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 한 량에는 어린이들이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 꾸며져 있다.
초록 삶터를 찾아서 ② 남광주역 ‘돌아온 기차’
경전선 폐선 구간 ‘푸른길’ 터…화랑·도서관으로 꾸며
경전선 폐선 구간 ‘푸른길’ 터…화랑·도서관으로 꾸며
남광주역에 기차가 돌아왔다. 광주시 동명동의 남광주역은 광주에서 밀양으로 가는 경전선 가운데 10.8㎞에 이르는 도심구간이 외곽으로 이전하면서 사라진 역이다.
폐선에다 역사조차 철거된 곳에 기차가? 남광주시장 왼편 주차장으로 들어서니 저만치에 기차 두 량이 서 있다. 운행되는 기차는 아니다. 광주시와 함께 경전선 폐선 구간을 나무와 풀이 어우러진 녹지공간 ‘푸른길’로 가꾸고 있는 ㈔푸른길가꾸기운동본부가 지난해 말 들여왔다. 기차는 ‘푸른길’ 한가운데 자리한 남광주역 터를 역과 열차에 얽힌 시민들의 추억을 되살리는 곳으로 만들기 위한 공간구실을 한다.
기차 한 량에 꾸며진 초미니 화랑에서는 전시회 ‘기차가 돌아왔다’가 열리고 있다. 전남대 조경학과 조동범 교수, 목포대 김미향 초빙교수, 작가 정선휘씨 등 세 명이 8차례에 걸친 폐선길 답사를 통해 찾아낸 철길 주변의 사람, 자연, 그리고 그들에 얽힌 추억을 그림, 사진, 설치작품 등에 담았다.
다른 량에는 어린이들이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사진)이 꾸며져 있다. 하반기에는 이곳에 반경 2㎞에 전파가 미치는 미니에프엠(FM)라디오 방송국도 들어선다.
㈔푸른길가꾸기운동본부가 남광주역에 이렇게 공을 들이는 것은 이곳이 광주시민은 물론 전라남도 남쪽 지역 주민들에게 고향과 같은 공간이기 때문이다. 역 바로 옆에 남광주 시장이 있고, 주변에 조선대, 조선대부속 중고, 여중고, 살레시오여고, 중앙여고 등 학교가 많아 이 역은 철거되기 전까지만 해도 상인들과 통학생들이 북적대던 곳이었다. 화순 등 광주 부근 마을의 할머니들이 캔 고사리와 산나물이 새벽기차를 타고 올라와 시장으로 갔고, 멀리 벌교의 뻘에서 난 꼬막도 남광주역을 통해 올라왔다. 또 1970~80년대 시골에서 광주로 유학온 학생들에게 이곳은 집과 학교를 연결하는 통로였다.
그런 추억 때문인지 ‘돌아온 기차’를 단장하고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는 과정임에도 하루에 70~80명 가량의 시민들이 남광주역을 찾고 있다. 박상은 간사는 “50~60대 분들이 많이 찾으시는데 옛 추억을 떠올리며 행복한 한때를 보내고 간다”고 말했다.
운동본부에서는 올해 열차 주변에 꽃밭 등을 가꾸는 한편 동화구연, 기차 둘러보기, 재활용품을 이용한 리폼 공예, 푸른길 걷기, 광주천 탐방 등 어린이들을 위한 여러가지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전시회도 계속된다. 지난달 2월28일에 시작된 ‘기차가 돌아왔다’에 이어 4월 말에는 폐선 주위 가족들의 삶과 이야기를 담은 전시회가 열린다.
남광주역. 역사조차 없이 기차 두 량만 남아 있는 공간이지만 이곳은 과거의 추억과 미래담론인 녹색이 만나는 새로운 역사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광주/권복기 기자
광주/권복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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