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파업에 따른 손해배상 책임을 물을 때 참가 주체들의 역할과 책임에 따라 배상 책임을 달리 봐야 한다는 지난 15일 대법원 판결 이후 정치권과 재계에서 수위 높은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대법원은 이례적으로 입장문을 내고 “재판부에 부당한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판결 쟁점을 설명하는 추가 설명자료까지 배포하며 조목조목 반박하기도 했다.
김상환 법원행정처장(대법관)은 19일 ‘대법원의 입장’이라는 제목의 입장문에서 “최근 특정 사건의 대법원 판결 선고 이후 판결과 주심 대법관에 대하여 과도한 비난이 이어지는 상황에 깊은 우려를 표명한다”라며 “판결의 진의와 취지가 오해될 수 있도록 성급하게 주장하거나, 재판부를 구성하는 특정 법관에 대해 판결 내용과 무관하게 과도한 인신공격성 비난을 하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밝혔다. 대법원 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현대자동차가 노동자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사건 상고심에서 “불법 파업에 따른 손해배상 책임은 조합원의 노조 내 지위와 역할 등을 고려해 개별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법리를 제시했다. 재판장은 윤석열 대통령이 임명한 오석준 대법관이었다.
이 판결은 국회에서 논의 중인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의 입법 취지와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 야권과 노동계의 환영을 받았다. 반면에 여권과 재계는 크게 반발했다. 판결에 참여한 대법관들을 원색적으로 비난하기도 했다. 대법원이 입장문을 내기로 결정한 배경이 됐다.
이날 대법원은 “판결을 정확하게 이해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며 현대자동차 손해배상 사건에 대한 국민의힘과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와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등의 지적을 반박하는 추가 설명자료도 냈다.
이들은 대법원 판결이 기업의 입증책임 부담을 높여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효과를 낸다고 주장한다. 과거에는 전체 손해액 입증만 하면 됐는데, 앞으로는 ‘누구에게 얼마를 부담시킬지’까지 자신들(원고)이 입증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대법원은 ‘오독’이라고 설명했다. 대법원은 “기업의 입증 책임에는 변화가 없다”며 오히려 법원의 심리 부담이 늘어날 수 있다고 했다. 기업(원고)은 손해액까지만 입증하면 되고, 이후 법원이 노동조합과 노조원의 책임 정도에 따라 책임 비율을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민법 대원칙과 맞지 않는다는 주장도 펼친다. 민법상 ‘공동불법 행위’는 ‘연대하여 배상’하는 게 원칙이라서 책임에 따라 배상액을 제한해선 안 된다는 뜻이다. 이에 대법원은 “공동불법행위자들 간 공동 배상책임 원칙은 유지한다”라고 밝혔다. 다만 일부 예외를 인정한 과거 판례를 불법 파업 손해배상 사건에도 적용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공동불법행위 사건에서 불법행위자들의 책임을 따로따로 판단한 판례는 드물지 않다. 대법원은 2015년 분식회계를 한 회사 및 임원과 부실감사를 한 회계법인의 책임비율을 동일하게 책정한 것은 부당하다며 사건을 파기 환송한 바 있다. 보이스피싱 현금 전달책과 통장 제공자, 고의로 불법행위를 저지른 중개보조원과 그를 고용한 공인중개사의 책임비율을 달리 제한한 판례도 있다.
‘판례 변경임에도 불구하고 전원합의체에서 심리하지 않고 소부에서 꼼수 판결을 했다’(국민의힘 정점식 의원)는 지적에 대해선 “기존 판례를 변경한 것이 아니라 기존 판례 법리를 쟁의행위 상황에도 적용한 것이라서 판례 변경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정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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