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대법원이 사측의 노조에 대한 손해배상소송에 대해 일부 승소 선고를 받은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차노조 지부장과 엄길정 현대자동차 해고노동자가 참가한 가운데 19일 오전 서울 민주노총 회의실에서 열린 손해배상 대법원 판결 당사자 특별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13년이 흘렀지만 고통은 그대로입니다. (압류가 두려워) 재산 하나 내 이름으로 할 수가 없습니다. 현대차는 아직 남아 있는 1500명 비정규직 문제를 교섭하자는 세 차례 공문에도 (현대차 울산공장) 출입조차 허락하지 않습니다. 대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엄길정 현대자동차 해고노동자는 19일 노조법 2·3조 개정운동본부가 연 기자회견 자리에서 현재진행형인 손배가압류의 고통을 이렇게 이야기했다. 엄씨는 2010년 현대차 정규직으로 비정규직의 불법파견 저지 파업(불법파견 파업)에 연대했다가 20억원의 손해배상 청구를 당했다.
대법원은 지난 15일 엄씨를 비롯한 현대차 불법파견 파업 참여자들에 대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조합원 개인에 대한 무분별한 손해액 산정을 제한하는 판단을 내렸다. 국회 본회의 표결을 앞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 2·3조 개정안’(노란봉투법)의 취지를 살린 판결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면엔 당시 파업의 배경이 된 회사 쪽의 불법 파견과 이에 대한 원청의 교섭 거부에 대해선 대법원이 별다른 판단 없이 오직 ‘점거’라는 형식을 이유로 위법한 쟁의행위로 본 원심 판단을 따른 데 대한 비판도 제기됐다. 장석우 금속노조 법률원 변호사는 “판결문에는 노동자들이 얼마나 절박했기에 점거까지 나아갔을까 하는 고민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날 기자회견 참석자들은 애초 격렬한 파업을 유발하는 회사 쪽의 교섭 거부와 기업의 불법 행위를 들어 이를 막을 수 있는 노란봉투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윤지선 손잡고(손배가압류를 잡자! 손에 손을 잡고) 활동가는 “손배 소송 기록에 드러나는 쟁의행위 원인 대다수가 노조와 합의 없는 정리해고, 교섭 거부 등 사용자의 불법행위”라며 “20년 전 손배가압류로 목숨을 잃은 배달호(두산중공업), 김주익(한진중공업) 열사의 유서를 보면, 회사와 교섭이 가능했다면 어땠을지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노란봉투법은 2조에서 교섭에 응해야 할 사용자의 범위를 ‘근로조건을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로 넓혔다. 사내하청 등 비정규직과 특수고용 노동자의 교섭권을 확대하는 취지다. 교섭 차단→격렬한 갈등→손해배상 청구→노동자의 죽음과 사회적 갈등으로 이어지는 현재 같은 악순환을 막자는 것이다.
방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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