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단체 ‘비정규직 이제그만 공동투쟁'이 지난 10일 오전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날 대법원 앞 야간문화제와 노숙농성을 강제 해산한 경찰의 대응을 비판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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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파업으로 인한 기업의 손해액은 얼마인가’와 ‘결정된 손해액을 누가, 얼마큼 부담할 것인가’는 노동조합과 파업 참가자들을 오랫동안 괴롭혀온 문제다. 두 쟁점에 대해 15일 대법원이 ‘손해액 산정은 엄격하게’ ‘손해액 부담은 주체별 책임에 따라 제한’이라는 두가지 원칙을 제시하면서 기업의 ‘노조 옥죄기’용 소송에 제동이 걸리게 됐다. 다만 전원합의체 판결로 새 판례를 제시하기보다는 기존 판례를 ‘적극 해석’하는 방식이어서 결국에는 ‘노란봉투법’ 등 입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제까지 법원은 불법파업에 따른 기업의 손해를 따질 때 ‘공장 점거는 곧 고정비 손해’라는 주장을 인정해왔다. 공장이 멈춘 동안에도 고정비는 지출되는데, 생산적인 활동을 하지 못했으므로, ‘고정비만큼 손해’라는 논리였다.
2013년 7월12일 금속노조 현대차 비정규직지회의 공장 점거 파업에 대해 현대자동차가 제기한 손배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원심은 현대자동차가 주장하는 조업 중단 시간(63분)에 대한 고정비 4625만원 전부를 손해로 인정했다.
하지만 이날 대법원은 조업이 멈췄다 해도 실제 매출이 줄어들었는지를 따져봐야 한다고 봤다. 재고가 충분해 매출이 줄지 않았을 수 있고, 파업 이후 노동자들이 연장·휴일근로 등으로 생산량을 늘려 부족분을 만회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기존 대법원 판례에서 인정하던 제품 결함 등 ‘따져볼 것’들에 ‘실제 매출이 줄었는지’도 추가해야 한다는 취지다.
‘파업 참가 주체들 간 공동책임이어도 각 주체별 책임을 따져보라’는 판단도 의의가 있다. 법원은 불법파업을 민법상 ‘공동불법행위’로 본다. 민법은 여러명이 공동의 불법행위로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때에는 ‘연대하여’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규정한다. 법원은 회사 임원들의 손해배상 책임을 따질 땐 공동불법행위라 해도 개인별 책임을 따져 손해액을 산정한다. 법원은 ‘집합체’라는 노조 특성을 이유로 노조와 조합원에 대해서만 해당 법리를 적용하는 데 소극적이었다. 수도권 한 부장판사는 “하급심 판사들에게 ‘다른 손해배상 공동책임 판단할 때 하던 대로 노조 조합원들에게도 적용하라는 취지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일부 회사들은 ‘연대하여 배상하라’는 조항을 악용해 파업 참가 노동자들을 괴롭히곤 했다. 특정 개인에 대해 소를 취하해도 전체 인정 손해배상액은 줄어들지 않기 때문에 끝까지 남은 사람들이 모든 책임을 떠안는 구조가 가능했다. 남은 이들을 고립시키는 ‘보복 소송’이 횡행했던 이유다.
이날 대법원이 파기환송한 현대차 비정규직지회의 점거 농성에 대한 손배소가 대표적인 사례다. 애초 조합원 29명에 대해 소를 제기한 현대차는 신규 채용에 합의한 이들에 한해 ‘선별적으로’ 소를 취하했다. 결국 피고 명단에는 최종 4명이 남아 배상액 20억원을 모두 떠안게 됐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 판결을 뒤집어 노동자의 역할과 책임에 따라 손배 책임을 다르게 정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번 판결은 대법관 4명의 의견이 일치해야 하는 소부 재판부(대법원 3부)에서 나왔다. 주심인 노정희 대법관을 비롯해 안철상·이흥구·오석준 대법관 등 4명이 판결에 참여했다. 지난해 11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로 넘어갔다가 다시 소부로 되돌아오는 ‘소부→전원합의체→소부’를 거쳤다. 김명수 대법원장과 대법관 등 모두 13명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는 소부 대법관 4명이 의견을 합치하지 못하거나 사회적 주목도가 높은 경우, 판례를 변경할 필요가 있는 경우 등에 열린다.
이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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