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그로스섬의 농민과 자녀들, 그리고 그들이 생산하는 마스코바도 설탕. 두레생협 제공.
[살맛 나는 삶] 네그로스 프로젝트
두레생협 회원들, 필리핀 농민 설탕 ‘제값’ 구입
생협은 봉지당 200원 적립, 마이크로크레딧 지원
두레생협 회원들, 필리핀 농민 설탕 ‘제값’ 구입
생협은 봉지당 200원 적립, 마이크로크레딧 지원
병이 많아지면 그 병을 고치는 약초도 늘어난다고 합니다. 신자유주의의 세계화가 많은 부작용을 낳자 그 부작용을 고치는 세계화도 생겨나고 있습니다. 공동체 운동의 세계화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우리나라 두레생협연합 소비자와 필리핀 네그로스섬의 농민들이 공정무역을 통해 함께 만들어가는 ‘네그로스 프로젝트’입니다.
‘네그로스 프로젝트’는 크게 두 가지로 진행됩니다. 하나는 두레생협 회원들이 공정무역을 통해 필리핀 네그로스섬의 사탕수수 농가에서 생산한 마스코바도 설탕을 제값을 주고 사는 것입니다. 제값이라는 말은 생산자인 농민들의 노동에 정당한 대가를 지불한다는 뜻입니다. 그런 점에서 마스코바도 설탕은 시중에서 판매되는 여느 설탕에 비해 값이 4배 이상 비쌉니다. 물론 품질은 좋지요. 우리가 보통 먹는 정제설탕과 달리 마스코바도 설탕은 당밀분리나 정제를 하지 않기 때문에 사탕수수에 포함된 미네랄이 풍부하고 칼슘, 단백질, 인 등 몸에 좋은 성분이 담뿍 들어있습니다.
‘네그로스 프로젝트’의 두 번째 내용은 생산자 마을을 지원하기 위한 기금 마련입니다. 두레생협은 이를 위해 설탕 한 봉지에 200원씩을 기금으로 적립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모은 돈 1400만원을 지난해 7월 네그로스로 보냈습니다. 올해 8월에도 비슷한 액수의 돈을 네그로스섬 농민들에게 지원할 예정입니다.
살기 좋고, 친환경적인 자립 마을 가꾸기에 투자 필리핀 농민들은 한국의 소비자들이 보내준 기금을 지혜롭고 당당하게 쓰고 있습니다. 네그로스섬의 농민들을 지원하는 조직인 대안무역재단(ATFI:Alter Trade Foundation Inc.)은 이 돈으로 기금을 만들어 농촌 마을에 연리 7%로 대출을 하고 있습니다. 일종의 마이크로크레딧이라고 볼 수 있지요. 대안무역재단이 대출 방식으로 지원하는 이유는 빌려준 돈을 회수해 다른 농민들을 지원하기 위해서입니다. 7%의 이자는 네그로스의 연평균 물가상승률을 고려해 기금의 실질적 가치를 그대로 유지하기 위해서입니다. 돈을 빌려간 농민들은 지금까지 한 번도 어김없이 대출금을 상환하고 있다고 합니다. 농민들은 빌린 돈을 마을 공동체를 위한 긴요한 사업에 투자하고 있습니다. 우물을 파서 건기 때 사탕수수를 재배할 수 있도록 했고, 사탕수수 운반 트럭을 사며, 가축을 기르기 시작했습니다. 여성들을 위한 건강센터도 만들었습니다. 네그로스 프로젝트를 통해 필리핀의 가난한 농부들은 살기 좋고, 친환경적인 자립 마을, 아이들이 자라나 살고 싶어하는 마을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이제 네그로스 섬의 농촌마을에는 사탕수수 뿐 아니라 누런 벼와 함께 싱싱한 채소와 과일도 자라고 있습니다. 또 마을 공터에는 닭이 뛰어놀고 뒷동산에는 염소가 풀을 뜯고 있다고 합니다. 물을 긷기 위해 하루에 서너 시간씩을 걸어다니던 아이들은 마을의 우물 옆에서 물놀이를 하며 웃음을 터트리고 있습니다. 네그로스 프로젝트가 만들어 낸 새로운 풍경입니다.
원래 비옥한 땅이었으나 외자와 대지주 몰려들면서 공동체 파괴
네그로스는 원래 농사짓기에 적합한 비옥한 땅이었습니다. 옛날 이 섬의 사람들은 농사만으로 먹고 살기에 충분한 수확을 올렸고 행복한 삶을 누렸습니다. 하지만 20세기에 접어들어 이 섬에 외국 자본과 대지주들이 몰려들면서 상황이 크게 바뀌었습니다.
외국 자본가들은 네그로스의 땅을 모두 사들여 사탕수수를 심었고 울창하던 숲의 나무를 모두 베고 사탕수수밭으로 만들었습니다. 플랜테이션이지요. 섬에 살던 농민들은 토지를 잃고 사탕수수 농장의 일꾼으로 전락했습니다. 임금은 하루 끼니를 때우기에도 모자랐고 설탕 값이라도 폭락하는 날에는 일자리를 잃고 굶주림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굶어죽는 아이들도 수없이 생겨났습니다. 세계 여러 나라로부터 원조도 받았습니다. 하지만 원조는 구조적인 문제 해결에는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농민들은 ‘원조가 아닌 교역’(trade not aid)을 요구했습니다.
필리핀에서 마르코스 독재정권이 시민들의 저항으로 몰락하고 민주적인 선거를 통해 새 정부가 들어섰지만 농민들의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대지주들이 갖고 있던 땅을 국가에서 사들여 농민들에게 팔았지만 농민들은 대부금을 갚지 못해 땅을 지주들에게 되팔고 말았습니다. 네그로스 섬의 상황도 비슷했습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일부 농민들이 작지만 자신들의 땅을 갖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일본이나 영국 등의 ‘생각 있는’ 소비자를 대상으로 유기농 설탕을 만들어 팔기로 했습니다. 선진국의 소비자들은 이들이 만든 유기농 설탕을 4배 이상 비싼 값으로 샀습니다.
우리나라 소비자들과 시작한 공정무역으로 네그로스섬의 농민들은 가난과 굶주림에서 벗어나 자립의 삶을 시작했습니다. 농민들은 사탕수수만 심고 기르는 플랜테이션으로 황폐해진 땅에 벼와 채소와 과일을 심어 자연을 되살리고 있으며 예전의 농촌공동체 마을을 회복해 온전히 자립하는 희망을 키워가고 있습니다.
세계화가 무한경쟁을 통한 빈부격차 확대와 환경파괴 가속화를 낳고 있지만 그런 세계화에 맞서는 공동체적인 세계화 운동도 확산되고 있습니다. 네그로스섬에서처럼 말입니다.
권복기 기자 bokkie@hani.co.kr
살기 좋고, 친환경적인 자립 마을 가꾸기에 투자 필리핀 농민들은 한국의 소비자들이 보내준 기금을 지혜롭고 당당하게 쓰고 있습니다. 네그로스섬의 농민들을 지원하는 조직인 대안무역재단(ATFI:Alter Trade Foundation Inc.)은 이 돈으로 기금을 만들어 농촌 마을에 연리 7%로 대출을 하고 있습니다. 일종의 마이크로크레딧이라고 볼 수 있지요. 대안무역재단이 대출 방식으로 지원하는 이유는 빌려준 돈을 회수해 다른 농민들을 지원하기 위해서입니다. 7%의 이자는 네그로스의 연평균 물가상승률을 고려해 기금의 실질적 가치를 그대로 유지하기 위해서입니다. 돈을 빌려간 농민들은 지금까지 한 번도 어김없이 대출금을 상환하고 있다고 합니다. 농민들은 빌린 돈을 마을 공동체를 위한 긴요한 사업에 투자하고 있습니다. 우물을 파서 건기 때 사탕수수를 재배할 수 있도록 했고, 사탕수수 운반 트럭을 사며, 가축을 기르기 시작했습니다. 여성들을 위한 건강센터도 만들었습니다. 네그로스 프로젝트를 통해 필리핀의 가난한 농부들은 살기 좋고, 친환경적인 자립 마을, 아이들이 자라나 살고 싶어하는 마을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이제 네그로스 섬의 농촌마을에는 사탕수수 뿐 아니라 누런 벼와 함께 싱싱한 채소와 과일도 자라고 있습니다. 또 마을 공터에는 닭이 뛰어놀고 뒷동산에는 염소가 풀을 뜯고 있다고 합니다. 물을 긷기 위해 하루에 서너 시간씩을 걸어다니던 아이들은 마을의 우물 옆에서 물놀이를 하며 웃음을 터트리고 있습니다. 네그로스 프로젝트가 만들어 낸 새로운 풍경입니다.
두레생협 회원들이 지난 2006년 6월 네스로스섬을 방문해 현지 농민 생산자들과 한 자리에 모여 사진을 찍었다. 두레생협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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