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입학식이 열린 지난 3일 오전 서울 은평구의 한 초등학교 앞에서 사설 영어학원 관계자들이 전단지를 나눠주며 학원 홍보를 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강남은 ‘고품격-대기는 기본’ 비강남은 ‘체인점-바로 수강’
“학원으로 인가받아 유치원처럼 운영…사실상 단속 어려워”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영어교육을 실시한다는 방침을 밝힌 이후, 아이 엄마들이 고민에 빠졌다. ‘영어 공교육 강화’ 발언 이후 고민스런 부모들은 ‘영어 유치원’을 찾고 있다. ‘학부모’의 자격으로, 영어유치원 상담을 받아봤다. 영어 유치원은 일반 어린이집·유치원과 달리 Y, J, S, E어학원 등처럼 프랜차이즈 형태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다. 대개 한 반 정원이 10~12명이며, 각 반에 원어민 교사와 한국어교사가 1명씩 배치된다. 정규 수업은 9시30분~2시30분까지 5시간 남짓으로, 종일반 유치원에 비해 짧다. 비강남 영어유치원, 월 100만원 안 넘어…대체로 체인점 많아
지난달 22일 서울 관악구의 ‘W유치원’을 찾았다. 이 곳은 전국 80여개 지원을 둔 대표적 체인유치원이다. 오전 11시30분, 아이들이 수업중이어서, 실내는 조용했다. 이 유치원은 ‘영어 몰입’ 교육을 내걸고 있다. 수준별 평가를 거쳐 반을 배정하는데, 숙제도 있고, 매월 테스트를 해 결과가 학부모에게 통보된다. 영어발표회를 비롯해 골프·요리·게임 같은 다양한 활동도 진행된다. 월 평균 교육비(수강료)는 식대 5만원이 포함돼 65만원. 여기에 입학금 10만원, 원복 13만원, 재료비(학기마다 25만원)와 교재비(1년 기준 25만원 안팎)가 추가된다. 아이가 처음 입학하면, 첫달에 100만원 이상이 든다. 이 학원은 최근 입학 상담을 받는 학부모가 급격히 늘었다. 이 학원 원장은 “아무래도 새 정부의 영어교육 방침 때문인 것 같다”며 “영어는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접해야 학습효과가 확실히 좋다”고 말했다.
서울 영등포구의 ‘E 영어유치원’. 역시 국내 100여 체인점을 둔 유명 사교육업체다. 5~7살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데, 유치원 정규과정과 미국의 유아교육 프로그램을 결합한 수업을 내세운다. 원어민 교사와 한국인 교사가 3교시씩 나눠 수업을 진행하는데, 100% 영어 사용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모국어를 접하듯, 친근하게 영어를 접하도록 하기 위함”이며, 자체 개발한 교재로 차별화된 수업을 진행한다고 설명한다.
월 교육비는 65만원(5살 60만원, 매달 식대 7만원 추가, 재료비·교재비 각각 20만원 별도)으로 국내 영어유치원 체인 브랜드를 양분하고 있는 ‘W’ 유치원 수준과 비슷했다. 이 유치원 관계자는 “(최근) 입학상담 사례가 확실히 많아졌다”며 “어릴 적부터 영어를 배워야 나중에 정식으로 영어를 배워도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두 곳의 영어 유치원은 아직 정원이 차지 않아 언제든지 입학이 가능했다.
강남 영어유치원, 월 100만원 훌쩍…유명한 곳은 ‘대기’가 기본
강남으로 발길을 돌렸다. 유치원 건물, 인테리어뿐 아니라 교육 과정에서도 ‘고급’ 분위기를 풍기는 곳이 많았다. 강남권에는 대형 프랜차이즈 영어유치원만이 아니라, 상당한 규모를 갖춘 별도의 독립된 영어유치원들이 많았다. 이런 곳에서는 특활활동·체육교육도 골프와 발레 같은 과목을 진행한다. 월 교육비도 비강남권보다 높았다. 유치원별로 차이가 있지만 월 100만~200만원 수준이었다. 입소문을 탄 유치원의 경우 정원이 다 차, 대기자만 수십 명이다.
언론에 영어뮤지컬 학원으로 자주 소개된 W영어유치원. 월 교육비가 중식과 교재비를 포함해 월 120만원(원복값 42만원 별도)인데, 이미 정원을 다 채웠다. 이 학원은 발음, 문법, 독해, 쓰기 같은 영어과목 외에 수학·과학·드라마·음악·체육 등의 영역별 수업도 영어로 진행한다는 점을 유독 강조했다.
‘고품격 어린이 영어학교’를 표방한 대치동의 B영어유치원은 6~7살반의 경우 이미 정원이 다 찼다. 5살반만 자리가 소수 남아 있다. 발음, 듣기, 읽기, 어휘 같은 영어 수업 외에 외부교사를 초빙해 골프, 발레 수업이 진행되는 것이 특징이다. 원비는 월 110만원(책값 20만원, 입학금 30만원 별도)이지만, 입학 경쟁이 치열하다. 이 학원 관계자는 “우리 유치원은 책을 펴놓고 수업하는 주입식 교육이 아니라 다양한 드라마, 뮤지컬, 수학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영어를 친숙하게 느끼도록 한다”며 “교복, 활동복, 도시락, 가방은 물론 발레화까지 공짜로 지급한다”고 설명했다.
서초동에 위치한 B영어유치원은 몬테소리 영어교육과 특별활동을 강점으로 내세우고 있다. 월 교육비가 106만원(행사비·교재비 45만원 별도)이며, 4살부터 입학이 가능하다. “아직 한국말도 서툰데, 원어민 영어 수업이 가능할까요”라고 물었다. 학원쪽은 “생활 속에서 원어민 선생님과 친해지기 위해 자연스럽게 영어를 습득할 수 있다”며 “어릴 때부터 영어를 접해야 발음 교정이 가능하고, 모국어처럼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학원 관계자는 “영어 유치원 교육이 보편화된 강남 쪽에서 조기 영어 교육을 시키려는 학부모들의 욕구가 크다”며 “비강남권에 사는 원아들도 꽤 있다”고 말했다.
‘공교육 강화’ 정부 방침 이후 상담 크게 늘어…현행법상 단속 어려워
영어 공교육을 강화하고, 사교육을 줄여보겠다는 정부의 영어 몰입 정책이 현실에서는 고액 사교육 시장 확대라는 ‘역풍’으로 나타나고 있다. 얼마 전 서울 구로동 한 아파트 앞에도 미취학·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영어학원이 설립되는 등 주변에서는 영어유치원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영어유치원은 당국의 관리·감독도 쉽지 않다. 현재 영어유치원은 ‘유아 교육법’에 의해 설립인가를 받은 유치원이 아닌 ‘학원의 설립·운영 및 과외교습에 관한 법률’에 등록된 유아 대상 영어학원이기 때문이다. 이인영 의원실 허남동 비서관은 “영어 유치원이라는 것은 없으며, 학원으로 인가를 내고 유치원처럼 영업하는 것”이라며 “원비를 고액으로 책정하더라도 사실상 단속이 어렵다”고 말했다.
고액의 교육비만이 아니라 체계화된 유아 교육 커리큘럼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점도 문제다. 때문에 영어유치원들은 ‘교원자격증 취득한 정규교사 확보’를 광고하는 경우가 많다. 학원으로 등록된 유아 유치원의 경우 일반 유치원에 비해 ‘유아 교육법’에 명시된 설립기준, 교육과정, 보육비 등 유치원 운영에 대한 지자체·교육청의 관리·감독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이경숙 의원실이 서울지역 유아 대상 영어학원의 강사 현황을 조사한 자료를 보면, 유아 교육 전공자의 비율은 내국인이 25.0%, 원어민 외국어 강사는 3.8%에 불과했다.
“학원으로 인가, 유치원처럼 운영”…“일반유치원 아이들이 창의성 더 높아”
‘영어유치원 열풍’은 뜨겁지만, ‘영어 조기교육’의 효과는 여전히 논란중이다. “어린 시절부터 영어를 모국어처럼 거부감 없이 접할 수 있다”는 주장 못지않게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높다. 2001년 한국메사연구소는 ‘한국 유아의 창의성에 대한 실증적 연구’를 통해 “영어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들보다 일반 유치원에 다니는 아디들의 창의성이 훨씬 더 높다”고 발표했다. 6교시로 진행되는 영어 유치원들의 수업은 발음, 이야기하기, 어휘 등 원어교재 중심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허 비서관은 “영어유치원의 경우 학원에서 유아를 상대로 수업하는 것이어서, 유아교육에 관한 노하우나 커리큘럼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고 봐야 한다”며 “주입식 교육으로 오히려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한겨레> 온라인뉴스팀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학원으로 인가받아 유치원처럼 운영…사실상 단속 어려워”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영어교육을 실시한다는 방침을 밝힌 이후, 아이 엄마들이 고민에 빠졌다. ‘영어 공교육 강화’ 발언 이후 고민스런 부모들은 ‘영어 유치원’을 찾고 있다. ‘학부모’의 자격으로, 영어유치원 상담을 받아봤다. 영어 유치원은 일반 어린이집·유치원과 달리 Y, J, S, E어학원 등처럼 프랜차이즈 형태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다. 대개 한 반 정원이 10~12명이며, 각 반에 원어민 교사와 한국어교사가 1명씩 배치된다. 정규 수업은 9시30분~2시30분까지 5시간 남짓으로, 종일반 유치원에 비해 짧다. 비강남 영어유치원, 월 100만원 안 넘어…대체로 체인점 많아
지난달 22일 서울 관악구의 ‘W유치원’을 찾았다. 이 곳은 전국 80여개 지원을 둔 대표적 체인유치원이다. 오전 11시30분, 아이들이 수업중이어서, 실내는 조용했다. 이 유치원은 ‘영어 몰입’ 교육을 내걸고 있다. 수준별 평가를 거쳐 반을 배정하는데, 숙제도 있고, 매월 테스트를 해 결과가 학부모에게 통보된다. 영어발표회를 비롯해 골프·요리·게임 같은 다양한 활동도 진행된다. 월 평균 교육비(수강료)는 식대 5만원이 포함돼 65만원. 여기에 입학금 10만원, 원복 13만원, 재료비(학기마다 25만원)와 교재비(1년 기준 25만원 안팎)가 추가된다. 아이가 처음 입학하면, 첫달에 100만원 이상이 든다. 이 학원은 최근 입학 상담을 받는 학부모가 급격히 늘었다. 이 학원 원장은 “아무래도 새 정부의 영어교육 방침 때문인 것 같다”며 “영어는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접해야 학습효과가 확실히 좋다”고 말했다.
강남의 한 영어 유치원 홈페이지에 소개된 강의실 내부 모습.
강남의 한 영어 유치원 홈페이지에 소개된 발레 강습 교실 내부 모습.
한 프랜차이즈 영어 학원이 신문에 낸 영유아 대상 영어유치부 모집 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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