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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인형줄 따라 ‘덩실’ 즐거운 인생2막

등록 2008-03-10 19:26

굿네이버스에서 위탁운영하는 방화2종합사회복지관 ‘좋은이웃 실버인형극단’ 소속 할머니들이 4일 서울 방화3동 복지관 강당에서 인형극 〈혹부리 영감〉을 연습하고 있다. 김경호 기자 <A href="mailto:Jijae@hani.co.kr">Jijae@hani.co.kr</A>
굿네이버스에서 위탁운영하는 방화2종합사회복지관 ‘좋은이웃 실버인형극단’ 소속 할머니들이 4일 서울 방화3동 복지관 강당에서 인형극 〈혹부리 영감〉을 연습하고 있다.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느림과 자유] ‘좋은 이웃 실버인형극단’ 할머니들
한 장면 연습 400번·초청공연 300번…열정·실력 갖춘 ‘6187’
삶의 활력 되찾고 수익은 이웃돕기…“죽을 때까지 해야지”
인생은 60부터라는 말이 있지만 70대를 지나 80대에 접어들면 삶을 마무리할 때라고들 말을 한다. 하지만 뒤늦게 피는 꽃도 있는 법이다. 90을 바라보는 나이에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을 맞고 있는 이들이 있다. ‘좋은 이웃 실버인형극단’ 할머니들이다.

4일 오후 2시30분. 서울 방화동 방화2종합사회복지관 2층 강당에 할머니들이 모여들었다. 인형극 연습날이다. 모두들 얼굴이 밝다. 극단 활동에 대해 물으니 찬양 일색이다. 김남수(87) 할머니는 “늘그막에 이렇게 행복할 수 있을까 싶어”라며 “죽을 때까지 활동하겠다”고 한다. 박춘자(78) 할머니는 “인형극을 하며 나를 괴롭히던 골다공증, 관절염, 갑상선 증세가 크게 줄었다”고 거든다.

할머니들은 능숙한 솜씨로 인형이 담긴 큰 종이상자를 꺼내 왔다. 몸소 만든 인형들이다. 알록달록 예쁜 색깔에 익살스런 표정까지, 인형에 담긴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한 할머니는 쇠파이프를 조립해 무대를 만든다. 받침대의 나사를 공구로 조이는 손놀림은 여느 젊은 기술자 못지않다.

이어 녹음한 음악과 대사에 맞춰 연습이 시작됐다. 전래동화를 각색해 만든 〈혹부리 영감〉이다. “아리아리 쓰리쓰리 아라리요~” 절로 어깨가 들썩이는 음악과 함께 할머니들이 인형을 머리 위에 치켜들고 등장한다. 물동이를 인 처녀, 혹부리 영감, 도깨비 인형이 춤을 춘다. 할머니들은 대사에 맞춰 인형의 몸동작이나 손놀림을 능숙하게 조정했다. 도깨비가 혹부리 영감의 얼굴 혹을 떼는 장면에선 실제로 혹이 떨어져 나간다. 웬만한 전문 인형극단의 솜씨에 뒤지지 않는다.

굿네이버스에서 위탁운영하는 복지관에 소속된 할머니 극단이지만 ‘좋은이웃’은 전문극단이다. 2003년 창단 뒤 지금까지 무려 300회 이상 초청공연을 다녔다. 창단 첫해에 춘천세계인형극제 아마추어 부문에 출전해 〈혹부리영감〉으로 연기상을 받았고, 2005년 일본에서 열린 이다페스티발에 초청받아 인기상을 받았다. 2007년 춘천세계인형극제 때는 전문인형극단 부문에 초청받았다. 74~87살의 1기 단원과 61~67세 2기 단원들로 이뤄진 할머니 극단이 이룬 믿기 힘든 성과다.

인형줄 따라 ‘덩실’ 즐거운 인생2막
인형줄 따라 ‘덩실’ 즐거운 인생2막
‘할머니 극단’의 창단은 우연히 이뤄졌다. 2003년 봄 복지관에서 문화여가 프로그램의 하나로 어르신들과 현대인형극단의 인형극 관람을 갔다. 할머니들이 인형극을 너무 좋아하자 담당복지사는 인형극단 창단을 제안했고 몇몇 할머니들이 참여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하지만 인형극을 가르쳐줄 사람을 찾는 데 힘이 들었다. 할머니들에게 인형극을 가르치겠다고 선뜻 나서는 극단이 없었다. 유일하게 나선 사람이 현대인형극단의 여영숙(56) 전문아카데미 원장이었다. 그에게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대사는 녹음으로 해결했지만 80살 전후의 할머니들에게 인형 조작은 꽤 까다롭고 힘든 일이었다. 여 원장은 “한 장면을 400번 이상씩 연습했다”고 말했다. 땀이 일궈낸 열매는 달았다. “춘천세계인형극제 아마추어 부문에 나갔을 때 할머니들이 자신감을 얻었어요. 다른 팀들이 인형을 조작하는 게 자신들보다 못하다는 것을 봤기 때문이지요.”

이듬해 초청공연이 밀려들었다. 1기 단원만으로 소화하기가 버거워 2004년 3월에 60대 할머니들을 중심으로 2기를 모집했다.


인형극 공연은 할머니들의 삶에 큰 활력을 줬다. 최종례(81)씨는 “장애인 시설이나 고아원에 자주 가는데 우리 공연을 보고 좋아하는 분들을 보면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고 말했다. 건강도 좋아졌다. 유선금(81)씨는 2003년 위에서 종양이 발견됐지만 수술조차 미루고 공연에 참가했고 수술 뒤에도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유씨는 “조심하긴 하지만 너무 건강하다”고 말했다. 한 할머니는 몇 해 전 치매진단을 받았지만 지금까지 한 번의 실수도 없이 공연에서 자기 몫을 해내고 있다.

‘문화 전문 노인자원봉사단’으로 자리매김한 ‘좋은이웃’은 공연 수익금으로 소외된 이웃을 돕는 일을 한다. 1기 단원 7명 가운데 4명이 수급권자로 정부 보조금을 받고 있지만 공연수익금은 모두 복지관에 기금으로 내놓고 있다. 김일용 관장은 “실버극단을 문화와 복지를 결합한 사회적 기업으로 키워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권복기 기자 bokkie@hani.co.kr


할머니들의 선생님 여영숙씨 “관객보다 할머니들 행복이 먼저”

여영숙(56) 현대인형극단 전문아카데미 원장
여영숙(56) 현대인형극단 전문아카데미 원장
‘좋은이웃 실버인형극단’의 성공은 여영숙(56) 현대인형극단 전문아카데미 원장의 헌신적인 노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그는 1978년 〈한국방송〉에서 인기리에 방영된 〈부리부리 박사〉의 주인공역을 맡은 우리나라 인형극의 선구자이자 산증인이다.

여씨는 2003년부터 지금까지 매주 두 차례 복지관을 찾아 할머니들을 가르치고 있다. 인형 제작, 대본 집필, 연기 지도 등 극단 운영을 총괄한다.

그가 ‘좋은이웃’에 도입한 인형극은 관객보다 단원인 할머니들에 초점이 맞춰진다. “할머니들의 행복이 먼저”라는 생각에서다. 대표적인 장치가 음악이다. 그는 할머니들이 좋아하는 뽕짝(트로트)이나 지루박, 동요 등을 많이 쓴다.

현대인형극단 홈페이지에 올라 있는 글을 보고 복지관을 찾은 여 원장은 처음에는 ‘할머니 극단’의 지도를 망설였다고 한다. 하지만 그들에게서 세상을 떠난 친정어머니와 시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딸이 되어 보겠다”고 마음 먹었다.

“복지관을 찾아갔더니 할머니들이 죽을 날이 얼마 안 남은 우리가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느냐고 말씀들 하세요.”

처음에는 인형극 얘기는 꺼내지도 않고 할머니들과 노래하고 춤추며 놀았다. 그렇게 석달이 지나자 할머니들이 마음을 열었다고 한다. 여 원장은 “할머니들과 함께 지내면서 시간의 소중함과 매순간 우리가 얼마나 귀한 사람들을 만나는지 알게 됐다”며 “할머니들에게 인형극을 가르치기로 한 것은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결정이었다”고 말했다.

권복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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