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오전 대구시교육청 인근 공원에 마련된 서초구 교사 추모 공간에서 한 초등학교 교사가 헌화 후 묵념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서초구의 한 초등학교 교사가 극단적 선택을 한 배경에 과도한 학부모의 민원이 있었다는 의혹이 이는 가운데, 지난해 서울시교육청이 서울시의회에 낸 ‘서울시교육청 교육활동보호 조례안’에 피해교사를 보호할 수 있는 방안이 구체적으로 들어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해당 조례는 시의회가 현재까지 상정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25일 <한겨레> 취재 결과, 서울시교육청이 지난해 9월 입법 예고한 뒤 시의회에 제출한 교육활동보호 조례안은 시의회 본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계속 계류 중이다. 조례안의 핵심 내용은 학생과 보호자의 책무를 구체적으로 명시해 교육활동 침해로부터 교사를 보호하는 것이다. 조례안 제5조(학생·교직원·보호자의 책무) 3항은 보호자의 책무 관련 ‘교원의 전문성을 신뢰하고 학교 교육활동에 적극적으로 협력해야 한다’, ‘보호하는 학생이 학교의 교육활동과 교육활동을 수행하는 교원을 존중하도록 지도해야 한다’, 그리고 ‘정당한 교육활동 중인 교원에 대해 부당한 간섭을 하지 않아야 한다’고 규정했다.
조례안은 정부와 여당이 학생인권조례에 빠져 있다고 문제 삼는 학생의 책무에 대해서도 ‘교원의 정당한 교육활동을 존중하고 나아가 다른 학생의 학습권을 침해하지 않아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지난 21일 오전 서울 서초구 한 초등학교 인근에 고인이 된 담임교사의 추모 공간이 만들어져 있다. 연합뉴스
조례안은 교사 개인이 과도한 민원이나 법적 분쟁에 직접 대응하지 않도록 한 대책도 담겼다. 제7조(학교교육활동 보장) 2항은 민원인이 법령 또는 학교에서 정한 적법한 절차를 위반해 교육활동을 침해하고 학교장이 요청하는 경우 교육감이 관할 수사기관에 고발할 수 있도록 했다. 또 보호자, 민원인 등의 교육활동 침해 행위에 대해 교원이 법적으로 대응할 때 교육청이 소송비를 지원할 수 있다는 내용도 포함하고 있다. 그 외 교육활동을 방해하는 민원인의 학교 출입을 제한하는 내용도 담겼다. 사실상 교육활동 침해에서 교사를 보호할 대책이 전방위적으로 담긴 셈이다.
그러나 국민의힘 의원이 과반을 차지한 서울시의회는 해당 조례안을 본회의에 상정조차 하지 않았다. 시의회가 지난 3월10일 공개한 교육활동보호 조례안 검토보고서를 보면, 시의회는 학교 교육활동 침해행위의 요건이 모호해 학생과 보호자 등의 권리를 제한할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학생의 책무성을 담은 조항과 관련해선 학생인권조례 내용과 중복된다고 판단했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지난 24일 오후 서울시 종로구 시교육청에서 열린 시교육청-교직 3단체 긴급 공동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대신 시의회는 사흘 뒤인 3월13일 김현기 의장 명의로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폐지조례안’을 발의했다. 앞서 종교단체와 학부모단체 등으로 구성된 ‘서울시학생인권조례 폐지 범시민연대'는 지난해 8월 “학생인권조례가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종교의 자유와 부모의 교육권 등을 침해한다”며 조례 폐지 청구인 명부를 시의회에 제출했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지난 24일 교직 3단체와의 기자회견에서 “현재 시의회에 계류 중인 교육활동보호 조례안의 조속한 심의와 통과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25일 <한겨레>에 “교육활동보호 조례가 조희연 교육감의 세 번째 임기 1호 조례안인 만큼 의지를 갖고 통과시키려 노력했지만 여전히 시의회에 발이 묶여 있다”며 “최근 발생한 사건들을 계기로 조례안이 통과될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있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시의회가 학생인권조례 폐지안을 내놓고 있어 우려된다”고 말했다.
박고은 기자
eun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