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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조선일보여! ‘희망의 땅 코리아’가 아닙니다”

등록 2006-05-01 15:12수정 2006-05-01 16:42

우리 안에 스며든 오리엔탈리즘은 한국-베트남 부부의 진정한 행복을 방해한다. 4월25일 조선일보사 앞에서 벌어진 베트남 유학생들의 기자회견.   윤운식 기자
우리 안에 스며든 오리엔탈리즘은 한국-베트남 부부의 진정한 행복을 방해한다. 4월25일 조선일보사 앞에서 벌어진 베트남 유학생들의 기자회견. 윤운식 기자
베트남 유학생이 <조선일보>에 보내는 항의 편지

“한국 생활 적응 못해 자살까지 기도하는 현실을…”

난생처음 신문사에 편지를 씁니다. 그러고 보니 베트남에서도 신문에 그 흔한 독자투고조차 해본 적이 없네요. 그런 제가 이렇게 펜을 들려니 가슴도 떨려오고 어떻게 말문을 열어야 할지 당혹스럽지만, 한국을 사랑하고, 한국을 배우려고 했던 베트남 청년으로서 답답한 심정을 마음속에 불만으로만 쌓아두거나 베트남 사람끼리 모여서 한국 사람들을 비난하는 것으로 푸는 것보다는 이렇게 편지로 쓰는 게 나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참고로 저는 호치민대 한국학과를 졸업했고, 한국에서 1년간 유학을 하기도 했습니다.

한국에는 수많은 일간지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조선일보를 가장 많이 보더군요. 제가 아는 몇몇 한국 친구들은 조선일보를 욕하면서도 아침이면 빠짐없이 조선일보를 읽는 게 베트남 사람인 저로서는 신기했습니다. 저는 베트남에 돌아와서도 한국어 공부를 위해 인터넷을 통해 자주 조선일보를 읽습니다. 그러다가 2006년 4월 21일자 사회면에 실린 채승우 기자의 <베트남 처녀들, 희망의 땅 코리아로>라는 제목의 기사를 접하게 되었고, 조선일보의 동영상 뉴스도 보게 되었지요.

처음에는 채승우 기자의 문체가 너무도 덤덤하고 편안해서 아무 생각 없이 읽었습니다. 마치 어느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을 잔잔히 보여주는 듯했거든요. 그런데 기사를 다 읽고 나자 저도 모르게 가슴이 답답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 기사를 왜 썼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고, 거짓말을 쓴 건 아니지만, 도대체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 거지? 점점 의구심이 깊어졌습니다. 저는 꼼꼼히 이 기사를 다시 읽기 시작했습니다.


아, 베트남 여성들은―채승우 기자는 베트남 처녀라고 표현하셨더군요―희망의 땅, 한국에 가려고 아침부터 제단에 향불을 피우고 좋은 남자를 만나게 해달라고 간절히 비는데, 한국 남성들은 “아휴, 미안해서 어떻게 골라요” 하면서 면접까지 포기하는구나…… 베트남 여성들은 가슴에 번호표를 달고, 한국식 예절에 따라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무릎을 꿇고 앉아서 한국 남자들에게 선택되기만을 간절히 바라면서 초조해하는구나…… 동영상에 나온 기자수첩을 보니까, 채승우 기자의 말대로, 한국결혼중개업체인 시클로 회사는 베트남 신부뿐만 아니라 한국 신랑까지 에이즈 검사를 받게 하는 공정하고 세심한, 참 좋은 회사구나……

그런데 기사와 함께 실린 사진과 동영상을 보니, ‘가난을 탈출하려’ 한국에 목을 매는 베트남 여성들의 얼굴은 보면 누구인지 알 수 있게 또렷이 실려 있는데, 그들을 ‘가난에서 구원하는’ 착한 한국 남성들의 얼굴은 최대한 가려주려고 애쓰는 조선일보의 그 겸손한 노력이 안쓰럽기까지 하더군요. 제가 한국에 있었을 때 보았던 광고들이 떠올랐습니다. ‘준비된 베트남 신부, 마음만 먹으면 가능’, ‘노총각, 재혼하실 분, 자식 때문에 재혼 못 하시는 분, 장애인 환영’, 심지어 길거리에 나붙은 플래카드에는 ‘베트남, 절대 도망가지 않습니다’, ‘6개월쯤 살아보다 마음에 안 들면 갈아치워도 됩니다’, ‘집을 잘 봅니다’ 등등의 문구까지 있었습니다. 시클로를 비롯한 한국결혼중개업체들의 홍보 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우리 베트남 여성들의 사진과 인적사항까지 친절하게 올려놓고 여러 가지 장점을 소개하고 있더군요. ‘필리핀, 중국 여성과는 달리 베트남 여성은 체취가 좋다’, ‘몸매가 세계에서 최고다’, 베트남 남자들은 게을러서 농촌에 가보면 여자들만 일을 한다, 베트남 여성들은 고생을 많이 해서 고생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한국 농촌에 가서 일하는 것도 겁내지 않는다’……

물론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잘 살고 있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제 친구 응언의 얘기는 이렇게 이뤄진 결혼이 어떤 비극적인 결과를 낳고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제가 한국에서 유학하고 있을 때 어느 여성센터로부터 통역을 도와달라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곳에서 만난 친구가 응웬 티 낌 응언(Nguyen Thi Kim Ngan, 18세)이었습니다. 고향이 메콩인 그는 한국에 시집가면 자신의 병도 고칠 수 있고, 집안도 도와줄 수 있다는 말만 믿고 중매 아줌마를 따라 호치민시에 왔다고 합니다. 그의 부모님은 딸을 한국 남성에게 시집보내는 대가로 단지 300불을 받았을 뿐이지만, 응언에게는 한국에 가서 나 하나 희생하면 고생하는 우리 부모와 가족을 도울 수 있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감도 있었다고 하더군요.

그러나 응언에게 한국은 채승우 기자의 말처럼 ‘희망의 땅’이 아니었습니다. 말도 통하지 않았고, 음식도 입에 맞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남편이 무서웠다고 합니다. 한국에서 사는 한달 동안, 낮에는 남편과 함께 빵집에서 일을 하고, 밤에는 창고에서 지내야 했답니다. 남편이 창고에 들어오는 밤이면 무서워 이리저리 피해 다녀야 했습니다. 목욕도 하지 못하고, 몸이 아파도 병원에 갈 수도 없고, 부모님께 전화도 할 수 없는 절망의 나날들이었다고 하더군요. 머릿속에는 오로지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뿐이었고, 도망을 가려다 남편에게 들킨 뒤로는 남편의 성난 얼굴이 너무도 무서워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답니다.

한국 생활에 전혀 적응하지 못하는데다 자살기도까지 하자 남편도 응언과 이혼하기로 했던 모양입니다. 남편은 응언에게 결혼반지, 심지어는 먹던 약까지 다 놓고 나가라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한국말도 할 줄 모르는 응언을 어느 버스 정류장에 내려놓고 사라졌습니다. 응언은 근처 시장에서 아무 것도 먹지 못한 채 비를 맞으며 혼자 서 있었습니다. 그 다음날 응언을 발견한 어떤 아저씨가 응언을 그 여성센터에 데려다 주었다고 하더군요. 결국 시민단체인 <나와우리>의 도움을 받아 비행기 표를 마련했고, 마침 유학생활을 마치고 고국에 돌아오는 길에 제가 응언을 데리고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한국에 가서 가족에게 도움이 되기는커녕 이혼녀가 되어서 돌아온 응언은 아버지를 뵐 면목이 없다고 했습니다. 주저하는 응언의 손을 이끌고 그의 아버지를 만났습니다. 소식을 듣고 고향인 메콩에서 호찌민으로 올라온 응언의 아버지는 다만 눈물을 쏟으며, 응언을 다시 베트남으로 돌려보내준 여성센터와 시민단체 <나와 우리>에 고맙다는 말만 계속 반복할 뿐이었습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한국에 있을 때 제 주변에는 조선일보를 비난하는 친구들이 많았습니다. 대체로 ‘강자에게는 약하고 약자에게는 강하다’는 내용이었지만 솔직히 저는 그 이유를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알 것만 같습니다. 조선일보의 기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가난 탈출’을 국제결혼의 유일한 동기로 강조함으로써 베트남 여성을‘돈을 목적으로 결혼하는 사람’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기사 내용과 사진 처리 방법에서 알 수 있듯이 조선일보는 베트남 여성들의 인권을 무시되어도 좋은 것으로 취급하고 있습니다. 우리 베트남 사람들은 분노하고 있습니다. 베트남 여성을 무시하는 것은 곧 베트남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베트남 사람들은 베트남이 한국의 언론에 의해 함부로 무시당해도 좋은 나라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더구나 요즘은 인터넷 시대입니다. 베트남에서도 조선일보에 어떤 기사가 났는지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베트남을 약한 나라, 만만한 나라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이런 기사를 실을 수가 있겠습니까. 다시 강조하지만 베트남 사람들은 분노하고 있습니다. 베트남 전쟁 이후 어렵사리 다시 쌓아 온 두 나라 사이의 우호관계를 위해서라도 이에 대해서 어떤 식이든 대답을 해 줘야 하는 것이 조선일보의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답장을 기다리며 이만 줄입니다.

레 탄 동(Le Thanh Dong, 베트남)


“‘한국에 시집왔느냐’는 말 불쾌했다”
“불쾌한 기사를 한꺼번에 찢어버리고 싶다”

나는 베트남 여자다. 오래전에 한국에 와서 이 나라의 문화, 풍습 그리고 사람들을 사랑하게 된 외국인 중 한명이다.

언젠가부터 나는 주변에서 “한국 사람에게 시집왔냐”는 질문을 받게 되었고, 이 때문에 불쾌함을 느낀 적이 많다. 그래서 택시를 타거나 길을 걸을 때 한국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게 된다. 내게 질문을 하는 사람들 십중팔구는 내가, 아니 나와 같은 베트남 여성들이 전부다 ‘한국에 시집왔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싫다. 정말로 싫다.

그러나 (나에게 있어서는) 불행히도 한국에 시집오는 베트남 신부들은 나날이 많아지고 있다. 베트남에서 방영하는 한국 방송 프로그램들이 많아지면서 베트남 신부 수도 급증하고 있다. 이것은 베트남에서 한창 뜨거운 한류 열풍, 그리고 양국의 활발한 외교 관계 때문이기도 하다. 어쨌든 주변에서 점점 더 많이 베트남 신부 이야기를 듣게 된다. 처음에는 같은 나라 여성으로서 그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이야기 중에는 좋은 것도 있고 나쁜 것도 종종 있었다.

그러던 중 며칠 전 아침, 난 이메일을 하나 받았다. 평소 나를 아껴주시는 한국 분이 보내신 건데, 그 내용은 조선일보에 난 <베트남 처녀들 “희망의 땅, 코리아로”>라는 제목의 기사에 대한 것이었다. 기사 때문에 내가 틀림없이 기분이 나쁠 것이라 생각했던 그분은 이메일에 이렇게 쓰셨다. “혹시나 부끄러워할 것 같아 망설이다가 보낸다. 그러나 꼭 그렇지만은 않단다. 20~30년 전만 하더라도 우리 한국 여자들은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너도 나도 미국행을 부러워했었지. ‘가난은 창피한 것이 아니라 극복하는 것’이라는 말이 있단다.”

참 고마운 말씀이었다. 어쨌든 난 이 메일을 보고 인터넷에서 기사를 찾아 읽었다. 그분의 메일이 아니었다면 이런 기사가 있는지도 몰랐을 것이다. 기사를 읽기 시작하자 글자 하나하나가 눈에 들어오면서 ‘이게 뭐야 ’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기사 제목부터가 꼭 광고 같았다. ‘베트남 처녀와 결혼합시다’라고 적힌, 흔하디흔한 플래카드를 봤을 때와 마찬가지로 너무나 기분이 상했다. 정말로 신문에 실린, 그것도 조선일보에 실린 기사가 맞나 의심될 정도로 불쾌했다. 그러나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친한 선후배들이 하나둘씩 전화를 걸어 왔다. “너도 그거 봤냐”고 물어와 “응, 나도 봤다. 기분 나빠서 더 이상 이야기 꺼내기도 싫다”고 대꾸했다. 그런데 친구들은 “종이 신문으로 확인해 봐야 된다”고 했다. 신문에 실린 사진을 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곧 나에게 스캐너로 만든 파일이 왔다. 기사와 함께 커다란 사진이 실려 있었고, 거기엔 정말로 ‘웃기는’ 설명이 달려 있었다. ‘한국 왕자님들 우리를 데려가 주오’…… 기사의 내용은 정말 심각했다. ‘한국에서 구독률이 가장 높은 조선일보의 기사도 다시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누구나 사정을 뻔히 아는, 국제결혼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한국 남자들을 왕자님이라고 호칭하고 있는 것도 기막혔다. 또한 ‘반지를 교환하고 축배를 드는 간단한 의식의 베트남 결혼식’ 같은 표현을 보고는 한 나라의 문화에 대해 쓸 때는 신중하게 공부한 다음에 써야 한다는 충고를 하고 싶어졌다. 우리나라의 결혼 문화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물론 국제결혼으로 큰 이익을 얻는 한국측의 비양심적 중개업체와 베트남측의 뚜쟁이들이 중간에 있기 때문에 결혼이 그런 식으로 이뤄지는 것인데, 기자가 이렇게 아무렇게나 쉽게 쓰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결혼 의식은 복잡하고 의미 깊은 여러 가지 행사들로 이뤄진다. 한국의 결혼 문화와 비교해보면 상대적으로 더 복잡하다. 이것이 좋고 나쁘고를 떠나 베트남의 문화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그것을 모르고 쓰니 왜곡될 수밖에 없다. 기사를 쓰려거든 제발 공부 좀 하고 나서 쓰라고 말해주고 싶다.

신문에 실린 커다란 사진, 그리고 불쾌한 기사를 한꺼번에 찢어버리고 싶다. 인권침해라고 해야 할까, 여성을 낮게 본다고 할까, 기사 내용이 온통 거짓이라고 할까…… 한국말로 충분히 표현할 수는 없지만 할 말은 하고 싶다.

한국에 시집온 베트남 신부의 수는 통계로 나와 있지만, 이들이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지, 어떤 시련 속에 던져져 있는지 좀 더 자세히, 보다 객관적으로 보도해 주었으면 한다. 언론의 역할을 다시 한번 생각하며 기사를 썼으면 좋겠다.

내 고향도 큰 도시에서 몇 시간 가야 하는 가난한 농촌이다. 얼마 전 고향 사람이 나에게 부탁을 하나 해왔는데, 어떻게 도와줘야 할지를 몰라 마음의 짐이 되어 있다. 마을의 아가씨 한 명이 한국으로 시집을 가고 나서 그 어머니가 매일 울며 지낸다고 한다. 고작 백만 동(한국 돈으로 10만원도 안 되는 금액)을 받고 딸을 한국으로 보냈는데, 결혼해 비행기를 타고 떠난 지 거의 한 달이 지났지만 아무런 소식을 듣지 못했다고 한다. 딸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몰라 애태우는 부모의 심정을 조금이라도 헤아린다면 그 한국인 사위는 외국인 장인, 장모에게 전화 한 통이라도 해줄 수 있을 것이다. 그 딸도 처음에는 가난에서 벗어난다는 꿈을 가지고 한국으로 시집간다는 결정을 했을 것이다.

진실한 생각과 올바른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언론의 역할이 아니냐는 질문을 조선일보의 편집 책임자와 기자들에게 전하고 싶다.

Sen(센, 서울대 사범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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