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31일 진실화해위 전체위원회에서 진실규명 보류조처가 된 경북 영천 국민보도연맹사건 장아무개씨의 유가족 장안수씨가 보여준 부산지방철도청 6급 공무원 신분증. 발행일이 1977년 7월3일로 돼 있다. 장씨는 아버지가 정말 살인·방화·약탈을 했다면 까다로운 신원조회를 통과해 철도청을 들어갈 수 있었겠냐고 말했다. 장안수씨 제공
“70년대에 철도청에서 9년간 근무했다. 만일 아버지가 6·25 사변때 살인·방화·약탈을 했다면 신원기록에 걸려 공무원이 될 수 없었을 거다.”
경북 영천에 사는 장안수(79)씨는 본인의 철도청 직원 신분증을 보여주며 말했다. 장씨는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에 1950년 국민보도연맹 사건으로 희생된 아버지 장아무개씨의 진실규명을 신청했으나 최근 보류 조처됐다는 말을 전해들었다. 부역세력에 가담한 혐의가 있다는 이유였다. 그는 “아버지 혐의를 적은 경찰 기록은 그 이후에 만들어졌다는데, 이것만 봐도 경찰 기록은 불분명한 출처를 근거로 임의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진실화해위원 2명이 영천 국민보도연맹 및 예비검속사건(영천 사건) 희생자 유족들과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한국전쟁 사건을 다루는 진실화해위 1소위 소속 허상수 위원과 2소위 위원장인 이상훈 상임위원은 27일 한겨레에 “경북 영천시 야사동 유족회 사무실을 25일 방문해 영천유족회원 10명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고 밝혔다. 이날 자리에는 이번에 보류 조처된 영천 화산면 대안마을 희생자들의 유족들이 나왔다고 한다.
25일 경북 영천시 야사동 영천유족회 사무실에서 진행된 진실화해위원 2명과 한국전쟁기 국민보도연맹사건 유가족들과의 면담. 뒷모습이 김만덕 영천유족회장, 오른쪽부터 이상훈 상임위원과 허상수 위원, 유족들. 이상훈 상임위원 제공
이번 방문은 지난 10월31일 진실화해위 전체위원회에서 영천 국민보도연맹 및 예비검속사건 희생자 21명 중 6명이 보류 결정된 이후 진행 경과에 대해 궁금해하는 유족들을 대표해 영천유족회(회장 김만덕)이 위원들을 초대해 이뤄졌다.
이 자리에서 두 위원은 “논의 중이어서 보류 결정된 6명을 말씀드릴 수 없지만, 전체위원회 위원으로서 유족들의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려고 오게 되었다”고 말했다. 영천 사건은 한국전쟁 발발 직후 경북 영천의 보도연맹원·예비검속자 600여명이 국민보도연맹원 또는 전선 접경지역 거주민으로 인민군에게 동조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군경에게 살해된 사건이다.
진실화해위 1소위에서 위원장인 이옥남 상임위원과 김웅기 위원은 영천 사건 희생자 6명에 대해 “신청인·참고인 진술과 공적 기록이 일치하지 않고 희생 경위를 확인할 수 있는 근거가 부족하므로 진실규명 불능으로 판단된다”는 의견으로 10월31일 전체위에 안건을 올렸고, 표결 끝에 이들을 진실규명 보류조처했다.
영천경찰서가 각각 1979년과 1981년 작성한 대공인적위해자조사표와 신원기록편람에 기록된 “10·1사건에 가담하고 살인·방화·약탈 등 좌익활동을 하다가 처형됐다”는 내용을 근거로 삼았지만, 사건 30년 뒤 구체성 없이 작성돼 신빙성이 없다는 의심을 받아왔다.
이날 유가족들은 경찰기록을 믿을 수 없고 진실화해위의 보류 조처를 이해할 수 없다며 이렇게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고 한다.
“신원기록 편람은 사건 발생 30년이 지나서 경찰이 임의로 입력한 것인데, 국가가 이제 와서 빨갱이래서 죽였다는 이야기를 하는것은 말이 안된다.”
“진화위가 유족을 위로해야지, 1기 조사와 반대로 조사하는 것은 진실규명이 아니라 진실을 되돌리는 것이다. 6가구를 보류한 것은 진화위의 직무유기다.”
“아버지 없이 산 것도 슬픈데 지금 와서 아버지가 살인범, 방화범, 약탈범이라고 하는 것이 말이 되냐. 진짜로 아버지가 그랬다면 재판기록을 내놓아라.”
“이제는 국가가 국민을 보호해 준다고 해서 신청했는데, 지금은 진실규명을 신청한 것을 후회한다. 생각만 하면 머리가 아프다.”
“만일 아버지가 살인·방화·약탈을 했다면 동네에서 얼굴을 들고 다니지 못한다. 동네 주민들도 말이 안된다고 말한다.”
철도청 공무원으로 일했다는 장안수씨는 26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도 “공무원이 되려면 사돈에 팔촌까지 뒤지는 등 신원조회가 까다로울 때다. 아버지가 불 놓고(방화) 그랬다면 내가 어떻게 공무원이 될 수 있었겠냐”라고 말했다. 이번 면담에 유족 자격으로 참여한 권오우(73)씨는 “보탬도 뺌도 없이 사실대로 말했다. 진실화해위에서 우리들 이야기를 듣겠다고 직접 방문해주어 의미있는 시간을 가졌다”고 말했다.
25일 진실화해위원 2명을 만난 권성관씨가 1950년 당시 마을 상황에 대해 증언을 하고 있다. 허상수 위원 제공
25일 진실화해위원 2명을 만난 장도수씨가 1950년 당시 마을 상황에 대해 증언을 하고 있다. 허상수 위원 제공
두 위원은 1시간반 가량 유족들과의 면담을 마치고 진실화해위 조사 때 참고인 진술을 했다는 증언자들도 따로 만났다. 영천시 화산면 대안마을에 사는 권성관(91)씨와 김천에 사는 장도수(84)씨였다. 형 2명이 한국전쟁에 참전·사망해 국가유공자라는 권씨는 이번에 보류조처된 희생자 조아무개씨와 권아무개씨의 혐의와 관련 “두 사람은 빨갱이 활동을 하지 않았다. 진짜 빨갱이 활동을 한 사람은 죽거나 북한으로 넘어 갔다”고 말했다. 장도수씨는 역시 보류조처된 희생자 장씨와 관련 “동네 사람 대부분 농사 짓는 사람이었고 교육도 제대로 못 받았다. 그 분도 좌익활동할 여지가 없었다”는 취지로 말했다.
이상훈 상임위원은 영천 방문 뒤 한겨레에 “글이 아니라 현장에 찾아가서 실제로 뵙고 이야기를 들으니 사실관계를 보다 분명히 파악할 수 있었다. 유족들을 두 번 죽이는 일이 없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허상수 위원은 “ 이 분들에게 들려씌워진 새빨간 딱지의 굴레를 이번 기회에 벗겨주지 않으면 앞으로 이런 류의 방해와 혼선이 반복되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고경태 기자
k21@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