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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사설] 노란봉투법 힘 실어준 대법, 대통령 거부권 명분 없다

등록 2023-06-15 18:10수정 2023-06-15 18:38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장을 비롯한 금속노조 간부들이 15일 오전 서울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대법원 3부는 쌍용차가 금속노조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회사에 33억1천140만원과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 연합뉴스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장을 비롯한 금속노조 간부들이 15일 오전 서울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대법원 3부는 쌍용차가 금속노조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회사에 33억1천140만원과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 연합뉴스

쟁의행위에 가담한 개별 노동자에게 무차별적으로 손해배상 책임을 물어서는 안 된다는 취지의 대법원 판단이 15일 나왔다. 이는 지난달 24일 국회 본회의에 직회부된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의 입법 취지와도 맞닿아 있다. 노란봉투법은 합법적 쟁의행위 범위를 넓히고 파업에 참여한 개인에 대해서는 귀책사유·기여도에 따라 손배액을 산정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대법원의 새로운 법리 제시로 노란봉투법 없이도 유사한 입법 효과가 발생하는 셈이어서, 윤석열 대통령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할 명분도 사라졌다.

대법원은 현대자동차가 사내하청 노동자 4명을 상대로 낸 20억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부산고법에 돌려보냈다.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2010년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며, 현대차 울산1공장 일부 라인을 점거하고 파업을 벌인 바 있다. 1·2심은 이들에게 쟁의행위 정당성을 인정하기 어려워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고 봤지만, 대법원은 새로운 법리를 제시했다. 위법한 쟁의행위를 주도한 노조와 개별 조합원의 손해배상 책임 범위를 동일하게 보는 것은 헌법상 노동자에게 보장된 단결권과 단체행동권을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고 본 것이다. 이에 개별 조합원에 대해서는 쟁의행위 참여 정도, 손해 발생에 대한 기여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번 대법원 판단은 기업의 ‘묻지마’식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제동을 걸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동안 노동 현장에선 개별 조합원에게도 가해지는 무차별적 손배소가 노조를 무력화하는 수단으로 쓰이는 동시에, 경제적 고통이 가중된 노동자들이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현대차 사건에서도 회사 쪽은 정규직 전환 소송(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을 하지 않기로 한 파업 참가자에 대해서는 소를 취하하는 이중 전략을 썼다. 대법원은 이날 또 다른 상고심 사건에서 파업 이후 추가 생산을 통해 감소분이 만회됐다는 점이 증명되면 회사 쪽이 주장하는 손해액을 그대로 인정하기 어렵다는 취지의 법리도 새롭게 제시했다. 천문학적 규모로 진행돼온 기업의 손배소에도 경종을 울린 셈이다. 앞으로 국회 본회의 문턱에 와 있는 노란봉투법의 입법에도 좀더 힘이 실릴 전망이다. ‘불법 파업을 조장한다’는 경영계에 편승해온 집권 여당도 대법원 판단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국회 입법에 적극 협조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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