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장을 비롯한 금속노조 관계자들이 15일 오전 서울 대법원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날 대법원 3부는 쌍용자동차가 전국금속노동조합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금속노조가 회사에 33억1천140만원과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한 원심을 깨고 15일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 연합뉴스.
지난 15일 대법원이 노동조합과 노동자에게 불법파업 손해배상 책임을 묻더라도 노동자의 역할과 가담 정도를 개별적으로 따져야 한다는 판단을 내놓자 국민의힘과 재계 쪽에서는 “대법원이 불법파업 해도 된다고 멍석 깔아준 것”이라는 격한 반응이 나왔다. 하지만 여간해서는 ‘합법 파업’이라 인정받기 힘들고, 기업이 주장하는 손해액의 많은 부분이 인정되는 현실은 여전하다는 지적이 노동계에서는 나온다.
■ 불법파업 멍석? 여전히 좁은 ‘합법 파업’의 문
이번 대법원 판결은 현대차 비정규직지회 파업을 ‘불법’으로 봤다. 현대차에 직접고용된 노동자가 아닌 하청노동자여서 파업 ‘주체’가 될 수 없고, 공장을 점거하는 파업 ‘방법’ 역시 정당하지 않다는 원심 판단을 유지한 것이다.
그러나 노조의 ‘불법파업’이 있기 전 회사의 ‘불법파견’이 있었다는 사정은 고려되지 않았다는 점 때문에 노동계에서는 아쉬운 판결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파업의 발단은 파견법상 파견이 금지된 생산공정에 현대차가 사내하청 노동자를 채용한 것이었다. 원청노동자와 같은 일을 하면서도 낮은 처우를 받던 하청노동자들은 2000년대부터 불법파견 문제를 제기했다. 대법원은 2010년 이들 중 한명인 최병승씨가 ‘불법파견’ 상태라는 점을 인정했다. 같은 처지였던 하청노동자들이 파업에 나섰고, 현대차가 대체인력을 투입해 파업을 무력화하는 것을 막기 위해 공장 ‘점거’ 방식으로 파업이 진행됐다.
우리나라의 ‘적법파업’ 기준은 까다롭다. 파업의 주체·절차·목적·방법이 모두 정당해야 한다.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정당성 없는 파업’이 되고, 민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다. 이번 판결로 기업이 노동자를 몰아붙일 수 있는 첫 관문인 ‘불법파업’에 대한 기준은 달라지지 않았다.
‘불법’ 딱지만 붙으면 기업은 노조와 노동자에게 파업에 따른 손해를 배상하라고 요구할 수 있다. 법원은 불법파업을 ‘공동불법행위’로 보고 참가자에게도 ‘연대책임’을 물어왔다. 누군가가 변제할 형편이 못 되면 그 몫까지 나머지 사람들이 책임져야 하는 방식이다.
현대차는 정규직 전환 소송을 포기하고 신규 채용에 합의하는 파업 참가자들을 골라 선택적으로 소송을 취하했다. 그 결과 끝까지 타협하지 않은 노동자들만 막대한 배상액을 짊어지게 됐다. 이 과정에서 노조는 깨지고 노동자는 벼랑 끝으로 내몰렸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조합원 개인’에게 무조건 손해배상 책임을 묻는 것에 일부 제동을 건 데 불과하다. “위법한 쟁의행위를 결정·주도한 주체인 노동조합과 개별 조합원의 손해배상 책임 범위를 동일하게 보는 것은 헌법상 보장된 단결권과 단체행동권을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고 본 것이다.
개별 파업 참가자에 대한 ‘보복 수단’으로 남용되는 것만 막았을 뿐, 노조에 대한 과도한 손해배상 소송은 여전히 가능하다. 영국 등은 노조가 불법행위를 저질러도 손해배상 소송이 ‘노조 붕괴’를 초래하지 않도록, 노조 규모에 따라 청구 가능한 배상액의 상한을 법으로 정한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기업의 손해액 산정에 일정 부분 제한을 가하긴 했지만, 수십억원대 배상액을 대체로 인정했다. ‘파업이 없었다면’ 벌어들였을 매출과 그 기간의 고정비를 모두 손해로 추정하는 1993년 대법원 판례의 골격을 유지했기 때문이다.
‘고정비 손해’ 판례는 “파업은 원래 영업을 못 하도록 막는 것이기에 고정비를 손해로 산정하는 것은 파업 자체를 부정하는 시각”(김제완 고려대 교수)이라는 비판을 꾸준히 받아왔다.
<한겨레> 취재 결과, 대법원은 이번 판결을 앞두고 ‘고정비 손해 산정법’ 등의 쟁점을 전원합의체에 올려 논의했으나, 판례 변경 없이 소부에서 기존 판례를 적극 해석하는 것으로 결론 냈다. 파업 이후 노동자들이 연장·휴일근로 등을 통해 생산량을 늘려 부족분을 만회했다면 손해 산정에 고려해야 한다는 판단이 나온 배경이다. 노동자의 힘으로 ‘불법파업’ 배상액을 줄일 수 있는 길을 뚫어준 정도의 의미를 갖는다.
이번 대법원 판결에도 노조가 짊어진 짐은 여전히 무겁다. 대법원 판결 이후 시민단체 손잡고는 “파업의 책임을 노동자들에게 전가한 손배 제도의 본질적인 문제는 고스란히 남았다. 손해배상 소송이 남용된 현실도 제대로 지적하지 못했다”며 “노란봉투법의 입법을 통해 노동자의 권리가 보장되고 사법 판결의 부족한 점을 채워야 한다”고 밝혔다.
이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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