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의 양극화
‘9만9천원 대 18만600원’.
밥이라고 다 같은 밥이 아니다. 밥·국·김치·닭매운탕의 똑같은 식단으로 밥상을 차려도 비용은 두 배 정도 차이가 난다. 음식 재료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주로 재래시장에서 장보는 비정규직 노동자는 열흘치 밥을 먹는 데 9만9천원이 들었고, 주로 유기농 식품점에서 장보는 중산층은 18만600원이 들었다. 이들이 이 식단으로 한 달에 세번 장을 본다고 가정하면 한 달에 두 집 식비는 각각 29만7천원과 54만1800원으로 24만4800원 차이가 난다.(표 참조)
비정규직 노동자 김홍권(46)씨의 경우=경기도 하남시에 사는 김씨는 아내와 헤어진 후 3년 전부터 직접 밥을 지어먹고 산다. 김씨는 하남시청에서 월급 160만원을 받으며 한강감시대원으로 근무하다 지난달 고용중지 상태가 된 뒤 요즘은 건설현장에서 막노동을 하고 있다. 얇아진 지갑의 김씨가 시장을 보러 가는 곳은 5일마다 열리는 재래시장인 덕풍시장이다.
신선도나 품질도 중요하겠지만 김씨가 식품 재료를 선택하는 첫째 기준은 ‘싼 가격’이다. “돈이 있다면 국내산인지 수입산인지도 따져보고, 국내산에서도 유기농으로 먹겠지만 찬밥 더운밥을 가릴 형편이 못 된다”고 말했다. 김씨가 장에 가는 시간은 오후 5시 이후. “장이 끝날 무렵에 에누리를 많이 해주기 때문”이다.
일하면서 고등·초등학생인 두 아들의 식사까지 챙겨야 하는 김씨는 한번 조리하면 오래 먹을 수 있는 것들로 식단을 짠다. 밥상에 제일 자주 오르는 음식은 ‘사골국’으로 산지가 불분명한 잡뼈를 끓여낸다. 뽀얀 국물이 멀겋게 되도록 3번을 우려내면, 열흘 동안 세 식구 국 걱정은 없다.
일주일에 한 차례는 한창 자랄 때인 아이들을 위해 뭉텅뭉텅 감자를 썰어넣고 고춧가루를 풀어 끓인 ‘닭매운탕’이나 소금 툭툭 뿌려 구운 돼지고기 엉덩이살 등 ‘고기’를 식단에 넣는다.
김씨가 시장에서 산 찬거리들에는 대부분 원산지가 표시돼 있지 않다. 김씨는 “이렇게 싼 식재료라면 대다수가 중국산이나 외국산 아니겠느냐”면서도 “그런 것을 따질 여유는 없다”고 말했다.
억대 연봉 남편 둔 고명선(53)씨=경기도 남양주의 전업주부 고씨는 주로 대형 마트나 백화점의 유기농 식품매장에서 장을 본다. 매주 아파트에서 7일장이 열리지만, 원산지를 알 수 없고, 품질도 신뢰하기 어려워 잘 이용하지 않는다.
고씨의 식품 선택 기준은 첫째도 안전, 둘째도 안전이다. 세무사로 일하는 남편의 1년 수입이 1억여원 정도다. 아이들이나 남편과 자신을 위해 쓰는 돈이 적지 않지만, 먹거리 지출에 연연할 정도는 아니다.
좋은 식재료를 위해서라면 크게 가격은 따지지 않는다. 고씨는 잎 채소나 과일은 반드시 국내산 유기농이나 무농약 표시를 확인한다, 두부·콩나물·계란 등 포장 제품은 아예 ‘브랜드’ 제품만 고른다. 일주일에 한두 번 쇠고기를 먹는데, 광우병 파동 뒤로는 ‘한우 생고기’만을 산다. 한우족을 고를 때도 누런 한우 털이 붙어있는 것을 눈으로 확인해야 안심이 된다
고씨는 2년 전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서 이곳으로 이사오기 전까지 15년 동안 주로 친환경 식품을 파는 ‘ㄷ’ 회원으로 식품을 구입했고, 2년 전부터는 아예 무농약·유기농 식품만을 구입한다. “농약 많이 친 과일을 먹는다고 당장 탈이 나지는 않겠지만, 우리 가족의 몸 속에 나쁜 물질이 쌓인다고 생각하면 무섭다”는 게 고씨의 생각이다.
그는 “남편이나 나나 대학생 아들들이 아직까지 큰 병 앓지 않고 건강히 살아온 것은 음식을 가려먹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며 “다른 건 아껴도 음식 재료 사는 데는 돈을 아끼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억대 연봉 남편 둔 고명선(53)씨=경기도 남양주의 전업주부 고씨는 주로 대형 마트나 백화점의 유기농 식품매장에서 장을 본다. 매주 아파트에서 7일장이 열리지만, 원산지를 알 수 없고, 품질도 신뢰하기 어려워 잘 이용하지 않는다.
건강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웰빙’ 식품과 유기농, 친환경 상품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사진은 21일 오후 서울의 한 대형마트 선물매장에 다양한 차 종류가 진열돼 있는 모습.
이정용 기자 lee31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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