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화자, 좋고~” 40대 박 차장, 30대 강 과장, 20대 일반직원도 술자리 앞에서는 아무런 격식 없이 그저 즐거울 뿐이다. 지난 6일 ㅇ은행 서울 영등포구 한 지점에 다니는 직장 동료들이 하루 일과를 마치고 영등포시장 네거리에 있는 한 대폿집에서 막걸리 한잔으로, 쌓인 하루의 스트레스를 풀고 있다.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향수에 젖고…분위기에 취하고
사회의 양극화가 깊어지면서 생활의 기본조건인 먹거리까지도 영향을 받고 있다. 가난한 시절을 떠올리는 값싼 대폿집과 막걸리가 유행하는가 하면, 2천~3천원대의 초저가 값싼 음식점이 등장하고, 가정의 식탁에서마저 질과 가격의 차별화가 심화되고 있다. 이런 먹거리 양극화 실태를 두 차례 걸쳐 살펴본다.
“여기요, 막걸리 한 주전자 더요∼”
서울 영등포시장 로터리에 있는 ㅌ막걸리집, 강형탁(34·서울 은평구 갈현동)씨가 빈 막걸리 주전자를 흔들며 주인을 찾는다. 강씨의 부름에 화답하듯 주인장이 외친다. “예~, 갑니다” 강씨 일행이 비운 막걸리 주전자마다 취흥은 더욱 그윽해지고 밤은 더욱 깊어져 갔다. 떠들썩한 분위기의 술집 여기저기엔 강씨 일행 말고도 젊은이들이 여럿이다.
60~70년대 가난과 고달픈 일상에 시달린 서민들에게 따뜻한 위로를 해줬던 추억의 대폿집이 돌아왔다. 한창이던 때로부터 30여년 만이다. 프랜차이즈 업계에선 올해 서울·수도권에서만 막걸리 위주의 ‘퓨전 대폿집’이 200곳 이상 새로 문을 연 것으로 보고 있다. 기존의 퓨전 소주방이나 포장마차에서 막걸리를 새 메뉴로 내놓는 것까지 포함하면 막걸리집이 1천곳이 넘으리라는 게 업계의 추정이다.
소주방 대신 ‘퓨전’ 대폿집 들어서기도
실제로 지난해까지만 해도 소주방이 늘어섰던 서울 신촌 현대백화점 뒤 술집 골목엔 최근 막걸리를 파는 퓨전 대폿집 20곳이 새로, 또는 업태를 바꿔 들어섰다. 그동안 맥주와 양주, 포도주 등에 밀려 냉대받던 전통 막걸리가 화려하게 컴백한 셈이다. 막걸리의 새로운 ‘전성시대’가 열린 것 같다.
그러면 왜 하필 막걸리이고, 대폿집일까? 강형탁씨는 “경제사정이 좋지 않으니까 직장 동료들과 술값 부담이 적은 ‘퓨전 대폿집’을 찾는다”고 말했다. 경제사정이 가장 큰 이유라는 것이다.
옆자리의 구은회(28·경기도 부천시)씨도 “안주가 다양하면서도 값이 싸서 좋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 대폿집엔 구이·탕·무침·볶음·전·퓨전 요리 등 40가지가 넘는 안주가 있다. 안주의 값은 2900원부터이며, 가장 비싼 보쌈도 1만3500원이다.
업계의 매출고도 이런 흐름을 잘 보여준다. 국내 막걸리 판매량의 40%를 차지하는 서울탁주제조협회의 김평 팀장은 “지난 98년 외환위기 이후 최근까지 꾸준히 막걸리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며 “낮은 도수를 선호하는 경향과 술·안주값이 싸다는 점이 원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대폿집에서 막걸리를 찾는 다른 이유는 추억이고, 요즘 유행하는 ‘복고’다. 서울 마포의 회사 근처에서 막걸리를 즐겨 마신다는 박용한(39)씨는 “막걸리는 예전에 아버지가 시킨 술 심부름을 다녀오면서 한 모금씩 몰래 마시던 옛 생각이 나서 더 즐겁다”고 말했다.
직장이 강남인 박미영(30)씨도 “드라마에서나 보던 예전 술집의 모습을 보여주는 복고풍 인테리어가 재미있다”고 말했다.
대폿집엔 복고풍 인테리어가
사람들의 이런 심리를 반영하듯, 최근 들어선 많은 대폿집들이 60~70년대 대폿집의 모습을 재현하고 있다. 나무문에 유리창을 끼운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서면 뿌연 조명 아래, 둥그런 철판 탁자가 등받이없는 의자와 짝을 이뤄 빼곡이 들어서 있다.
대폿집 안에는 옛 동네와 거리를 실내장식으로 벽에 옮겨놓았다. 주점 벽면에 즐비한 ‘대복상회, 뉴스타양장점, 북경반점, 약속다방, 소리전파사, 영 미장원, 전당포…’ 등 상점들의 간판과 촌스런 이름들은 나이든 사람에겐 ‘옛 추억’을, 젊은이들에겐 ‘부모의 시절’을 떠올리게 해 마음을 따뜻하게 해준다.
술집 가운데 세워진 장식으로 세워진 전봇대에 적힌 ‘애국자는 일터로 썩은 자는 유흥가로’ ‘덮어놓고 낳다보면 거지꼴 못 면한다’는 표어는 시대를 압축해 보여준다. 이런 탓인지 대폿집에는 20대 여성부터 50대 남성까지 남녀노소가 들끓는다.
프랜차이즈 업계의 한 전문가는 “최근 급증한 대폿집과 선술집은 저렴한 값의 다양한 메뉴와 복고적 실내 분위기를 상품화해 불황에 허덕이는 젊은이들과 직장인들을 파고들고 있다”며 “이유가 있는 유행인 만큼 상당기간 시장이 확대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런 막걸이와 대폿집의 유행에 대해 홍성태 상지대 교수는 “막걸리는 돈의 부담없이 먹을 술이기도 하고, 건강에도 좋아서 인기가 좋은 것 같다”며 “경제적으로 더 어려웠으면서도 인간관계에서 더 깊이가 있던 예전 분위기를 재현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지금종 문화연대 사무총장도 “대폿집은 맥주집보다 술값이 싸면서도 편안함이 있다”며 “아무래도 생활이 궁핍하니 술 소비 행태에도 양극화 현상이 나타난 것 같다”고 말했다.
글 김소연 김규원 기자 dandy@hani.co.kr
사진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1960 ~70년대 거리 풍경과 대폿집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서울 영등포시장 네거리의 한 주점 에서 지난 7일 저녁, 손님들이 양은 주전자에 담겨 나온 막걸리를 마시며 얘기꽃을 피우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1960 ~70년대 거리 풍경과 대폿집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서울 영등포시장 네거리의 한 주점 에서 지난 7일 저녁, 손님들이 양은 주전자에 담겨 나온 막걸리를 마시며 얘기꽃을 피우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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