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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베트남 국제결혼’ 그럼 어떻게 풀어야 하나

등록 2006-05-04 19:53

베트남 결혼 광고는 동네 어귀까지 치고 들어왔다. 광고에서 베트남 여성은 인격체이기보다는 교환가능한 상품으로 취급된다.  류우종 기자
베트남 결혼 광고는 동네 어귀까지 치고 들어왔다. 광고에서 베트남 여성은 인격체이기보다는 교환가능한 상품으로 취급된다. 류우종 기자
[보도이후] 민족적 긍지강한 베트남 vs 현실적 결혼 수요
“만남의 과정 및 성사 과정이 인격적이고 평등해야 하며, 베트남 여성이 속았다는 마음이 들지 않도록 한국(남자)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줘야 한다.”(<인터넷한겨레> ‘ckyooj’)

“현재 존재하는 결혼 이벤트 회사들을 철저히 조사해 인권유린의 소지가 없는지 밝히고, 국민과 정부는 베트남인들에게 사과해야 한다.”(<인터넷한겨레> ‘bpcapital’)

<한겨레21>이 제608호에서 <조선일보> 4월21일 사회면 머리기사 “베트남 처녀들, 희망의 땅, 코리아로”로 촉발된 베트남 유학생과 현지인의 분노를 보도한 기사에 대한 반응이 뜨거웠다. 인터넷에서는 한국 남성과 베트남 여성간의 국제결혼이 사실상 매매혼이라면, 폐해를 개선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이윤 추구에 눈 먼 국제결혼정보업체의 난립과 국제결혼의 문제점은 공공연한 사실이었으나, 베트남 유학생과 현지인의 반응을 토대로 “우리 안에 내재된 ‘인종주의’를 극복해야 한다”는 기사가 나가면서 인권유린의 실태, 거짓결혼, 결혼중매회사에 대한 단속 등 시민단체를 비롯 구체적인 개선책을 주문하는 글들이 올라왔다.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은 지난달 28일 논평을 내어 “조선일보가 베트남 여성을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한국 남성에게 선택되려고 안간힘을 쓰는 존재’로 묘사하고, 맞선현장의 사진을 모자이크도 없이 처리해 이들의 인권을 침해하고 전체 베트남 국민을 모욕하는 기사를 실어 베트남 가계의 거센 반발을 사고 있다”고 비판했다.

민언련은 “돈벌이를 위해서라면 여성들의 인권을 침해하고 다른 나라 국민의 자존심을 상처 내는 일도 서슴지 않는 조선일보의 반인륜적 저질 상업주의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며 “조선일보는 잘못을 인정하고 기사에 소개된 여성과 베트남 국민에게 사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정브리핑은 1일 “조선일보 기사에 베트남인들의 분노는 상상을 초월했다. 베트남 정부가 대사관 관계자를 불러 진상을 캐물었고, 이어 베트남 거의 모든 사회·여성단체가 조선일보에 대해 공식적인 사과를 요청하는 등 파장이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그 이유는 “한국인과 결혼하는 베트남 여성들을 ‘경제적인 목적만으로 결혼’하려는 사람으로 묘사함으로써 베트남 사람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조장했다는 것”이라며 “한국 남성은 얼굴을 가려놓고 베트남 여성들의 얼굴 사진은 선명하게 처리하는 등 초상권조차 인정받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또 “맞선 과정을 ‘얼굴에서 앵글이 전신으로 옮겨가는 과정을 되풀이했다’고 표현함으로써 베트남 여성들의 인권이 침해를 받았다”며 “‘한국의 왕자님들, 우리를 데려가 주오’라는 식으로 사진제목을 달음으로써 베트남 여성이 결혼문제를 마치 흥정하는 것으로 묘사한 것도 (진실을) 오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 현지 베트남에서 한국을 보는 시각 ‘싸늘해져’

기사가 나간 뒤 현지 베트남에서 한국을 보는 시각도 싸늘해졌다. 그동안 베트남은 한국영화와 드라마는 물론 장동건과 김남주 등 한류 스타에 대한 인기가 높은 곳이었다. ‘한류스타’와 한국산 제품 등으로 인해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긍정적이었던 베트남에서 한국 언론의 보도는 유달리 강한 베트남민족의 자긍심에 깊은 상처를 낳을 우려가 깊다. 베트남여성연합회와 보반끼엣 전 총리의 분노에서 보듯 베트남 사회에서의 파장은 만만치 않다. 또 4월25일 한국에 유학중인 베트남인들이 조선일보사 앞에서 규탄 시위를 벌이고, 베트남여성연합회 하티키엣 주석과 보반끼엣 전 베트남 총리가 분노와 치욕감을 토로하는 등 외교 문제로까지 확대될 조짐도 보이고 있다.

대사관이 나서 해당기자의 사과메모를 베트남어로 번역, 현지 언론사들에게 배포하고 있고, 동시에 베트남 유력지인 노동일보, 인민군보, 하노이머이, 젊은이지, 사이공타임스 및 최대 인터넷 언론매체인 VN익스프레스, 베트남넷과 연쇄 회견도 열며 진화에 나서고 있는 상태다.

그렇지만 한명숙 국무총리를 비롯 여성가족부와 여성단체 등에 항의서안을 보낸 상황에서 베트남 사회 일각에서 요구하는 대로 <조선일보> 차원의 공식사과와 베트남 결혼을 둘러싼 근본적 해결책이 나와야 할 것으로 보인다. 베트남 현지의 안태성 한국대사관 공보관은 지난달 27일 <한겨레>에 “26일 베트남 외교부를 찾아가 이 문제를 협의했다”며 “베트남에서 좋았던 한국에 대한 인상을 이번 일로 그르칠까 걱정”이라고 우려했다.

◇ 반한감정으로 ‘한류열풍 저해’ 식의 확대해석 말아야

우리 안에 스며든 오리엔탈리즘은 한국-베트남 부부의 진정한 행복을 방해한다. 4월25일 조선일보사 앞에서 벌어진 베트남 유학생들의 기자회견.   윤운식 기자
우리 안에 스며든 오리엔탈리즘은 한국-베트남 부부의 진정한 행복을 방해한다. 4월25일 조선일보사 앞에서 벌어진 베트남 유학생들의 기자회견. 윤운식 기자

하지만 이런 반발이 일부 언론의 보도와 달리 ‘한류 열풍’에 악영향을 미친다거나 ‘반한 감정’이 확대되는 분위기는 아닌 듯하며, 진정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베트남 유력 관영신문인 <뚜오이쩨신문> 레호앙 편집국장도 <한겨레>에 ‘베트남에 반한감정 없다’는 기고를 보내 “최근 한국의 몇몇 일간지가 우리의 이런 반응을 ‘반한 감정’으로 몰아가고 있는 점에 안타까움을 느낀다”며 “우리는 한국의 일부 결혼 중개업체가 우리 여성을 마치 상품처럼 다루는 것과 광고를 통해 우리 여성을 노골적으로 비하한 것을 두고 분노한다”며 ‘반한감정’으로 몰고 가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시했다. 그는 “뚜오이쩨신문은 물론 베트남의 어떤 언론도 한국인을 비난한 적이 없다”며 ‘베트남에 ‘반한감정’이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를 더욱 분노하게 하는 것은 〈조선일보〉에 실린 ‘베트남 처녀들, 희망의 땅 코리아로’라는 기사”로 “베트남에서 이뤄지는 국제결혼 과정을 다룬 이 기사는 무책임한 논조로 일관하면서 방관적 태도를 보였으며, ‘맞선 현장’의 사진에서 베트남 여성들의 얼굴을 그대로 노출시켜 인권과 인격을 침해하고, ‘한국의 왕자님들, 우리를 데려가 주오’라는 설명을 붙여 우리 여성을 비하했다”고, 분노의 대상을 지목했다. 그는 “이 기사에 대해 조선일보에 공식사과를 요청했으나 아무런 답신을 받지 못했다”며 조선일보의 인권침해 행위에 대한 중단을 요구하고, 한국과 베트남 사이의 우애를 키워 함께 미래를 열어가자고 주장했다.

◇ 남종영 기자, “조선 보도 계기로 베트남 여성을 보는 우리의 시각 바뀌어야”

<한겨레21>에 관련 기사를 쓴 남종영 기자도 “베트남의 반한감정으로 한류가 저해된다는 식의 언론보도는 지나친 비하”라며 “조선일보의 보도를 계기로 우리 안에 무의식적으로 스며 있는 베트남에 대한 차별적인 시선, 나아가 조선족·필리핀 여성 등과의 맞선을 통해 이뤄지는 농촌총각 결혼 보내기 프로젝트를 바꾸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인들 90%는 베트남 여성을 한국 여성처럼 대우하지 않고 상품으로 보고 있다”며 “베트남의 경우 결혼중계업이 불법인데도 경북 예천, 안동 등 지자체가 행사처럼 사업을 확대하는 것은 문제”라고도 했다.

안 기자는 조선 보도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사실관계는 틀린 것이 하나도 없지만 베트남 여성의 결혼을 보는 시각에서 한국의 우월주의적 시각과 여성에 대한 가부장적인 시각으로 상품화한 것이 문제였다”며 “특히 베트남에서 결혼중개업이 불법임에도 기사에서 다루지 않은 것 등 인종주의적 시선이 들어가 있는 것이 문제였다”고 말했다.

4월22일 모인 베트남 유학생들은  기사로 수치스러움을 참지 못했다. 이들은 항의 기자회견을 하기로 결정했다.  남종영 기자
4월22일 모인 베트남 유학생들은 기사로 수치스러움을 참지 못했다. 이들은 항의 기자회견을 하기로 결정했다. 남종영 기자

그는 개선대책과 관련해 “베트남 여성들도 한국에 오기를 원하고, 한국의 남성들도 결혼하기를 원하니까 막을 수 없다면 보편적 윤리에 벗어나지 않게 관리하느냐가 중요하다”며 “국외여성과 한국남성의 결혼을 주선하는 결혼정보업체가 현행 등록제에서 허가제로 바꾸고, 결혼 실패율을 줄이기 위해 현지적응 프로그램이나 결혼 이후 통역 지원 등의 대책을 고민해야 할 것”이고 조언했다.

교민들도 특히 현지 알선업체들이 하루빨리 구태를 벗고 인격적이고 정상적인 결혼알선을 해야 하며, 현지 공관은 이들 업체들을 적극적으로 통제하고 교육함으로써 한류로 확산된 한국인에 대한 이미지를 더이상 손상시키지 말아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이번 기사는 농촌지역 곳곳에서 볼 수 있는 ‘베트남 여성과 결혼하세요’ 등의 현수막이 인권침해 소지를 담고 있다는 시민단체 나와누리의 지적을 토대로 베트남 결혼과 관련된 기사를 기획하는 과정에서 구수정 베트남 통신원이 <뚜오이쩨신문>에 조선의 보도내용을 기고, 애초 기획에서 수정된 기획기사를 내보낸 것으로 전해졌다. 여러해 전 베트남전에 참전한 한국군의 베트남 양민 학살 관여를 첫 보도한 이후 지속된 기획보도와 모금운동으로 베트남에 한-베평화공원을 조성하는 등 한국과 베트남의 역사화해에 앞장서온 <한겨레21>은 이번 일을 통해서도 한국과 베트남의 건강한 우호 증진을 위한 보도에 나서고 있다. 한겨레21은 필리핀, 베트남, 중국 내 조선족 등과 한국 남성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결혼 중개’와 관련된 후속기사를 기획 중이다.

<한겨레> 온라인뉴스팀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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