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운재(11·가명)가 전북 전주시 자택에서 콧줄로 점심을 먹기 전 엄마와 기지개를 켜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지난 1일 전북 전주의 5평 남짓한 원룸에서 운재(가명·11)는 의료용 침대에 누워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더부룩한지 물어보며 배를 쓰다듬는 엄마의 목소리에 반응하듯 운재는 얼굴을 찌푸리며 안으로 말린 다리와 팔을 반사적으로 움직였다. 컴컴한 세상에서 ‘소리’와 ‘촉감’은 운재가 타인을 느낄 수 있는 몇 안 되는 감각이다.
원룸은 마치 병원에 있는 일반실처럼 꾸며져 있었다. 원룸 한구석에 걸린 전자 온도계 화면엔 온도 23.2도, 습도 58%가 적혀 있었다. 체온 조절이 스스로 잘 안되는 운재가 너무 춥거나 덥지 않게 늘 일정한 온도 유지에 신경 써야 하기에 온도계는 필수품이다. 천장에 있는 전등 한쪽은 하얀색 도포로 덮여 있었고, 아이패드에선 ‘타요’, ‘코코몽’ 같은 애니메이션 소리가 잔잔하게 들려왔다. 운재 엄마(43)는 “병원처럼 좋게는 못 해주지만, 아이가 전등 켤 때 갑자기 밝아지면 놀라서 가림막을 설치했고, 건강했을 때 좋아했던 애니메이션을 항상 켜둔다”고 말했다.
낮 1시 점심시간. 엄마는 운재의 기관 절개를 한 목에 흡입용 튜브를 넣어 가래를 빼주고, 영양분을 넣어줄 콧줄 안도 정리했다. 이후 의료용 침대의 등받이를 위로 올려 운재가 앉은 자세를 할 수 있게 해주고, 아이의 다리와 허리 부분을 이불과 베개로 고정해 밥 먹기 편한 자세를 만들어 줬다. 그렇게 밥 먹을 준비에만 30여분을 쓴 엄마는 운재의 콧줄로 소화 잘되는 환자식을 연결했다. 운재는 음식을 씹어서 먹을 수도 없고, 움직일 수도 없어 소화를 못 시키기 때문이다. 조용히 눈을 감고 콧줄로 밥을 먹는 운재가 혹여나 불편하진 않을지 엄마는 아이한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운재(11)가 콧줄로 점심을 먹기 전 침대에 누워 있다. 엄마가 소화가 잘되는 환자식을 연결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3년 반 전의 일을 회상하는 엄마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살면서 이런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눈앞에서 아이의 얼굴이 창백해지면서 숨을 안 쉬는 그 모습이 아직도 선명해요. 첫 심정지가 오기 전에 아이가 아주 작은 목소리로 ‘아파요…’라고 했던 그 한마디를 잊을 수가 없어요. 그게 마지막 목소리였거든요.”
운재네 가족의 삶은 2020년 4월13일 이후 완전히 달라졌다. 8살이던 운재는 이날 처음 두통과 메스꺼움을 호소해 동네 인근 병원을 찾아가 ‘원발성 폐동맥고혈압’ 진단을 받았다. 급하게 대학병원 응급실로 옮겼지만, 사흘 뒤인 16일 자정께 아이에게 첫 심정지가 왔다. 폐에 물이 차면서다.
심정지는 이후에도 두 차례나 찾아왔다. 이 과정에서 운재는 심장 기능까지 망가져 인공심장으로 숨을 쉴 수밖에 없게 됐다. 목숨은 겨우 건졌지만, 운재의 뇌 90% 이상이 손상되며 사실상 사지마비가 왔다. 원발성 폐동맥고혈압은 원인불명의 폐고혈압증(폐혈관이 좁아져 압력이 높아지는 증상)으로 치료약이 따로 없다.
운재를 수술한 대학병원에서는 아이가 뇌 손상과 장기 손상으로 산소호흡기 없이는 6개월밖에 살 수 없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하지만 진단 이후 한달 만에 운재는 산소호흡기를 떼고 지금까지 자가 호흡으로 잘 지내고 있다. 2021년 뇌세포가 죽은 자리에 물이 차는 수두증이 생겼지만, 그 자리에 다시 뇌세포가 생성돼 물이 빠지길 기다리며 꾸준한 재활치료를 이어가고 있다. 3년 전부터는 콧줄로 영양공급을 받으며 생활하는 중이다.
수술 직후 ‘세미코마’(반혼수) 상태였던 운재는 여전히 두 팔과 다리를 움직일 수 없다. 동공 반응은 있어 명암을 구별하지만, 앞은 보지 못한다. 그래도 재활치료 받다가 근육을 펴는 게 너무 아프면 소리를 내거나 울기도 하고,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면 미소를 살짝 짓는 등 인지 반응은 좋아졌다. 소리와 냄새로 엄마, 아빠를 구별도 할 수 있다. 엄마는 “치료사들은 꾸준히 병원에 입원해 있으면서 재활치료를 포기하지 않아 뇌세포가 조금씩 새로 생기면서 일어난 기적이라고 말한다”고 설명했다.
운재가 콧줄로 점심 식사를 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운재는 사지마비가 온 이후인 2020년 하반기부터 지난달 말까지 한달에서 최장 석달까지 입원하며 병원 세곳에서 재활 입원 치료를 받았다. 엄마는 아이 재활치료에 전념하기 위해 3년 넘게 병원에서 생활했다. 아이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집도 팔았다.
운재의 기적이 계속되기 위해서는 뇌세포 생성을 돕는 지속적인 재활치료가 중요하지만, 당장 앞으로 3개월 동안 재활치료는 엄두도 못 내는 상황이다. 이번 달부터 병원비 이용 한도 초과 등을 이유로 보험금 지급이 일시적으로 중단되는 보험 면책기간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이 기간 동안에는 실손보험 적용이 안 돼 병원비가 한달에 300만원을 넘는다.
병원비를 도저히 마련할 수 없어 운재와 운재 엄마는 이달부터 원룸에서 거주하고 있다. 하루 1시간 재활치료를 위해 병원에 가려면 엄마 혼자 150㎝로 훌쩍 커버린 아이를 침대에서 내려 휠체어에 태우고 원룸 빌라 계단을 내려가야 하는데,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래도 지금까지 실손보험 덕분에 병원비를 줄이면서 아이 기저귀·거즈 등 의료 소모품, 재활치료비 그리고 최소한의 생활비 등을 한달 최대 200만원 선에서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운재 아빠(45)가 다른 지역으로 나가 벌어오는 비정기적인 수입으로는 감당이 어려운 상황이다. 아이가 아프기 직전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생긴 빚의 대출이자까지 갚아야 하는 상황이라 개인회생도 고민하고 있다.
여느 또래 남자아이들과 다르게 음악을 듣거나 피아노 치는 걸 좋아했던 해맑은 운재 사진을 보여주던 엄마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하지만 엄마는 울음도 사치라고 말했다. “너무 바빠서 이제는 울 시간도 없어요. 아이 씻겨줘야 하고 밥도 먹여야 하니까요. 무엇보다 이제 운재하고 함께 계속 있는데, 애 앞에서는 울먹이는 목소리 안 들리게 할 거예요. 제가 웃고 밝게 해야 아이도 에너지 받을 거 같아서요.”
이어 운재를 생각해 무너지지 않을 것이란 다짐도 한다. 운재 엄마는 “재활치료를 해서 근육을 계속 펴주면 의료기술이 더 나아졌을 때 운재도 걸을 수 있을 거라는 작은 희망을 마음 한편에 가지고 있다”면서도 “3년 넘게 병원 생활을 하면서 버틸 수 있었던 힘은 욕심내지 말자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매일 운재 엄마로 현재에 최선을 다하자는 생각뿐”이라고 말했다.
윤연정 기자
yj2gaz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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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 이후
한겨레와 밀알복지재단이 함께한 ‘2023 나눔꽃 캠페인’에 희소병 웨스트증후군을 앓는 민준이 사연(한겨레 10월10일치 12면)이 소개된 뒤 605분께서 “민준아 힘내”, “희망 잃지 마세요”라는 따뜻한 응원의 메시지와 함께 2858만4500원(11월7일자 기준)의 정성을 모아주셨습니다. 밀알복지재단은 “소중한 후원금은 민준이의 재활치료비, 의료소모품비와 민준이네 가정의 긴급생계비로 전달하겠다. 목표액을 넘은 후원금은 민준이와 비슷한 상황의 장애아동을 지원하는 데 사용하겠다”고 전했습니다. 민준이네 가정을 위해 따뜻한 마음을 전해주신 후원자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