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최고령 수험생 김정자 할머니가 16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울여자고등학교에서 일성여중고 학우들의 응원을 받으며 시험장으로 입실하고 있다. 연합뉴스
“나는 이름도 모르고, 학교 문턱도 모르고 8남매 맏딸로 태어나서 너무너무 힘들게 살던 참에 6.25 전쟁이 터져서…” (2019년 10월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에서)
4년 전 티브이엔(tvN)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럭(유퀴즈)’에 출연해 큰 감동을 전한 82살 만학도 김정자 할머니가 16일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에 도전했다.
할머니는 수능 시험일인 이날 오전 서울시 마포구 서울여고 앞에서 ‘후배’ 10여명의 응원을 받으며 시험장에 입장했다. 이 후배들은 김정자 할머니가 졸업한 일성여중과 일성여고 재학생들로, 저마다 ‘사랑한다∼ 응원한다∼’ ‘붙어라 철썩’ ‘등록금 준비해’ 등의 문구가 적힌 손팻말을 들고 할머니를 배웅했다. 일성여중과 일성여고는 정규 교육 기회를 놓친 40∼80대 만학도를 위한 학력 인정 평생학교다.
교문에 들어가기 앞서 할머니는 취재진에게 “젊은 학생들 각자가 3년 동안 배운 실력을 보여줬으면 좋겠다”며 “학생 모두 자기가 원하는 대학에 입학하고 우리나라를 앞으로 짊어지고 나갈 새 일꾼이 되면 좋겠다”고 했다.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최고령 수험생 김정자 할머니가 16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울여자고등학교에서 일성여중고 학우들의 응원을 받으며 시험장으로 입실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는 지난 2019년 10월 ‘유퀴즈’에 출연해 늦깎이 공부를 시작하게 된 사연을 털어놨다. 할머니는 “예전에 외대 앞에서 장사를 하는데 공부를 참 열심히 하는 어떤 학생을 봤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열심히 공부를 하느냐?’고 물으니 자기 어머니가 제주도에서 해녀로 일하면서 아버지 없이 혼자 자기를 키웠는데 외무고시 합격을 해서 어머니 공부를 시켜주려 한다고 하더라”며 “그래서 내가 한참 있다가 ‘학생, 나도 내 이름을 몰라’ 그랬더니 학생이 노트를 찢어서 기역, 니은을 써주고 ‘여기에 아주머니 이름이 있다’며 이름 쓰는 법을 알려주더라”고 말했다.
어렵게 피아노를 가르쳐 대학에 보낸 딸이 미국으로 떠나던 날 공항에서의 가슴 아픈 경험도 할머니가 공부를 하기로 마음 먹게 된 계기다. 할머니는 “딸이 미국 갈 때 공항에서 딸을 붙잡고 엄청 울었다”며 “내가 이리 무식한 엄마인데, 모두 영어로 써져 있으니, 네가 들어가는 출입구도 모른다. 한글도 모르는데 영어는 내가 어떻게 알겠니”라고 말했다.
지난 2019년10월 방송된 ‘유퀴즈’에 출연한 김정자 할머니의 모습. 유튜브 갈무리
할머니는 이후 우연히 길에서 주운 양원주부학교 광고용 부채를 보고 2018년 3월 이 학교에 입학에 공부를 시작하게 됐다. 양원주부학교는 1982년 문을 연 성인 문해 학교다. 할머니는 “한글 배우고 수업받는 게 너무 좋다”며 “내 인생이 바뀌어버렸다. 모든 것이 다 즐겁고 이제는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내 인생에 공부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후 결석 한 번 없이 학업에 매진해 중고등학교 과정 교육을 마친 할머니는 이날 수능에까지 도전하게 됐다. 할머니의 목표는 미국에 사는 손주들과 영어로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남지현 기자
southj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