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2일 열린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 상임위원회. 전원위원회든 상임위원회든 요즘 인권위 회의는 막말과 고성의 난장이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인권위 공무원은 정말 극한직업이다. 비참한 마음이 든다.”(남규선 상임위원)
“올해를 넘기면 안 된다는 절박한 마음으로 직원들이 결단 내린 거다. 위원들은 뭘 했나 생각하니 마음이 편치 않다.”(김수정 위원)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 남규선 상임위원과 김수정 위원은 지난 1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연가원을 내고 장기휴가에 들어간 침해조사국장과 조사총괄과장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개점휴업 상태였던 인권위 침해구제제1위원회(침해구제1소위)가 오는 7일 넉 달만에 재개된다. 해당 국·과장의 인사 조처를 요구하며 소위를 열지 않아 온 김용원 상임위원은 이들이 장기휴가로 업무에 관여하지 않게 되자 본인 판단이 관철됐다고 보고 소위를 소집했다. 인권위 내부에서는 “상임위원이 억지와 몽니를 부린 일인데, 왜 아무 잘못 없는 국장과 과장이 희생해야 하느냐”는 반응이 나온다.
이들이 인사조처 요구를 받게 된 계기는 지난 8월1일 소위였다. 정의기억연대의 수요집회 보호요청 진정 건에 대해 3인 위원 간 합의가 되지 않자 소위 위원장인 김용원 상임위원이 ‘기각 선언’을 했는데, 해당 국·과장이 후속조치를 하지 않은 데 이어 기각 결정이 법적 근거가 없다는 취지로 해명자료를 냈다는 이유다. 인권위법상 소위 기각 결정은 3인 전원 찬성이 있어야 하므로 이들은 법에 맞게 처리한 셈이었다. 김 상임위원은 이후 소위에서 1명만 반대해도 해당 진정이 자동기각되도록 법 해석을 하자는 의안을 여당 추천 위원 5명과 함께 발의한 상태다.
침해구제1소위 위원으로서 “8월1일 기각 결정은 정당한 의결절차가 아니었다”고 비판했던 김수정 위원은 “직원분들이 올해 내 사건들을 처리 안 하면 내년으로 밀려 진정인들이 피해 보게 되니까 묘안을 낸 것”이라면서 “이분들이 잘못을 인정한 것처럼 모는 것은 부당하다”고 말했다. 오는 7일 열릴 소위에 관해서는 “밀린 317건을 심의·의결한다던데, 봐야 할 보고서가 2000쪽 넘더라. 이러면 졸속으로 처리된다”고 우려했다.
여당 추천 위원이 다수를 점한 뒤부터 험악해진 회의 분위기도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지난달 30일 열린 상임위원회는 2시간 반 넘게 막말과 고성의 난장이었다. 김용원·이충상 상임위원은 송두환 위원장에 대한 비판 수위를 높이며 “계속 이럴 거면 사퇴를 요구하겠다”고 말했다. 특히 소위원회 의결방식에 관해 행정법무담당관이 위원장 검토 지시에 따라 작성한 보고서를 놓고 “사무처 사유화”라며 송 위원장과 박진 사무총장을 거세게 몰아붙였다. 박진 사무총장이 의견을 개진하면 “상임위원이 얘기하는데 왜 나서냐”며 퇴장을 요구하는 풍경도 반복됐다.
인권위에서 20년 이상 재직해온 한 직원은 상임위가 끝난 뒤 “요즘 회의만 들어가면 귀를 막고 싶다. 막말을 들을 때마다 정신이 혼미해진다”고 말했다고 한다. 2001년 인권위 출범 때부터 직원으로 일했던 남규선 상임위원은 “인권위 공무원으로서 자부심이 컸던 분들에게 요즘 큰 상처를 주고 있어 안타깝다”고 말하다 끝내 울먹였다.
고경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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