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귀질환을 앓고 있는 은우(가명·2)는 지난해 4월부터 대구의 한 양육시설에서 사회복지사 선생님들의 보살핌을 받고 있다. 초록우산 제공
빛이 보이지 않아도 길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있다. 통장엔 30만원뿐이지만 딸을 보며 희망을 그리는 엄마, 암투병하는 가족에 흙집은 스러져가도 씩씩한 청소년, 폭력 아빠로부터 엄마를 지키겠다는 태권도 소녀까지….
2023년 한겨레 나눔꽃 캠페인(2~12월)은 전국 곳곳의 도움이 절실한 열 가정을 만났다. 실낱 같은 희망도 놓치지 않고 용기를 낸 이들이었다. 2009년부터 15년째 진행해오는 사회공헌 캠페인인 ‘나눔꽃’은 한겨레와 구호·시민 단체들이 함께 성별·연령·국적을 가리지 않고 도움이 꼭 필요한 가정들의 이야기를 전달하고, 많은 시민들이 건네는 도움의 손길을 이어줬다. 올해는 굿네이버스·대한적십자사·밀알복지재단·월드비전·초록우산이 캠페인에 함께했다.
이들 가정에 돌아간 후원금은 돈 이상으로 이들에게 꿈과 더 큰 용기를 줬다. 나눔꽃 캠페인 2월(초록우산)에 소개된 은우(가명·2)를 돌보는 선생님은 ‘미소 천사’ 은우가 버텨낼 수 있는 도움을 주신 분들에 대한 감사함을 전했다.
27개월인 은우는 세상에 나오자마자 엄마 품이 아닌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지냈다. 작은 몸에 매달린 병이 너무 많았다. 태어나면서부터 매독, 심방중격에 난 구멍으로 폐순환 이상을 겪는 심방중격결손, 뇌출혈로 인한 뇌 수두증을 앓았다.
각종 검사 결과, 은우는 몸에서 꾸준히 나트륨과 수분이 빠져나가는 ‘거짓저알도스테론증’과 성장발달지연 희귀질환인 ‘램 쉐퍼 증후군’을 진단받았다. 램 쉐퍼 증후군은 전 세계에서 25명, 국내에서는 1명이 겪고 있는 희귀질환이다. 이후 지적장애인 엄마에게 버려진 은우는 입양 전 맡겨졌던 위탁가정에서도 병원비·양육 부담 등을 이유로 머물지 못했다. 입양이 좌절된 은우는 지난해 4월부터 대구의 한 양육시설에서 사회복지사 선생님들의 보살핌을 받고 있다.
시설에 있는 아이들만 70명 가까운데, 아픈 은우를 키우는 것은 쉽지 않았다. 은우는 방긋 웃는 미소로 어느새 엄마들의 사랑을 독차지했지만, 후원금이 아니면 수백만원에 달하는 치료 횟수를 줄여야할 수밖에 없었다. 병원비만 한달에 60만원이고, 1박2일 입원 검사를 받으면 150만원은 들기 때문이다. 자주 넘어지고, 발달이 또래보다 느린 은우는 언어·물리·작업치료 및 전기자극치료 등 받아야할 치료의 가짓수도 다양했다.
은우 사연이 보도된 후 1151명의 도움으로 후원금 1681만4100원이 모였다. 덕분에 은우는 끊기지 않고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주 2회 언어치료를 받는 은우가 요즘 ‘엄마들’에게 준 놀라움은 은우가 ‘삼음절’로 말한다는 것이다. 시설 간호사 유아무개(45)씨는 “2주 전부터 은우가 ‘주세요’를 말하는 데 성공했다”며 “원래 손가락으로 가리키거나 ‘주!’를 말하는 정도가 전부였다”며 감격을 전했다.
외출하며 걷는 은우를 보는 것도 엄마들의 기쁨이다. 은우가 재활치료를 주 3회 집중적으로 받은 덕분이다. 근육 힘이 약해 곧잘 넘어지던 은우는 신발을 신고 걸을 수 있게 됐다. 유 간호사는 “신발에 깔창을 깔고 걷게된 지 4개월 남짓 됐다”며 “아직 무게중심이 앞으로 많이 쏠리고 넘어질 때도 많지만, 성과가 좋은 편”이라고 말하며 웃었다.
한 걸음 한 걸음 나아지는 은우를 보면서 엄마들은 희망을 품는다. 열과 콧물 등 감기도 잘 견뎌내는 은우를 보면서다. 엄마들은 또래들과 달리 나트륨 보충을 위해 일부러 ‘소금 약’을 따로 먹어야 하는 은우가 별다른 걱정 없이 맛있는 음식을 먹는 날을 기다린다. 유 간호사는 “3개월간 나트륨을 따로 먹지 않고 음식 간으로 유지하기도 했는데, 검사에서 수치가 불안정한 면이 있어 다시 먹고 있다”며 “내년 1월 진료 경과를 또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전했다.
치료를 받고 돌아오면 녹초가 되는 은우를 보면 안타깝지만, 엄마들은 지금처럼 밝은 모습으로 수많은 치료와 검사를 버텨주길 바랄 뿐이다. 치료 시기를 놓치지 않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잘 걷고, 또박또박 의사 표현을 하게 되면 은우가 “조금이라도 사회에서 자기 몫을 하는 그런 아이로 밝게 자라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박수지 기자
suj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