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석 국민의힘 의원이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명예훼손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은 가운데, 판결 논란이 재판을 진행한 박병곤 판사의 정치적 성향 비판으로 옮겨붙고 있다. 판결 이후 여당과 보수 언론은 박 판사 신상털기를 통해 판사가 ‘정치적 중립’을 지키지 않았다고 비판하며 사법부에 징계를 압박하고 있는데, 이런 행위가 ‘사법부의 독립’을 침해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16일 대법원 관계자는 한겨레에 “언론에 보도된 (박 판사의) 법관 임용 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사용에 관해 사실관계를 확인 중에 있다”고 밝혔다. 앞서 박 판사가 고등학교·대학교 시절 쓴 정치적 글을 근거로 여권이 비난하는 데 대해, 서울중앙지법은 “과도한 비난이 제기되는 상황에 깊은 우려를 표명한다”며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지만, 정치권에서 판사 임용 뒤 글을 찾아내 계속 비판을 이어가자 문제가 되는 게 없는지 살펴보겠다고 입장을 선회한 것이다.
국민의힘과 조선일보 등은 박 판사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대선에서 진 지난해 3월 직후 “울분을 터뜨리고 절망도 하고 슬퍼도 했다가 사흘째부터는 일어나야 한다”는 글을 에스엔에스에 썼다며, 박 판사가 법관 윤리강령 7조 ‘정치적 중립 의무’를 위반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법원이 박 판사 글에 대한 사실관계 확인을 마치면 징계 검토에 나설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경우 그동안 징계의 형평성과 맞지 않는다는 비판과 함께, 사법부 독립 침해 논란이 일 수 있다. 2014년 대법원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한 1심 무죄 선고에 대해 법원 내부망에 비판 글을 올린 김동진 당시 수원지법 성남지원 부장판사에게 정직 2개월 처분을 내렸지만, 정치적 의견 표명을 이유로 징계가 이뤄진 적은 없다. 김 판사는 2020년 페이스북에 문재인 대통령 하야 요구 글을 올렸지만, 해당 사건으로 김 판사가 징계를 받진 않았다.
법조계 안팎에선 진영의 유불리에 따라 판사의 정치 성향을 문제삼는 것 자체가 사법부의 독립 침해로 이어질 수 있어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서울고법의 한 판사는 “(박 판사에 대한 공격이) 대법원장 교체를 앞둔 사전 작업 같다는 생각도 든다”며 “판결은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지만, 이건 판결이 아닌 개인에 대한 공격이다. 앞으로 판사 개개인에 대한 공격의 신호탄이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형사재판 경험이 많은 또 다른 판사 역시 “판사의 판결과 관련 없는 다른 걸 파헤쳐서 무리하게 연결시키는 게 우려스럽다”고 밝혔다.
다만, 불필요한 논란이 제기된 데 대해 법원 내부에서 안타깝다는 의견도 나온다. 서울고법의 한 판사는 “누구든지 시민이니까 그 정도 얘기는 할 수 있지만, 판사는 (높은 정치적 중립성이 요구되기에) 관리를 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오연서 기자
loveletter@hani.co.kr 이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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