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타파 직원들이 14일 오전 대장동 허위 보도 의혹 관련 압수수색을 위해 서울 중구 뉴스타파를 찾은 검찰 관계자들과 대치하고 있다. 연합뉴스
“피의자는 공모하여 피해자 윤석열을 비방할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공공연하게 거짓의 사실을 드러내어 피해자 윤석열의 명예를 훼손하였다.”
지난 14일 ‘검사 윤석열의 부산저축은행 수사 무마 의혹’을 보도한 뉴스타파와 제이티비시(JTBC)를 압수수색하며 검찰이 제시한 영장의 일부다. 핵심은 ‘거짓의 사실’과 ‘피해자 윤석열의 명예 훼손’ 두 가지로 요약된다. 검찰은 이들 언론사에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혐의를 적용했다. 혐의가 인정되면 최대 7년 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검찰은 이들 언론사와 기자가 기사 내용이 거짓임을 알면서도 윤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할 목적으로 보도했다는 사실을 입증하려고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들 언론사 등은 해당 기사가 허위 사실이 아니라며 맞서고 있다.
법조계 안팎에선 보도 내용의 사실 여부를 떠나 대통령이 피해자가 되는 명예훼손 수사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판례들을 볼 때 공적인 관심 사안에 대해선 언론의 자유를 중요하게 판단하고, 대통령이 피해자가 되는 명예훼손 사건에서 유죄가 확정된 전례를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 ‘피디수첩’ 광우병 보도…대법원 “공직자 명예훼손 안 돼”
이번에 검찰은 검사 10여명으로 구성된 ‘대선개입 여론조작 사건 특별수사팀’을 꾸리고 대대적인 수사에 나섰는데, 명예훼손 사건 수사를 위해 특별수사팀을 출범시키는 것 자체가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2008년 문화방송(MBC) ‘피디수첩’ 광우병 보도 수사 때도 검찰은 특별수사팀을 꾸리고 제작진을 명예훼손 등으로 기소했지만,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당시 대법원은 “언론보도의 특성에 비춰 내용이 객관적으로 최종 확인되지 않았더라도 공직 수행과 관련한 중요한 사항에 관해 의혹을 품을 만한 이유가 있고, 공익을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엔 바로 공직자에 대한 명예훼손이 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당시 판결문을 보면 “언론보도로 인한 명예훼손이 공공적·사회적 의미를 가진 사안이라면 평가를 달리해야 하고, 언론의 자유에 대한 제한이 완화돼야 한다”고 썼다. 또 “정부 또는 국가기관은 형법상 명예훼손 피해자가 될 수 없으므로 언론보도로 인하여 그 정책 결정이나 업무수행에 관여한 공직자에 대한 사회적 평가가 다소 저하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 보도로 인하여 곧바로 공직자 개인에 대한 명예훼손이 된다고 할 수 없다”고도 했다.
요약하면 ‘공적인 관심 사안에 대해서는 사실관계가 다소 어긋나더라도 악의적으로 허위 사실을 보도하지 않는 한 공직자 개인에 대한 명예훼손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달 25일 대구 달성군 현풍시장을 찾아 장을 보고 있다. 연합뉴스
■‘세월호’·‘쥐코’·‘공산주의자’…줄줄이 무죄
2000년 이후 사법부는 공적 사안과 관련해선 언론의 자유를 중요하게 보고, 공직자의 명예훼손으로 형사처벌을 거의 하지 않고 있다. 특히 대통령이 피해자가 되는 경우에는 일부 하급심에서 실형을 선고하더라도 대법원에서 무죄가 나왔다.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이사는 2016년 6월께 경찰의 4·16연대 사무실 압수수색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에서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전 대통령의 ‘7시간 행적’에 대해 “마약을 했는지, 보톡스를 맞았는지 확인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가 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2심은 유죄로 판단했으나 2021년 대법원은 무죄로 뒤집었다. 대법원은 “(박 소장이)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대통령이 적절한 대응을 하지 않고 상당한 시간 동안 무엇을 했는지 명확하지 않으므로 구체적 행적을 밝힐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표현하는 과정에서 의혹을 제기한 것”이라며 표현의 자유에 해당하므로 형사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가토 다쓰야 전 일본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은 2014년 8월 ‘박근혜 대통령 여객선 침몰 당일 행방불명…누구와 만났을까’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박 전 대통령의 사생활 의혹을 제기했다가 검찰의 수사를 받고 불구속 기소됐다. 그러나 2015년 12월 1심 법원이 무죄를 선고했고, 검찰이 항소를 포기해 무죄가 확정됐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지난달12일 오후 제주 서귀포시 롯데호텔제주에서 열린 2023 중소기업 리더스포럼 개막식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공동취재단
이명박 정부 때는 민간인 사찰 피해자였던 김종익씨가 2008년 개인 블로그에 이 전 대통령을 비판하는 ‘쥐코 영상’을 게시했다는 이유로 수사 대상이 됐다가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김씨는 기소유예 처분 취소를 헌법소원을 청구했는데 헌법재판소는 2013년 12월,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자의적인 검찰권 행사”라며 받아들였다.
문재인 정부에선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2019년 10월 집회에서 문 전 대통령에 대해 ‘간첩’, ‘대한민국을 공산화하려 한다’는 발언을 했다가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도 기소됐다. 하지만 1·2·3심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고영주 전 방송문화진흥위원회 이사장이 2013년 1월 보수단체의 신년하례회에 참석해 500여명 앞에서 “문재인 후보는 공산주의자이고, 이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우리나라가 적화되는 건 시간문제”라고 발언했다가 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대법원은 최종 무죄로 판단했다. 문 전 대통령이 고 전 이사장을 상대로 낸 1억원 상당의 손해배상 민사소송 상고심에서도 대법원은 고 전 이사장의 손을 들어줬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19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63빌딩에서 열린 9·19 평양공동선언 5주년 기념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대통령 명예훼손 기소·처벌 중단돼야”
이처럼 현직 대통령에 대한 명예훼손 사건은 유죄 판결을 끌어내기가 쉽지 않다. 이례적으로 특별수사팀까지 꾸리고 대대적인 수사에 착수한 검찰의 의도가 정치적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총선을 앞두고 언론에 재갈을 물리려는 시도라는 지적이다.
검찰의 정치적 수사를 윤 대통령이 방관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명예훼손죄는 이른바 반의사 불벌죄로 피해자인 윤석열 대통령이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고 하면 검찰이 기소할 수 없다. 정보통신망법은 70조 3항에 ‘피해자가 구체적으로 밝힌 의사에 반해 공소를 제기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학계에선 언론의 자유를 억압할 수 있는 대통령에 대한 명예훼손죄 처벌을 중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인호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는 2020년 관훈저널 기고글 ‘대통령의 명예훼손 소송 어떻게 볼 것인가’에서 “유엔(UN)인권이사회는 한국도 국제적 추세에 따라 명예훼손죄를 폐지해야 한다고 권고했지만, 여전히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기소가 이뤄지고 처벌되고 있다”며 “심지어 국가기관의 고발로 수사가 진행되기도 하는데, 명예훼손죄 폐지 전이라도 대통령을 위한 기소나 처벌은 중단돼야 한다”고 했다.
이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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