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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소외된 이들이 꿈꾸는 ‘소외 없는 마을’

등록 2008-04-21 20:35

5만8천여 주민 가운데 1만여 명이 참여하는 반송동 어린이날 행사를 알리는 포스터.
5만8천여 주민 가운데 1만여 명이 참여하는 반송동 어린이날 행사를 알리는 포스터.


[살맛나는 삶터] 부산 반송동 ‘희망세상’

지역공동체 노력 10년…동네잔치가 살아났어요
‘타향도 정이 들면 고향’이라는 유행가 가사가 있습니다. 그럴까요. 그 노래의 뒷 소절에 ‘향수를 달래려고 했던 거짓말’이라는 반전을 무색하게 만드는 곳이 있습니다.

부산시 해운대구 반송동이 바로 그곳입니다. 도시에서 동네잔치는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 ‘대보름맞이 척사대회’라는 플래카드가 나붙는 곳이 많지만 동네가 들썩이는 행사가 치러지는 곳은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올해 10회를 맞는 반송동의 어린이날 행사 ‘반송 어린이날 놀이 한마당’ 얘기를 들으면 깜짝 놀랍니다. 지난해 5월5일 열린 행사에는 1만 명이 넘는 주민이 참여했습니다. 반송 1,2,3동에 사는 주민 수는 모두 합해 5만8천명 가량 된다고 하니 너댓집에 한 집꼴로 이날 행사에 동참한 셈입니다.

반송동에는 1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동네 신문도 있습니다. <반송사람들>입니다. 주민들이 다달이 만들어 집집마다 배달하는 신문으로 발행부수만도 4천부나 됩니다. 동네에서 어떤 공사가 벌어지고 있고, 어떤 행사와 강좌가 열리는지, 지난달 동네에서 이뤄진 행사는 어떤 것이 있는지 등 생활에 필요한 정보와 함께 동네에서 벌어지는 시시콜콜한 이야기가 알차게 담긴 신문입니다.

다달이 ‘이웃사촌’ 행사…쌈짓돈 모아 도서관도 만들고

올해 창립 10년째를 맞는 희망세상은 부산시의 서민 동네 반송동을 사람내음 물씬나는 살고 싶은 마을로 만들어가고 있다. 희망세상 전 회장인 고창권 해운대 구의원(뒷줄 왼쪽에서 두 번째)과 김혜정 사무국장(뒷줄 맨 왼쪽)이 ‘회원 활동가’들과 함께 14일 느티나무 도서관을 찾아 책을 읽고 있던 회원 및 아이들과 함께 포즈를 취했다.
올해 창립 10년째를 맞는 희망세상은 부산시의 서민 동네 반송동을 사람내음 물씬나는 살고 싶은 마을로 만들어가고 있다. 희망세상 전 회장인 고창권 해운대 구의원(뒷줄 왼쪽에서 두 번째)과 김혜정 사무국장(뒷줄 맨 왼쪽)이 ‘회원 활동가’들과 함께 14일 느티나무 도서관을 찾아 책을 읽고 있던 회원 및 아이들과 함께 포즈를 취했다.

반송동은 지난해 10월 또 하나의 자랑거리를 만들었습니다. 새로 지어 문을 연 4층짜리 느티나무도서관입니다. 어느 지역이든 마을 도서관 건립에 드는 비용은 주로 지방자치단체나 외부 기관의 지원을 받습니다. 물론 느티나무도서관도 문화관광부와 도서관 지원사업을 하는 시민단체로부터 1억8천만원 가량을 지원받았습니다. 하지만 주민들이 모금한 돈이 자그마치 1억3천만원이나 됩니다. 반송동 사람들은 도서관 터를 사기 위해 6개월 가량 모금 운동을 폈습니다. ‘벽돌 한 장 기금’ 저금통을 집집마다 나눠줬고 초등학생들은 거리 모금에 나섰습니다. 시장상인에서 어르신까지 3천여 명이 힘을 보탰습니다.


반송동 사람들의 이야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주민들은 가난한 이웃을 위해 밑반찬을 만들어 전달하고, 자율방범대를 만들어 순찰을 돕니다. 해맞이 행사, 야생화 학습장 가꾸기, 농촌 봉사활동 등 다달이 행사가 열리고 초청강연회도 이따금 개최됩니다. 느티나무도서관 1층에 만들어진 카페는 주민들의 사랑방 구실을 합니다. 1000원짜리 원두커피를 마시고 그 유명한 부산오뎅 등을 먹으며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밥도 같이 먹고 부침개도 부쳐와 나눠 먹습니다. 이처럼 시골 마을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이웃사촌’들의 정나눔은 반송동에서는 흔한 일입니다.

탈출하고 싶은 이주민동네에서 ‘살고 싶은 곳’으로

반송동은 1968년 수정동에 살던 강제철거로 이주해 온 이들과 90년대 들어 건설된 임대아파트 주민들이 어울려 사는 동네입니다. 값비싼 고층 아파트가 즐비한 해운대 바닷가와 달리 산자락에 자리한 서민들의 동네이지요. 해운대구에서 정부로부터 생활비 보조를 받는 수급권자의 60%가 이곳에 살며 장애인 거주자도 3천명이나 됩니다. 반송2동사무소에 근무하는 사회복지사 수만 10명이 될 정도로 돌봄이 필요한 이들이 많은 곳이 반송동입니다. 주민들 모두 돈을 벌면 서둘러 탈출하고 싶어하는 곳이었습니다.

지난 1월26일 느티나무 도서관에서 열린 희망세상 설립 10주년 기념 총회 모습.
지난 1월26일 느티나무 도서관에서 열린 희망세상 설립 10주년 기념 총회 모습.

그런 반송동에 새 기운이 움트기 시작한 것은 1997년. 고창권(44) 해운대구 의원과 김혜정(37) 사무국장 등 다섯 명의 뜻있는 사람들이 모이면서였습니다. 아홉 살 때부터 반송동에서 자란 고 의원은 의사가 된 뒤 “반송동을 사람들이 살고 싶어 하는 마을로 만들기 위해” 이곳에 병원을 내고 지역 공동체 운동을 시작한 사람입니다. 김 국장은 지역 운동을 하라는 선배의 권유로 반송동에 뛰어들었습니다. 이들은 부산시에서 손꼽히는 가난한 동네 반송동을 사람내음 물씬나는 살기 좋은 마을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이듬해 자신들의 뜻에 공감하는 사람 10명을 더 모아 15명으로 ‘반송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들어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반사사’가 처음 한 일은 얼굴트기였습니다. 김 국장은 “마을에 노동운동을 했던 사람이 있었는데 그 분을 따라 이 집 저 집 다니며 밥 얻어먹고 수다 떨고 그랬다”고 합니다. 고 의원은 병원을 통해 사람들을 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주민들은 가난한 동네에 들어와 사는 ‘멀쩡한’ 사람들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반사사’는 주민들 곁으로 조금씩 조금씩 다가갔습니다.

1년쯤 지나 사무실을 마련한 뒤에는 소모임을 만들었습니다. 주부글쓰기 교실을 시작으로 형편이 어려운 어르신에게 밑반찬을 만들어 배달하는 나눔반, 영화보기 모임, 인형극반, 자녀교육반, 독서반, 퀼트반 등. 특히 초기부터 발간한 동네 신문 <반송사람들>은 주민들과의 소통에서 큰 구실을 했습니다.

처음 이상한 눈초리로 이들을 바라보던 주민들은 시간이 지나며 조금씩 마음을 열었고, 회원에 가입하는 사람들도 생겨났습니다. 지금은 회비를 내는 회원이 200명이 넘고, 김정곤 회장이나 카페와 자원활동을 관리하는 정화언 팀장처럼 활동가 수준으로 일하는 동네 아저씨 아주머니 수만 80명에 이릅니다. 송정숙(48)씨는 “나눔가게에 자원봉사를 하러 왔다가 코가 꿰었다”면서도 “희망세상에서 활동하는 게 무척 보람 있다”고 말했습니다.

고창권 회장의 부산지역 정계 진출 ‘사건’

우여곡절도 있었습니다. 큰 ‘사건’ 가운데 하나는 고창권 회장의 ‘정계진출’이었습니다. 2002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회원 사이에서 지역운동을 보다 체계적으로 벌이기 위해 구의원 출마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고 의원은 “오해도 있었고, 반대도 많았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습니다. 3개월 논의 끝에 고 회장을 의회로 보내기로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반사사’는 걱정도 많이 했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그 같은 걱정은 기우로 드러났습니다. 한나라당 텃밭인 부산에서 고 의원은 2002년에 이어 2006년에도 재선에 성공했습니다. ‘반사사’ 활동에 대한 주민들의 믿음이 이뤄낸 성과였습니다. 의회로 간 고 회장은 구청, 동사무소, 주민센터 등을 다니며 반송동의 문화, 복지, 환경 개선 등에 큰 역할을 했습니다. 그 결과 반송동은 2004년 부산시에 이어 2005년 행정자치부에서 주는 최우수 주민자치대상을 받을 정도가 됐습니다.

올해로 반송동에 이주민이 살기 시작한 지 40년, 희망세상이 활동을 시작한 지 10년이 됩니다. 희망세상은 반송동을 수준 높은 교육, 복지, 문화 서비스가 제공되고 주민자치가 제대로 이뤄지는 도심 속의 지역공동체로 발전시키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김혜정 국장은 “앞으로 3년이 새로운 10년을 준비하는 기간이 될 것”이라며 “반송 사람들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행복한 지역 공동체를 만드는 게 꿈”이라고 포부를 밝혔습니다.

부산/글·사진 권복기 기자 bokki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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