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구치소 여성재소자 성추행·자살 사건 일지
[사건 그후] 여성재소자 성추행·자살
“저는 교정행정의 최고 책임자로서 피해자와 그 가족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죄의 말씀을 드립니다. 아울러 국민 여러분께 커다란 실망과 충격을 안겨 드린 데 대하여 머리 숙여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참으로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 발생하였음에도 초기에 피해자를 보호하는 등 적절한 조처를 취하지 않아 자살에까지 이르게 한 것은 어떠한 질타를 받아도 할 말이 없는 참으로 부끄러운 일입니다.”(2006년 3월9일 천정배 당시 법무부 장관)
아홉달 전, 서울구치소 여성 재소자 성추행·자살 사건의 참혹한 진상 앞에서 법무부 장관은 깊이 머리를 숙였다. 법원도 김씨의 죽음에 대한 국가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지난 9월5일 서울중앙지법은 피고 ‘대한민국’이 김씨의 유족들에게 1억7천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1심 판결 이후 피고 ‘대한민국’의 태도는 사건 직후 여론의 뭇매를 맞을 때와는 사뭇 달라졌다. 3월엔 “어떠한 질타를 받아도 할 말 없다”고 하더니, 지난달 10일에는 “국가의 책임 비율을 80%로 정한 법원의 판결은 너무 무겁다”며 항소했다. 국가를 대표해 소송을 맡고 있는 서울고검 송무부가 서울고법에 낸 항소이유서를 보면, 서울구치소 보안관리과장이 성추행 사건 뒤 김씨의 가석방을 조건으로 내세워 김씨 가족에게 합의를 종용했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한다. 또 구치소 쪽이 김씨의 자살 가능성에 충분히 유의하지 않았다는 법원의 판단도 부당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지난 2~3월 법무부가 검사 3명을 파견해 진상조사를 벌인 끝에 발표한 내용을 뒤집는 것이다. 국가가 스스로 벌인 진상조사 결과를 법정에서 번복하고 있는 꼴이다.
유족들은 슬픔과 분노에 휩싸여 있다. 숨진 김씨의 여동생(30)은 “장관까지 찾아와 모두 잘못했고 책임지겠다고 하더니, 이제 와 언니가 잘못된 선택을 했고 배상금이 너무 많다고 한다”며 “부모님이 자식을 잃고 벌써 여러 차례 쓰러져 구급차에 실려갔는데, 언니 잃은 슬픔에서 벗어나기도 전에 부모님마저 돌아가실까봐 겁난다”고 말했다. 그는 “개인이 거대한 나라를 상대로 싸우는 것이 너무 힘들다”며 “이런 상황이 계속될수록 언니가 자살을 기도하기 전에 미리 바깥에 알리고 도움을 청하지 못한 것이 너무 후회된다”고 말했다.
대한변호사협회에서 이 사건 진상조사단장을 맡고 있는 박용일 변호사는 “철저히 밝히라는 장관의 지시로 조사해 언론에 발표까지 한 내용을 지금 와서 아니라고 하는 것은 국가기관으로서 매우 무책임한 일”이라며 “보통 국가가 소송에서 졌을 때 항소하는 것을 관례처럼 여기고 있는데, 이번처럼 책임이 명백한 경우에는 항소를 포기하고 피해자들에게 백배 사죄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고 말했다. 유신재 기자 oho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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