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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2022년 3월7일 김만배 녹취록 뉴스 다시보기 [권태호 칼럼]

등록 2023-09-25 18:48수정 2023-09-26 02:38

명확하게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보도 가치를 판단해 내린 결정은 저널리즘 측면에서 토론 주제가 될 수 있을지언정, 제재 운운은 민주사회의 모습이 아니다.
정권이 보도를 심판하는 것, 지금은 박정희·전두환 시대가 아니다.
류희림 방송통신심의위원장이 25일 오후 서울 양천구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열린 20회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류희림 방송통신심의위원장이 25일 오후 서울 양천구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열린 20회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권태호 | 논설위원실장

방송통신심의위원회(위원장 류희림)가 25일 ‘한국방송’(KBS)과 ‘제이티비시’(JTBC), ‘와이티엔’(YTN) 등 3개 방송사의 ‘김만배-신학림 녹취파일’ 인용 보도에 대해 최고 수위 징계인 ‘과징금 부과’를 의결했다. 액수는 추후 결정하기로 했다. 방심위가 부과할 수 있는 과징금은 최고 4500만원이다. 중요한 건 벌점이다. 과징금 부과는 방송사 재허가·재승인 과정에서 벌점 10점을 받을 수 있는 최고 수위 징계다. 앞으로 방심위가 이처럼 정권에 비판적인 의혹·검증 보도에 잇따라 ‘과징금’을 부과한다면, 해당 방송사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 인용 보도에까지 과징금을 물리는 건, 부정적 보도 확산을 막기 위한 방화벽을 쌓겠다는 의도로 비친다. 지난 19일 열린 방송심의소위원회에서 뉴스타파 인용 보도와 관련된 방송사는 5곳이었고, 이 중 ‘에스비에스’(SBS)는 녹취록을 직접 인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문제없음’으로 의결했고, ‘문화방송’(MBC)은 진술 연기를 요청해 제재가 미뤄졌다.

2022년 3월7일 보도된, 방심위가 제재한 해당 뉴스를 찾아봤다. 대부분 2분 남짓한 짤막한 뉴스로 의혹·인용 보도의 전형적 형태였다. 앵커 멘트는 김씨 ‘주장’이라는 점을 분명히 밝혔고, ‘여야 쟁점 부상’, ‘국민의힘 반발’ 등을 언급해 균형을 맞추려 했다. 이어지는 기자의 리포트는 ‘리드’(뉴스타파 보도 인용) - ‘대화 내용 공개’(녹취파일) - ‘박영수 검사 부인’(반론) - ‘여야 반응’ 형태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에게 불리한 보도임은 분명하지만, 김만배씨 주장 외에 추가적인 내용이 더해진 게 없어 이 보도만으로는 윤 후보 연루 가능성을 확신하긴 힘들어 보인다. 유일하게 3분이 넘는 ‘제이티비시’ 보도의 경우, 제이티비시가 확보한 녹취록을 통해 정황을 좀 더 파고들었다. 그러면서도 김만배씨가 ‘윤석열이 조아무개에게 ‘너가 조○○이냐’라고 했다’는 녹취파일과 관련해 조씨를 직접 접촉해 “윤 후보를 직접 만난 적 없다”고 부인하는 내용을 덧붙였다. 또 김만배씨가 주임검사라고 말한 ‘박아무개 검사’는 수사검사라고 오류를 바로잡기도 하는 등 조금이라도 더 충실한 보도를 하려 애쓴 흔적이 엿보인다.

당시 신문보도(3월8일치 조간)도 훑어봤다. ‘경향신문’(5면, 8면), ‘한겨레신문’(2면), ‘한국일보’(1면) 등이 뉴스타파의 녹취파일 내용을 중점적으로 인용 보도하면서 사건 관계자에게 직접 묻고, 반론도 같이 싣는 등 실체 확인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큰 성과는 없었다. 그래서 당시 이들 기사만으로는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파악하기 힘들다. 나머지 신문들은 여당과 야당의 주장을 병렬적으로 맞세우는 정치권 공방 기사로 처리했다.

대선 3일 전 다른 언론에서 대선 후보 관련 주요 의혹이 보도됐다면, 그때 언론사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 대선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으니, 사실관계가 명확하게 드러나기 전에는 공정성을 위해 여야 주장만 따옴표로 전달하고 가만있어야 하는 건가. 이번에 방심위 제재 언론사들을 보면 뉴스타파 및 관계 당사자들을 접촉하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모습이 행간에 드러난다. 이 경우, 마감 시간 앞에서 뉴스룸은 결정을 내려야 한다. 취재된 내용까지 보도할 것인지, 아니면 보도를 미룰 것인지, 보도하지 않을 것인지를 택해야 한다. 모든 언론사 뉴스룸은 거의 매일 이런 고통스러운 선택을 한다.

뉴스룸이 거짓인 줄 알면서도 사실인 것처럼 보도했다면 문제다. 이는 현행법에 따라 사법적 처리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명확하게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보도 가치를 판단해 내린 각각의 결정은 저널리즘 측면에서 토론의 주제가 될 수 있을지언정, 여기에 제재 운운하는 것은 민주사회의 모습이 아니다. ‘미디어오늘’ 보도를 보면, 지난 19일 방심위 소위에서 송현정 한국방송 통합뉴스룸 취재1주간은 “(이런 인용 보도가 방심위) 심의 징계 대상이 된다면, 수사권을 갖지 않은 언론이 어떻게 의혹 보도를 할 수 있겠나”라고 의견 진술을 통해 말했다. 이날 손석민 에스비에스 보도본부 뉴스혁신부장은 “(당시) 당사자 접촉을 시도했는데 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진위 여부를 확인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에스비에스는 이런 이유로 녹취파일 음성을 직접 공개하진 않았다. 두 방송사의 판단은 각각 존중받아야 한다.

설령 녹취파일에 김만배씨의 일방적, 또는 허위 주장이 담겼다 하더라도 이를 보도한 언론사에 대한 비판은 시청자들이 하고, 손해배상이 필요하다면 관계 당사자들이 청구해야 한다. 정권이 보도를 심판하는 것, 지금은 박정희·전두환 시대가 아니다.

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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