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행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요청안에는 ‘공직후보자 재산신고사항 공개목록’ 자료가 첨부돼 있다. 이 자료엔 본인과 배우자가 보유한 예금, 부동산(아파트·토지), 증권 등의 재산 현황이 표시돼 있다. 김 후보자 딸의 재산은 ‘등록 제외’로 분류돼 공개되지 않았다. 현행법상 재산을 등록해야 하는 공직자의 딸은 의무적으로 재산 등록을 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공직자윤리법 제4조 제1항은 재산을 의무적으로 등록해야 하는 공직자와 그 가족을 규정하고 있다. 이 법에 따르면, 공직자(등록의무자)는 본인과 배우자(사실혼 관계 포함), 본인의 직계존속(부모·조부모 등)·직계비속(자녀·손자녀 등)의 재산을 등록해야 한다. 다만, 혼인한 직계비속 여성(딸, 손녀 등)과 외증조부모, 외조부모, 외손자녀 및 외증손자녀 재산은 등록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 이 조항 탓에 ‘혼인한 직계비속인 여성’에 해당하는 김 후보자의 딸은 재산등록 대상에서 제외됐다.
문제는 이 조항이 성평등 원칙에 맞지 않다는 점이다. ‘혼인한 직계비속 남성(아들·손자 등)’은 재산 등록대상이 되는 반면, ‘혼인한 직계비속 여성’ 재산은 등록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는 결혼한 여성을 결혼한 남성과 동등한 존재로 인정하지 않고 남성 배우자에게 종속시키는 호주제의 잔재라는 비판을 받는다.
남성만을 가족을 통솔하는 호주로 인정하고 여성을 아버지, 남편, 아들 호적에 등재한 대표적인 여성 차별 제도인 호주제가 2008년 1월 폐지된지 15년이 넘었지만, 국회와 정부가 사회 변화상을 반영하지 못한 채 낡은 법 조항을 방치하고 있는 셈이다.
지난 2005년 3월2일 오후 호주제 폐지를 주 내용으로 하는 민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자 본회의장 바깥에서 이를 지켜보던 지은희 전 여성부 장관(오른쪽에서 두번째) 등 여성계 인사들이 기뻐하며 박수를 치고 있다. 이 개정안 통과로 호주제는 2008년 1월1일 폐지됐다. 한겨레 자료사진
■ 과거 인권위도 ‘여성 차별’이라고 판단한 조항
이 조항은 2009년 2월3일 시행된 공직자윤리법에 처음 반영됐다. 이 조항의 옛 표현은 ‘다만, 출가한 여와 외조부모 및 외손자녀를 제외’였다. 2008년 6월 국가인권위원회는 이 조항에 대해 호주제를 폐지하는 내용의 민법(2005년 3월31일 시행)을 근거로 합리적 이유 없이 여성을 차별하는 행위라고 판단하고, “양성평등 원칙, 공직자 재산등록 취지 등에 입각하여 개정할 것”을 권고했다.
이후 이 조항을 삭제하는 내용의 공직자윤리법 개정안은 역대 국회에서 꾸준히 발의됐다. 제18대 국회(2008∼2012년) 당시 나경원 한나라당(현 국민의힘) 의원이 “출가한 여와 외조부모 및 외손자녀를 제외하는 것은 호적에 따라 여성을 출가인으로 여기는 성차별적 인식에 기인한 것으로 위헌 소지가 있다”며 2008년 8월 이 조항을 없앤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 법안을 검토한 당시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수석전문위원도 검토보고서에 다음과 같은 의견을 남기며 개정안의 필요성에 공감했다.
“동법의 취지가 공직자가 재산을 직계존비속에게 은닉하여 재산을 증식하는 것을 방지하는 것에 있다고 보면, 결혼한 자(아들)는 계속 등록대상으로 하면서 여(딸)는 등록대상에서 제외하고, 친가는 등록하되 외가는 제외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타당한지 검토가 필요하다고 본다. 공직자가 재산을 은닉하고자 한다면 오히려 등록대상에서 제외되어 있는 혼인한 딸에게 증여의 형태로 은닉할 가능성이 보다 크다고 보이며, 아울러 외가를 등록에서 제외하는 것 역시 전통적인 호주제의 관념에 입각한 것으로, 호주제가 폐지된 현 시점에서 볼 때 차등에 따른 합리적인 근거는 다소 미약하다고 본다.”
■ ‘성차별적’ 공직자윤리법 개정안, 국회서 번번이 좌절
하지만 나경원 의원안은 다른 여야 의원들 및 정부 반대로 소관 상임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 문턱조차 넘지 못하고 폐기됐다. 이후 2011년 4월 당시 박영선 통합민주당(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해당 조항을 삭제한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지만, 마찬가지로 다른 국회의원들의 공감을 얻지 못해 폐기됐다. 당시 공직자윤리법 소관 부처였던 행정안전부(현 인사혁신처)는 “사회·문화적 정서 등을 고려할 때 (등록의무자의) 혼인한 직계비속인 여자 또는 (등록의무자) 외가의 재산까지 등록하게 하는 것은 해당 공직자 가족의 사생활 자유 등을 과도하게 제한할 우려가 있다”면서 반대 뜻을 밝혔고, 의원들은 이에 동조했다.
그 이후로도 제19대, 제20대 국회에서도 이 조항을 없앤 개정안이 차례로 발의됐지만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이번 제21대 국회에서는 홍익표 민주당 의원이 올해 2월 “(현행법은) 재산 상속에 있어 남녀 구분이 없어지고 있는 시대적 변화를 반영하지 못한다”며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지만, 현재 국회 행안위 법안심사소위 회부에 그치고 있다.
3·8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한국여성단체연합이 주최하는 제38회 한국여성대회가 지난 3월4일 오후 서울 중구 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열리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 시대착오적…폐지 필요성 제기
여성계에서는 해당 조항을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김은경 한국와이더블유시에이(YWCA)연합회 성평등정책위원장은 “호주제가 여성을 종속시킨 것과 같이 성별 고정관념에 기초한 차별 조항”이라며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위치에서 부부 공동체를 운영하는 주도적인 위치여야 하는데, 이 조항은 그 동등한 지위와 자격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는 누구든지 성별에 의해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는 헌법 조항에도 위배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신경아 한림대 교수(사회학과)는 “2000년대 들어 한국 사회에서 진행된 법·제도 개선 중 호주제 폐지는 중요한 개혁 과제 중 하나였다. 과거처럼 아들에게, 특히 장남에게 부모가 전 재산을 물려주는 시대는 끝났다”며 “국회가 사회 변화에 따라 법·제도를 정비해야 하는 책임을 계속 미뤄왔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이 조항은 당연히 삭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오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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