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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여행·여가

[필진]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에서

등록 2006-05-03 13:53

베트남의 하노이로 가는 밤비행기는 지루했다. 간혹, 비행기 아래로 간간히 불빛들이 보였다. 나는 잠들 수 없었다. 서른 일곱. 어디론가 새롭게 떠나고, 다시 무언가를 시작하기엔 긴장되는 나이다. 게다가 베트남이라니... 비교철학을 전공한 내가 베트남으로 유학을 간다는 소리에, 모두들 고개를 갸웃거렸다. 베트남에서 철학을 한다니. 하늘거리는 아오자이와 꼬깔모자, 베트남전쟁의 기억들과 사회주의 국가......

여섯살 즈음이었나, 비행기를 타고 밤, 서울의 야경이 어린 나에겐 커다란 경험이었다. 내가 살던 고향의 집엔 11살이 되어서야 전기가 들어왔다. 아니, 정확하게 표현하면, 전신주와 전선을 모두 자비로 구입해서 전기를 들어오게 했다. 그랬으니, 서울의 밤, 불빛은 그렇게 아름다웠다. 어쩌면, 그때 나는 고향을 떠나는 연습을 했으리라. 고향 뒷산 중턱에 앉아, 한라산을 바라보면서, 그 산 너머에 있을, 내가 모르는 세계를 상상했다. 읽을 책을 살 형편이 아니었고, 염소를 돌보면서 상상의 세계로 빠져드는 것이 즐거움이었다.

베트남에서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비교철학을 전공하고, 프랑스와 미국의 경향을 알아보면서부터 시작되었다. 내 주변의 사람들은, 갔다 와서 뭘 하겠냐는 것이었다. 나는 그냥 농사나 지을 생각이라고 했다. 어쩌면, 아예 오지 않을 생각이라고도 했다. 몇달동안 정보를 모으고, 어학공부를 하며 프랑스로 가려던 나도 마음이 편한 것만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나를 믿기로 했다. 아무도 하지 않은 것이라면, 내가 한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를 지니리라. 한번도 베트남어를 들어본 기억이 없었다. 인터넷을 아무리 뒤적거려도 베트남에 대한 정보들은 단편적이었다. 그나마 찾더라도, 남부지방의 중심지인 호찌밍시를 베트남으로 일반화시키고 있었다. 나는, 베트남의 수도인 하노이로 갈 생각이었다. 그러므로, 도움이 되는 정보는, 거의 없었다.

몇사람을 거쳐, 겨우 비자를 받고, 어학연수길에 올랐다. 그 전에 여행사를 통해서 한번 관광을 온 적이 있었다. 그때, 나의 수많은 질문을 받아주던 통역하던 한국학과 학생과는 계속 이메일로 연락을 주고 받고 있었다. 얼굴빛이 까맣고 유난스레 눈이 동그란 소녀였다.

<베트남기본>


베트남은 현재 거의 60여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주장되고 있다. 예전부터 주장되던 54개 민족은, 현재 계속되는 조사를 통해 늘어나는 추세라고 했다. 그만큼, 베트남이라는 나라는 다양한 문화를 가진 나라라는 의미도 된다. 그리고, 그만큼 어떤 정보를 일반화시켰을때 오류에 빠질 가능성도 크다는 의미이다.

하노이에 와서 생활하기 시작하면서, 나는 책을 써야겠다고 다짐했다. 나처럼, 이곳 베트남의 수도인 하노이에 대한 정보를 얻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최소한의 정보라도 주고 싶었다.

의외로 하노이에는 한국인들이 많았다. 물론, 호찌밍시처럼 많지는 않지만. 현재 호찌밍시와 하노이시의 한국인 비율은 하노이시가 10%정도라고 알려져 있다. 하노이시와 호찌밍시는 문화적으로, 역사적으로도 다르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역사적으로 남부지역은 베트남이 아니었다. 인도와 태국에 가까운 문명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북부 하노이 지역을 중심으로 한 문명은 한국과 같은 한자문화권이고, 대승불교권이며, 유교를 정치이념으로 삼았던 지역이다. 오늘날처럼 남부지방이 베트남으로 여겨지기 시작한 것은 18세기 후반에 접어 들어서이다. 그러니 어떻게 보면 최근의 일이다. 그 이전까지 베트남은 외부와 내부, 둘로 나뉘어 이야기되었었다. 내부는 오늘날의 중부지방이고, 외부는 오늘날의 북부지방이다.

하노이는 베트남의 정치중심지이다. 하지만, 사회주의국가라고 느껴지지 않을만큼 자유분방하다. 하노이안들의 특성 때문이다. 공권력이 강한 것은 사실이지만, 경찰이 호루라기를 불어도 하노이안들은 짐짓 딴청을 피우기 일쑤다. 젊은이들이라면 그런 경향이 더 강하다. 하루가 다르게 자본주의적 느낌들이 도시 곳곳에 퍼지고 있다.

하노이를 느끼면서, 나는 베트남정부가 국민들을 아주 많이 신경쓴다는 것을 느꼈다. 나중에서야 그 이유를 알게 되었지만, 그것은 사회주의보다 앞서서 베트남의 민족적 특성때문이었다.

한국인들도 빠른 편이지만, 이곳 사람들의 타문화를 받아들이는 속도는 놀랍다. 게다가, 과거의 일들을 그다지 문제 삼지도 않는다. 실제로 한국과는 불편한 관계였던 적도 있었지만, 대부분 하노이의 사람들은 신경쓰지 않는 태도이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것이다.

어쨌든 한국인에게 베트남은 낯설지 않은 나라다. 전쟁을 통한 문화의 만남은 가장 과격하게 이루어진다. 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 베트남전을 통해 한국에 베트남은 알려졌다. 그리고 그후, 통일베트남과 한국은 먼 관계를 유지했다. 이념적 대립이었다. 그러나 이념의 시대는 갔고, 오늘날 전세계는 이념보다는 자문화중심적인 방향으로 걸어 가고 있다. 유럽의 많은 나라들은 그동안 품었던 다른 문화에 대한 우월적 포용들이 더는 견딜 수 없을 정도에 이르렀다. 이러한 문화적 혼란은 미국이나, 호주, 서양의 곳곳에서 민족대립이나, 종교, 혹은 인종의 대립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마치, 우리에게 본격적인 폭발을 알리는 화산의 신호처럼 느껴진다.

나는 대안을 찾고 싶었다. 이러한 세계의 흐름들이, 궁극적으로 한국이 통일하는데 밑바탕이 되는 사상이라는 것을 나는 느꼈기 때문이다. 하나의 민족이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기초로 두 나라로 나뉘어져 있다. 이제 지구상에서 남은 유일한 이념적 분단국가이다. 베트남도 그랬다. 하지만, 사회주의로 통일했고, 지금은 자본주의적인 요소를 세계 어느 사회주의 국가보다 더 많이 도입하고 있다. 나는 프랑스보다 베트남에서 내가 찾고자 하는 것을 더 빨리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베트남은 프랑스의 식민지배하에서 독립투쟁을 거치면서 프랑스를 배웠고, 미국과의 더러운 전쟁을 겪으면서 전세계에 과연 ‘정의’가 무엇인가를 반성하게 만들었다. 그 중심에는 호찌밍이라는 인물이 있었고, 나의 관심은 그에게로 쏠렸다. 아무래도 오늘날 회자되는 비교철학, 미국의 하와이중심의 비교철학과 프랑스 소르본느대학의 비교철학보다는, 베트남의 호찌밍이라는 인물이 더 궁금해졌다. 게다가, 한국과는 비슷한 문화적 요소들이 많은 나라여서 연구할 것들도 다양했고, 거의 처녀지나 다름없이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였다. 나는, 프랑스에서 달팽이요리를 먹기보다는, 느억맘에 밥을 먹는것 부터가 우선 마음이 놓였다. 나는, 빵을 먹고서 한끼를 해결하기에는 너무나 쌀문화에 익숙해져 있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밥 먹는 나라’여서 가장 큰 걱정을 덜어 놓은 사람은 어머니였다. “먹을 걱정은 없겠구나...” 죽염을 세통 준비해왔다. 고추장과 죽염과 밥이면, 굶어 죽지는 않겠다는 생각이었다.

유학준비를 하면서, 미리 열흘간의 사전여행에도 불구하고 나는 너무나 단편적인 정보들만 알고 있다고 생각되었다. 입을거리는, 하노이의 겨울이 춥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긴팔 옷과 내피와 외피로 나눌 수 있는 겉옷을 준비했다. 양복 한벌. 우선, 어학연수 6개월이 나의 목표였다. 그동안 살아남기 위한 것들을 준비했다. 당연히 반팔티를 여러개 준비했다. 각종 약품들, 휴대용 정수기. 차와 전기 물끓이개. 무엇보다 중요한 노트북과 디지털 카메라. 충전용 건전지. 알람이 되는 조그만 라디오. 휴대용 공기청정기...

비자가 나오지 않아서 준비할 기간이 늘어나면서, 나의 준비물품들은 늘어갔다. 나의 예상대로 대부분 이곳에서 필요한 것들이었지만, 이곳에서 살 수 있는 것들도 대부분이었다.

하노이의 매연과 먼지는 심각한 수준이다. 사람들은 거의 마스크를 하고 다니지만, 오토바이의 매연은 출퇴근시간에 극에 달한다. 기침을 달고 사는 사람들이 많고, 폐와 관련된 질환도 많다. 하지만, 대부분의 남자들은 담배를 마구 피운다. 심지어 결혼식에서 신랑신부가 어른에게 권하는 것중에 중요한 것이 바로 담배다. 담배는, 조상에게도 권해진다. 아직 담배의 해로움에 대한 인식보다는, 어른이 피우는 것이 담배라는 인식이 깊은 것이다. 그래서 거의 금연구역은 없다. 어떤 사람은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피워댄다. 점차 금연구역이 생기고 있는 것을 느끼지만, 보통 사람들은 무시하고 그냥 피워댄다.

베트남은, 북부와 중부, 남부로 나뉘어 보아야 비교적 자세히 느낄 수 있다. 날씨도 워낙 다르고, 그런만큼 생활모습도 다르기 때문이다.

큰 배는 바다에서는 좋을지 모르지만, 조그만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데는 조그만 배가 좋다. 나는, 그런 심정으로 베트남이라는 큰 배가 아닌, 하노이라는 비교적 작은 배로 곳곳을 둘러보려고 하는 것이다. 그런 나의 태도 뒤에는, 베트남의 문화와 만나고 대화하고 싶은 욕망이 들어 있다. 나는 사업가도 아니며, 여행객도 아니다. 나는 베트남의 민족적 뒤안길에 놓여 있는, 베트남의 고유한 사상과 호찌밍이 펼쳐낸 사상들을 내가 공부한 한국의 사유들과 비교해서 연구하고자 하는 철학도이다. 그러므로 나의 시각은, 철학적 객관성을 기초로 하고 있겠지만, 그만큼 주관적 입장도 고려된다는 것을 밝힌다. 단순한 여행서적도 아니면서, 문화를 소개하는 글도 아니다. 그렇다고, 문학적 향수를 불러 일으키거나, 베트남전의 골목길을 찾아 들어가는 것도 아니다. 나는, 그 이전의 것들에 관심을 가진다. 그 이전, 베트남 사람들도 스스로 잘 알지 못하는, 그런 것들을 찾고 싶은 것이다.

그런 무모한 여정의 한 켠에서, 내가 아는 것들을 공유해야 한다는 일종의 사명감 때문에 이 책을 쓰는 것이다. 더불어, 혹시라도 한국인으로서의 내 시각이 편협될 수 있음을 우려하여, 이곳의 대학원생 소녀와 더불어 이 책을 쓰는 것이다. 그러면, 다른 여행서적이나 학문적 비교문화의 서적들보다 더 생생한 현장감이 느껴질까 해서다. 그러므로 이 책을 통해 ‘또 다른 편견’에 사로잡히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베트남 사람들은...” 혹은 “한국 사람들은...”이라는 일반화의 오류에서 이제는 벗어나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베트남’이라고 했을때 이 글 안에서는 철저히 하노이를 중심으로 한 북부지역의 일반적 사람들을 중심으로 제한한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필자, 기자가 참여한 <필진네트워크>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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