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이 18일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8월10일, 뉴스 전문 채널 와이티엔(YTN)은 서현역 흉기난동 사건을 보도하던 중, 앵커 뒤 배경화면에 이동관 당시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의 사진을 띄우는 방송사고를 냈다. 해당 리포트에서 이 후보자의 사진은 “죄송하다면서 망상증세 최원종…사이코패스 판단 불가”라는 자막과 함께 10초가량 노출됐다. 와이티엔은 뉴스 말미에 앵커 코멘트를 통해 “배경화면이 잘못 나갔는데 양해 말씀 드리겠다”고 정정했다.
이 후보자의 항의가 이어지자, 와이티엔은 이튿날인 8월11일 “뉴스 그래픽 이미지 오류 사고와 관련해 시청자와 이동관 후보자에게 깊은 유감의 뜻을 전한다”며 “다음주 ‘방송사고대책위원회’를 열어 구체적인 경위와 책임 소재, 향후 재발방지책을 논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재까지 내부 조사 결과 당시 뉴스 진행 부조정실 내 피디와 기술 스태프 간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아 발생한 단순 실수로 파악됐으며 의도성은 전혀 없음을 확인했다”는 것이 와이티엔 쪽의 해명이었다.
이 후보자는 그 해명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 지명 이후 와이티엔이 후보자 검증 보도 차원에서 방송했던 리포트들을 ‘흠집 내기’라고 규정하며, 와이티엔의 보도 기조가 자신을 흠집 내는 것에 치중돼 왔으며 이 방송사고 또한 같은 선상에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자녀의 학교폭력 사건과 관련한 의혹 보도, 배우자 부정 청탁 의혹, 부동산 투기 의혹 보도들이 순식간에 ‘검증’이 아니라 ‘흠집 내기’로 싸잡혔고, 와이티엔 쪽이 단순 기술적 실수라고 밝힌 방송사고는 ‘실수가 아닌 고의’를 의심당했다. 이 후보자는 8월16일 와이티엔 관계자들을 상대로 3억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하며 해당 기자들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담당자들을 불러 조사를 한 경찰은, 고소 한달 만인 9월19일 와이티엔 소속 기자 2명과 그래픽 담당 직원 휴대전화와 주거지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했다. 와이티엔은 “기술적 실수로 인한 방송사고와 관련해 언론인을 상대로 압수수색까지 시도하는 건 전례를 찾기 힘들다”며 수사권 남용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고한석 언론노조 와이티엔지부장 또한 “조사 과정에서 휴대전화 임의 제출도 요구하지 않고 돌연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했다. 법조계에서도 전례가 없다고 하는 폭력적인 언론 탄압”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19일 밤, 서울서부지검은 마포경찰서가 신청한 압수수색 영장을 반려했다.
압수수색 영장이 반려됐으니 된 걸까? 그럴 리가. 이동관 당시 후보자는 야당의 반대에도 방송통신위원장으로 임명됐고, 그가 건 손해배상 소송과 명예훼손 고소 건은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리고 이보다 더 큰 사건이 있다. 서울서부지검이 마포경찰서의 압수수색 영장을 반려하기 5일 전인 9월14일, 서울중앙지검 ‘대선개입 여론조작 사건’ 특별수사팀은 뉴스타파, 제이티비시(JTBC), 한상진 뉴스타파 기자, 봉지욱 뉴스타파 기자(전 제이티비시 기자)의 자택을 압수수색했다. 이날 압수수색은 정보통신망법 위반(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이뤄졌으며, 국민의힘이 낸 고발장에서 명예훼손을 당한 당사자로 지목된 것은 윤석열 대통령이다.
지난 대선을 3일 앞둔 2022년 3월6일, 뉴스타파는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와 신학림 전 언론노조위원장의 대화 녹취파일을 신 전 위원장으로부터 입수한 뒤 이를 보도한다. 2021년 9월 친한 선후배 관계로 만나서 이뤄진 이 대화에서, 김씨는 부산저축은행 사건 당시 주임검사였던 윤석열 대통령이 대장동 대출 브로커인 조우형의 수사를 무마해줬다는 내용의 발언을 했다. 검찰은 이 대화가 허위 인터뷰이며, 김씨가 대통령 선거에 영향을 끼칠 목적으로 허위 인터뷰를 보도해달라는 청탁과 함께 대가성으로 1억6200만원을 신 전 위원장에게 송금했다고 판단하고 있다. 김씨는 인터뷰의 허위성을 부정했고, 신 전 위원장은 자신이 받은 돈은 인터뷰에 대한 대가성 금품이 아니라 자신이 쓴 책에 대한 판권료라고 주장한다.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앞줄 오른쪽 셋째)이 지난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가짜뉴스 근절 입법청원 긴급 공청회’에서 국민의힘 의원들과 손을 맞잡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뉴스타파는 신 전 위원장과 김씨의 금전 거래를 미처 몰랐지만, 보도 결정 과정에서 두 사람의 금전 거래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취재원과 금전 거래를 한 사실은 저널리즘 윤리상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며 공식 사과했고, 어떻게 ‘김만배 음성파일’을 보도하게 됐는지 그 경위를 상세히 밝히며, 김씨와 신 전 위원장의 72분 녹음파일 전체 원본을 편집 없이 공개했다. 정말로 이 대화가 ‘사전 기획된 허위 인터뷰를 통한 대선 개입’인지 직접 듣고 판단하라는 의미였다.
여당과 대통령실은 이 해명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통령실은 “희대의 대선 정치공작”이라 평했고, 집권 여당이 직접 고발장을 제출했으며, 언론사와 기자 자택에 대한 압수수색이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됐다. ‘대통령 명예훼손 혐의로 언론사 압수수색’이라는 전례 없는 사태 앞에서 수많은 언론인들이 경악했다. 물론 비슷한 사례가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2014년 8월,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 가토 다쓰야 기자는 세월호 사건 당일 박근혜 대통령이 정윤회와 밀회를 가진 것이 아니냐는 의혹에 기반한 기사를 작성했다. 이에 보수단체들이 가토 지국장과, 해당 기사를 한국어로 번역한 외신번역전문매체 뉴스프로를 대통령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했고, 검찰은 뉴스프로의 프리랜서 번역 기자의 자택을 압수수색했다. 그래도 그땐 보수단체를 통해 우회해서 고발하기라도 했다. 여당이나 청와대 같은 살아 있는 권력이 직접 움직이는 것은 언론 탄압이라는 사실에 대한 최소한의 인지가 남아 있었던 것이다.
뉴스타파의 보도가 저널리즘 윤리에 충실했는가? 그렇다고 말하긴 어렵다. 녹음파일을 입수한 뒤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선후보 쪽에 연락해 입장을 물으며 반론권을 보장한 것도 사실이지만, 신 전 위원장이 김씨와 금품 거래를 했다는 사실을 파악하지 못한 채로 보도에 나선 건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하지만 권력자들이 “희대의 대선 정치공작”이라며 미리 이 사안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 가이드라인을 던지고, 검찰이 그에 맞춰 언론사 압수수색에 나서는 것은 노골적인 언론 탄압이다. 권력을 감시해야 할 책무가 있는 언론을 권력이 제 입맛에 맞게 들춰본다면, 세상 어떤 언론이 제 책무를 수행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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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8월 더불어민주당의 언론중재법(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 개정 추진에 대해 “정권을 향한 언론의 건전한 비판에 재갈을 물리는 현대판 분서갱유”라고 반대했던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당시 원내대표)는, 9월7일에는 뉴스타파를 향해 “사형에 처해야 할 만큼의 국가반역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야당일 때에는 언론 자유를 목놓아 외치던 사람들이, 여당이 되는 순간 언론을 길들이고 순치시키려 한다.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도 이동관 방통위원장에게 “가짜뉴스를 고의로 기획하고 시나리오를 만들고 행동하는 매체에 대해서는 폐간을 고민해야 한다. 없애 버려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이 위원장은 “그게 바로 원스트라이크 아웃의 최종 단계”라며 맞장구를 친다. 이것이야말로 “언론의 건전한 비판에 재갈을 물리는 현대판 분서갱유”가 아니고 무엇인가?
2021년 7월29일, 허은아 국민의힘 의원은 당시 여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 발의한 언론중재법 개정안과 관련해 사회관계망서비스에 이런 글을 썼다.
“2018년 박광온 의원이 발의한 ‘가짜뉴스 처벌법’에 대해 방통위가 작성한 검토의견을 공개합니다. “언중위나 법원, 선관위 판결에서 사실이 아니라고 판단했거나, 언론사가 정정보도를 통해 사실이 아니라고 인정한 정보 역시, △‘객관적 사실’을 판단하는 기준이 아니고 △허위로 판단된 정보도 사실로 드러나는 경우도 발생 가능하기 때문에 ‘가짜 정보’라고 규정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중략) ‘무엇이 진실이냐?’라는 것은 수천년간 우리 인류가 풀지 못한 철학적 논제입니다. 민주당은 진실에 겸허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가짜뉴스 처벌’ 운운하는데 무엇이 가짜뉴스인지 누가 어떻게 규정할 것이냐고 따져 물었다. 2022년 4월15일 국민의힘은 언론중재법 개정안의 즉각 폐기를 요구하는 공식 논평도 발표했다.
“언론사에 손해액의 최대 5배에 달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을 가하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당장 폐기되어야 한다. 민주당의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고, 언론 검열을 야기시키는 시대에 역행하는 악법이다. 미국 국무부의 인권보고서에서도 ‘언론 악법’이라고 규정하였으며, 세계 언론의 우려와 비판도 거세다. 누구보다 언론의 자유를 주장하던 민주당이 언론 탄압을 위한 악법을 당론으로 채택했다는 점에 강한 유감을 표한다.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 민주당이 가슴에 깊이 새겨야 할 헌법 조문이다.”
누구보다 정권의 언론 탄압을 비판하며 언론 자유를 이렇게 강조하던 국민의힘은 이제 집권 여당이 되자, 아직 그 고의성이나 악의가 입증되지도 않은 보도에 대해 “사형”, “국가반역”, “폐간”을 운운하고 있다. 무엇이 가짜뉴스인지 자의적으로 규정할 권능을 독점하는 것, 그것이 독재가 아니고 무엇인가?
티브이 칼럼니스트
정신 차려 보니 티브이를 보는 게 생업이 된 동네 흔한 글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