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건설노동조합 조합원들이 3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한국토지주택공사(LH) 발주 아파트 부실시공과 관련해 책임자 처벌 등을 촉구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아파트 도면을 제대로 이해하고 일하는 데만 최소 5년이 걸린다. 그런데 현장 인력 90% 이상이 철근 경험이 없다. ‘철근 누락 아파트’가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인천 검단아파트 지하주차장 붕괴를 시작으로 최소 15곳 아파트단지 철근 누락이 밝혀진 가운데 현장 노동자들 사이에선 “터질 게 터졌다”는 반응이 나온다. ‘철근 누락’ 사태 원인으로 부실 설계·시공·감리와 한국토지주택공사(LH·엘에이치)의 전관특혜 논란 등이 거론되지만 현장에서 철근을 제대로 심을 수 있는 숙련노동자 부족 역시 주요 원인이라는 것이다.
실제 30년 넘게 건설 현장 철근 작업을 해온 정아무개(59)씨는 3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철근은 기둥·대들보를 단단히 받치는 건물의 뼈대인데, 도면대로 시공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며 “가령 철근을 묶을 때 기둥이냐, 벽이냐에 따라 결속 강도를 다르게 해야 하는데 초보 건설인력들이 그냥 할수 있는 일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26년째 철근 노동자로 일해온 장아무개(60)씨도 “철근 관련된 도면이 따로 있는데 도면 자체가 잘못 전달되는 등 여러 문제가 생기면 현장에서 숙련 노동자가 단종사(도급업체인 전문건설업체)에 말해 바로 잡는다”고 했다. 현장에서만 알 수 있는 철근 누락 등 문제를 걸러내는 것도 숙련 노동자의 구실이라는 것이다.
숙련 건설 노동자 부족 현상은 심각한 수준이다. 건설근로자공제회 조사연구센터는 지난해 낸 보고서에서 2022년 건설근로자 내국인력 부족 인원이 21만여명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국내에서 잔뼈가 굵은 팀·반장급 숙련 노동자 상황은 더 심각하다. 보고서에서 ‘한국인 숙련 노동자가 부족하다’는 응답이 54%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10년차 철근공인 임아무개(36)씨는 “현장에 도면을 읽을 줄 아는 노동자가 거의 없다”며 “오늘은 이 현장 내일은 저 현장으로 이동하며 일하는 노동자를 소위 ‘로타리팀’이라고 부르는데, 이런 노동자가 다수이기 때문에 현장에 대한 책임감도 옅어진 분위기”라고 했다. 임씨는 또 “철근은 아파트가 올라갈 때 일당 계산이 아니라 바닥이나 벽체 같은 공정 하나를 끝낼 때 비용을 계산을 하는데 이게 ‘판떼기’다. 속도가 생명이기 때문에 대충 작업이 이뤄지다 보면 누락되는 철근이 굉장히 많다”고 설명했다.
저숙련 건설노동의 상당 부분은 이주노동자가 차지한다. 올해 3월말 기준 건설근로자 공제회에 등록된 철근공 가운데 외국인 비율은 36.8%로 건설업 직종 가운데 가장 많다. 철근노동자 정씨는 “다수는 철근 작업을 한 적이 없고 외국인이라 아무래도 한국어가 서툴러 지시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심규범 건설근로자공제회 전문위원은 “낙찰률이 낮을수록, 다단계 하도급으로 공사비 삭감이 심해질수록 임금 지불 능력이 약해지다보니 저숙련 인력의 투입과 부실 시공, 하자 등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부가 지난 2020년 내놓은 건설노동자 적정임금제 등 건설업 숙련 인력 확보 방안 도입 방침은 아직 제대로 실현되지 못했다. 함경식 노동안전연구원 원장은 이날 건설노조 기자회견에서 “불법 다단계 하도급과 무리한 공사기한, 최저 낙찰제 등 구조적 모순을 해결하지 않는 이상 건설현장의 부실 공사, 불법 시공은 없어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김해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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