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진 서울 서초구 한 초등학교 교사의 교실 책상에 국화꽃이 놓여 있다.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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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 초등학교에서 숨진 채 발견된 교사가 학부모한테 괴롭힘을 당한 것은 아닌지 조사한 경찰이 넉달 만에 사건을 무혐의 종결하기로 했다. 조사 결과, 협박 등에 이르는 범죄 혐의점이 없다고 본 것이다. 해당 교사의 사망 동기와 무관하게, 이 사건은 일선 교사들의 교권 침해 현실을 드러내면서 교권보호 관련 법을 국회에서 통과시키는 등 교권 확립 여론을 확산하는 도화선이 됐다.
송원영 서초경찰서장은 14일 오전 서초경찰서에서 브리핑을 열고 “사망 동기로 제기된 학부모의 지속적 괴롭힘 등이 있는지 면밀히 조사했지만, 동료 교사와 학부모 조사 등에서 관련 정황 및 범죄 행위로 볼 만한 내용을 발견하기 어려웠다”며 “교사 사망 사건을 범죄 혐의점이 없어 입건 전 종결할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지난 7월18일 서초구의 한 초등학교 교사 ㄱ씨가 숨진 채 발견된 뒤, 온라인에선 ㄱ씨가 학부모로부터 갑질을 당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경찰은 본격적인 조사를 벌여왔다. 경찰은 하이톡(학교-학부모가 쓰는 메신저) 및 문자메시지 대화, 업무용 피시(PC), 업무용 노트, 일기장을 확보해 분석했고, 사건 직전 학생간 다툼으로 민원이 있었던 학부모들의 휴대전화 포렌식 내용과 동료 교사, 친구 등 68명을 조사했다.
조사 결과, 숨진 교사와 학부모 사이에 오고간 10회 미만의 통화 기록은 있었지만, 통화 녹음이 남겨진 경우는 없었다. 문자메시지나 메신저에서도 일주일 전 발생한 학부모가 학생들간 다툼과 관련한 사실 관계 확인을 요청하는 수준의 내용만 확인했다고 한다. 송 서장은 “지금까지 확보한 자료와 조사 내용에서 폭언 등의 정황이나 범죄 행위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경찰은 교사가 업무와 개인사 등의 복합적인 스트레스로 숨진 것으로 판단했다. 송 서장은 “경찰 조사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심리 부검 결과를 종합할 때, (고인이) 지난해 학교에 부임한 이후, 학교 관련 스트레스를 경험하다가 올해 반 아이들의 지도 문제, 학부모 관련 중재 문제, 학교 업무 관련 문제 등과 개인 신상 등의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국과수는 심리 부검 결과, 고인이 이런 업무 및 개인신상 문제로 인해 심리적 취약성이 극대화돼 스스로 목숨을 끊는데 이르렀다는 취지로 회신했다고 경찰은 전했다.
이번 사건 이후 전국 교사들은 대규모 집회를 열며 정부와 국회에 교권 보호 대책 마련을 촉구해왔다. 이에 지난 9월 교사의 정당한 교육 활동을 보호하기 위한 교권보호 4법이 국회를 통과하기도 했다.
이날 서울교사노동조합은 경찰의 수사 종결에 유감을 표하고 재수사를 촉구했다. 서울교사노조는 성명을 내고 “국과수의 심리 부검 결과 학급 아이들 지도 문제와 아이들 간 발생한 사건, 학부모 중재 등 학교 업무 관련 스트레스가 있었다는 것은 고인의 교육활동 침해행위가 있었음을 뒷받침하는 것”이라며 “이를 바탕으로 수사당국에서는 고인에게 교육활동 침해행위를 한 학부모 등을 엄정 조사하고 관련 법률 등을 적극적으로 적용해 혐의점을 찾았어야 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서울교사노조는 교육당국에도 “수사 결과와 별개로 교사 순직을 인정해달라”고 촉구했다. ㄱ씨 유족은 서울시교육청에 순직을 인정해달라고 요청한 뒤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윤연정 기자
yj2gaz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