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호(가명·7)군이 지난 5일 대구 달성군 아파트에서 ‘동물 낱말카드’를 갖고 놀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지난 5일 대구시 달성군의 아파트에서 만난 초등학교 1학년 연호(가명·7)는 말이 없었다. 하지만 소 같은 눈망울로 쉼 없이 눈을 맞췄고, 생긋생긋 미소를 지으며 온몸으로 반가움을 표시했다. 조용한 연호는 역설적으로 ‘낯가림’이라고는 모르는 아이처럼 보였다.
연호는 최근 병원 검사에서 자폐 스펙트럼 장애와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발달장애 등의 증상이 복합적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의사 소견을 받았다. 아직 세부 검사를 받지 못한 탓에 연호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지 정확히는 알지 못하는 상황이다.
하루하루 먹고살기 벅찼던 가족들은 뒤늦게 말문이 트이는 경우도 있다는 말을 철석같이 믿었지만, 연호의 입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까지도 쉽게 열리지 않았다. 말을 걸어도 좀처럼 입을 열지 않은 채 빵긋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그런 연호를 지켜보는 여든두살 할머니의 눈에는 막막함과 걱정스러움이 배어났다. 약한 치매 증상이 있는 할아버지는 “2학년 때까지 해 먹이면 정신이 안 돌아오겠나 싶기도 합니다. 학교에서 자꾸 키와나가면 딴 아들하고 ‘레베루’가 같이 따라가지 않겠습니까. 우리 연호 바보 아입니다”라는 말을 여러차례 했다.
연호는 태어나자마자 어린이집에 맡겨졌다. 연호 엄마는 아이를 낳고 닷새 만에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아빠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로 핏덩이를 돌볼 여력이 없었다.
몸이 아파 제 몸 하나 가누는 것도 벅찬 조부모의 상황도 다르지 않았다. 어린이집 종일반 시간이 끝나면 그제야 연호는 할머니·할아버지 품에 안겨 집으로 왔다. 밤이 되면 일과를 마치고 퇴근한 고모 셋이 집으로 와 육아를 도맡았다.
힘은 들었지만 가족들에게 연호는 큰 행복이었다. 연호의 할머니는 “태어나자마자 면사무소에서는 위탁가정에 주라 이카는데, 차마 그러지를 못하겠어요. 몸은 어떨지 몰라도 마음이 안 편할 것 같아가 그래 들고 와서 키웠지만, 연호 크는 재미로 지금껏 살았습니다”라고 했다.
연호의 집 거실 한쪽 벽면은 연호의 아기 때 사진으로 빽빽했다. 돌잔치 사진 속 연호, 그리고 연호를 안고 있던 할머니·할아버지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연호를 보는 가족들의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연호가 다른 아이들과 다른 면모가 있다는 점이 조금씩 뚜렷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래 아이들이 완벽한 문장으로 대화가 가능한 데 반해 연호는 언어 발달이 많이 늦다. 학교에 들어가기 전인 작년에야 자기 이름을 말했다. 연호는 “안녕하세요”와 같은 짧은 문장이나 간단한 단어 정도만 말할 수 있고 대부분의 의사소통을 몸짓이나 손짓으로 대신한다.
‘좋아하는 반찬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연호는 말 대신 손으로 ‘오’(O) 또는 ‘엑스’(X) 자를 그리며 대답을 대신했다. 연호의 지적 수준은 3~4살 정도로 추정된다고 한다. 가족들은 부모의 부재가 영호에게 나쁜 영향을 미친 것만 같아 가슴이 아프다.
힘이 부치는 건 가족들도 마찬가지다. 말을 못 하는 연호가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 수 없으니 눈대중으로 연호의 마음을 헤아리는 수밖에 없다.
요즘 가족들의 큰 고민은 ‘밥’이다. 연호가 끼니 때마다 좀처럼 밥을 먹지 않아 건강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연일 노심초사하고 있다. 연호의 고모는 “학교에 가서 봐도 밥을 몇 숟가락밖에 안 먹는다”며 “우유나 요구르트가 거의 주식이라고 보면 된다. 아무리 밥을 먹이려고 해도 절대 입을 벌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연호의 할아버지는 앙상한 연호의 팔뚝을 들어 보이며 “뼈다구만 보인다”며 “밥을 하도 먹지 않으니 보약을 지어 먹일 정도”라고 말했다.
연호 집 현관문에 붙어 있는 낱말카드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반면 연호의 행동은 말보다 빠르다. 사람을 좋아하는 탓에 쉽게 다가가고, 거리낌 없이 상대를 만지고 안기도 하며, 정도가 심하면 놓아주지 않기도 한다.
이런 연호식 ‘표현’이 또래 친구들 사이에서는 거부감을 일으켜 갈등으로 이어진다. 벌써 고모들이 학교에 불려가기만 수십번이다. 연호가 다니는 학교에서는 연호의 돌발 행동을 통제하기 위해 ‘보조교사’(사회복무요원)까지 전담으로 붙였지만, 이마저도 해당 사회복무요원의 퇴소로 어렵게 됐다. 학교에서는 가족들이 학교로 나와 연호를 돌봐주길 원하지만, 생계를 내팽개치고 연호에게만 매달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연호가 고학년으로 올라가면 학교폭력을 당하게 되진 않을지도 가족들은 걱정이다. 연호의 고모는 “외로워서 저러나 싶기도 하고, 엄마·아빠가 없어 애정결핍이 생긴 건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며 “좀 더 크면 학교폭력에 노출되기 쉬우니까 걱정이 되고 그래서 의사 선생님도 특수학교 진학을 권유한다”고 말했다.
연호는 증상에 비춰 볼 때 진단과 치료가 모두 늦어진 편이다. 6살 이후로도 말문이 트이지 않아 병원 검사를 받았지만, 자기공명영상(MRI) 촬영 등 세부 검사로까진 이어지지 못했다.
정기적으로 받는 치료는 인근 장애인복지관에서 주 1회씩 받는 언어 치료가 전부다. 연호에게는 언어 치료뿐만 아니라 행동 치료와 인지 치료, 약물 치료 등이 추가로 필요하다. 특히 약물 치료의 경우 치료 시기가 1년이나 늦어진 상태라고 한다.
연호를 돕고 있는 사회복지단체 ‘굿네이버스’ 관계자는 “7월 말 장애 판단 및 에이디에이치디 검사를 진행할 예정”이라며 “이후 병원 진료 및 약물 치료를 지속적으로 진행할 예정이고 아동 신체발달검사 진행 뒤 성장에 필요한 치료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비용이다. 1회 40분간 진행되는 언어 치료만 하더라도 5만~8만원 정도 비용이 든다고 한다. 언어 치료는 장기간 꾸준히 받아야 효과를 얻을 수 있는 만큼 장기적으로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현재 연호의 조부모는 모두 80살이 넘는 고령인데다 건강까지 좋지 않아 경제 활동이 불가능하다.
척추협착이 심한 할머니는 스스로 씻는 것조차 불가능해 가족들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지적 장애가 있는 연호 아버지도 지난 3월 폐색전증으로 갑작스럽게 연호 곁을 떠났다. 남은 삼촌·고모들이 연호를 위해 매달 10만원씩 갹출해 저축하고 있지만 이 정도로는 충분치 않은 게 현실이다.
연호가 성장하면서 늘어나는 교육·양육비도 가족들 입장에선 쉽지 않은 문제다. 연호와 조부모는 기초생활수급비 등으로 생활비를 충당하고 있다.
연호의 할머니·할아버지는 무엇보다 자신들이 세상을 떠난 뒤 ‘남겨질 손주’에 대한 염려가 크다. 연호 할아버지는 “나이가 이만큼 먹은 사람들이 언제 죽을지도 모르잖아. 그러니까 우리도 자신을 못 해”라며 “연호 대학교까지 공부시킬라 카면 그래 그게 보통 일입니까?”라고 되물었다. 연호 할머니도 “죽을 때까지 (연호 곁에) 있어야지, 어디 보내고 마음이 편하겠냐”고 했다.
오후 3시. 태권도장 갈 시간이 되자 연호 할아버지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부랴부랴 외출 준비를 했다. 건강이 좋지 않아도, 연호의 등하교 및 등원만큼은 할아버지가 책임진다. 연호가 태권도장을 다닌 것도 벌써 햇수로 4년째다.
할아버지는 태권도장이 말 못 하는 연호에게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법을 가르쳐줄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외롭게 큰 연호가 다른 사람과 어울리다 보면 남들과 비슷해질 수 있을 거라고 할아버지는 생각한다. 할아버지는 허공에 주먹질을 해 보이면서 “관장한테도 주먹질하는 거 가르치는 게 문제가 아니다, 말도 잘하고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길로) 인도해주면 좋겠다고 늘 부탁을 합니다”라고 했다.
연호는 첫 만남 때와 달리 헤어질 시간이 되자 허리를 굽히며 작은 목소리로 “안녕히 가세요”라고 말했다. 발음이 뭉개졌지만, 똑똑히 알아듣기에는 충분했다. 연호의 손을 꼭 잡고 있던 할아버지의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돌았다.
캠페인에 참여하시려면
연호(가명) 학생과 가정에 도움을 주시려는 분은 계좌로 후원금을 보내주시면 됩니다(국민은행 012501-04-327341 예금주: 사회복지법인굿네이버스). 다른 방식으로 도움을 원하시는 분은 굿네이버스 대표번호(1544-7944)로 문의해주세요. 모금에 참여한 뒤 굿네이버스로 연락 주시면 기부금 영수증을 받을 수 있습니다. 목표 모금액은 2000만원입니다. 후원금은 연호네 가정의 주거유지비, 의료 및 교육지원비, 생필붐지원비로 쓰이고 2000만원 이상 모금 되면 연호네 가족처럼 어려운 가정에 지원됩니다.
<보도 이후>
<한겨레>와 월드비전이 함께한 ‘나눔꽃 캠페인’을 통해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세계적인 첼리스트가 되고 싶은 꿈을 가진 지안(가명)이의 사연(<한겨레> 6월7일치 13면)이 소개된 뒤 1310만1019원(7월7일자 기준)의 정성이 모였습니다. 월드비전은 “지안이가 꿈을 잃지 않도록 따뜻한 마음을 보내주신 일시계좌 후원자 194분, 네이버 해피빈 후원자 179분께 감사드린다”며 “소중한 후원금은 지안이와 그 가정에 잘 전달하겠다”고 전해왔습니다. 지안이에게 보내주신 후원금은 지안이의 첼로 레슨비와 내신 성적을 위한 과외비 등으로 전달됩니다. 또한 목표액이 넘는 금액은 지안이와 같은 어려운 상황에 처한 다른 위기가정에 지원될 예정입니다. 지안이의 가정에 따뜻한 마음을 전해주신 모든 후원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심우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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