 뭐냐고 물었더니 정해진 기간이 지난 뒤에 은행에 가면 돈으로 바꿀 수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몇 달 뒤에 그 어음을 들고 은행에 갔는데 직원이 이상하게 쳐다봐요. 문방구어음은 문방구에서만 통용되는 거였습니다.”

문방구에 판 향값을 받는 데는 1년이 넘게 걸렸습니다. 그때 능혜 스님은 향의 판촉을 위해 바랑 속에 늘 수십통의 향을 넣고 다녔습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향을 한 통씩 나눠주며 피워보고 마음에 들면 주문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향을 파는 일이 쉽지는 않았지만 아주 힘든 적은 많지 않았다고 합니다. 능혜 스님은 힘들 때면 은사 스님이 하신 말씀을 떠올리며 용기를 얻었다고 합니다. 스님의 은사는 조계종 종정을 지낸 혜암 큰스님으로 당대 최고의 선승 가운데 한 분이시자 1993년 조계종단 개혁에 큰 역할을 하신 분입니다.

“은사 스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세상살이는 수행에 비해 쉬운 일이다. 눈에 보이고 만져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안에 부처가 있다고 믿는 수행은 어렵다. 보이지 않는 대상을 믿어야 하기 때문이다’라구요. 늘 그 가르침을 잊지 않고 지냈습니다. 부처를 찾기 위해 용맹정진하는 수행자가 세상일을 힘겨워 하면 안 된다 생각했습니다.”

마음이 편하다고 사업이 잘 되지는 않았습니다. 무슨 일이든지 시간이 걸리게 마련이지요. 해를 넘길수록 능혜 스님의 향을 찾는 이들은 조금씩 늘어났습니다. ‘진품’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생겨난 것이지요. 차츰 주문량이 늘었고, 4년쯤 지나자 손익분기점을 넘겼습니다.

능혜 스님이 모은 향로들. 능혜 스님은 향 박물관을 만들 꿈을 갖고 향 문화와 관련된 물품을 모으고 있다.
능혜 스님이 모은 향로들. 능혜 스님은 향 박물관을 만들 꿈을 갖고 향 문화와 관련된 물품을 모으고 있다.


회사가 안정되자 능혜 스님은 향 판매로 얻은 수익금을 사회에 되돌리기 시작했습니다. 먼저 최고 수준의 품질을 자랑하는 울릉도의 향나무 울향을 키우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2000년부터 인터넷 카페 '향기를 찾는 사람들' 회원들과 식목일이면 울릉도에 향나무를 심고 있습니다.

“한때 울릉도에는 우리나라 대표적인 향나무인 울향이 원시림을 이뤘습니다. 하지만 200여년전 산불로 많이 타버렸고, 러시아와 일본이 가구와 향을 만들기 위해 남벌을 해서 거의 사라졌습니다.”

스님은 향나무심기 행사를 고려 때 향도들의 활동에 비유합니다. 불교신자들의 모임인 향도들은 전국의 신성한 곳을 찾아다니며 수백 년 아니 천년 뒤에 후손이 쓸 수 있도록 향을 묻는 매향 사업을 펼쳤습니다. 스님은 울향 가꾸기를 21세기의 매향 사업이라고 말합니다.

스님은 또 지난해 장학회를 만들어 전국의 불교고등학교와 지역 초중고 학생들에게 해마다 2천만원씩 장학금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스님의 향기는 그렇게 전국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좋은 향은 머리를 맑게 하고 몸에도 이롭습니다. 먹어도 해롭지 않구요. 하지만 사랑과 자비가 흘러넘치는 세상이 오면 향도 필요 없겠지요. 그런 세상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취운향당 (054)933-6371~2. www.cwh.co.kr

경북 성주/글·사진 권복기 기자 bokki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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