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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부역 혐의’ 몰려 가족 9명 총살”…70여년 만에 빛 본 원혼들

등록 2023-03-08 08:00수정 2023-03-08 09:27

진실화해위원회 아산 성재산 유해 발굴 개토제
국가기관이 직접 나선 건 이번이 처음
7일 충남 아산시 배방읍 공수리 성재산 옛 방공호 터에서 열린 ‘아산 부역혐의 희생사건 유해 발굴 개토제’에서 유족대표 맹억호(오른쪽)씨가 초헌을 하고 있다. 송인걸 기자
7일 충남 아산시 배방읍 공수리 성재산 옛 방공호 터에서 열린 ‘아산 부역혐의 희생사건 유해 발굴 개토제’에서 유족대표 맹억호(오른쪽)씨가 초헌을 하고 있다. 송인걸 기자

“계묘년 2월 갑자일… 빨갱이 가족이 된 이들이 살기 위해 임들의 원한을 가슴에 묻었습니다. 이제 밝은 세상으로 나오셔서 원한을 푸소서.”

7일 오후 2시 충남 아산시 배방읍 공수리 성재산 옛 방공호 터에서 이일용 유족회 부회장이 축을 읽는 동안 초헌관(첫 잔을 올리는 제관) 맹억호(75·유족대표)씨는 마른 통곡을 했다. ‘아산 부역혐의 희생사건 유해 발굴 개토제’는 이렇게 시작됐다.

약 70년 전인 1950년 10월부터 이듬해 1월 사이 이곳은 아산 지역 부역혐의자로 몰린 380여명(추정)이 집단 희생된 장소다. 맹씨는 세살 때인 1951년 1월6일 이곳에서 가족 9명을 잃었다.

“어머니와 네살배기 누나, 할아버지, 할머니, 삼촌들과 고모가 배방면사무소 창고에 이틀 동안 갇혀 있다가 (여기서) 총살당하셨어요. 남자아이 1명만 보내준다고 해 웅재(당시 13살) 삼촌만 살았지요.”

살아남은 웅재 삼촌은 가족과 동네 주민들의 마지막 모습을 맹씨에게 수도 없이 말했다고 한다. 그는 “웅재 삼촌은 이후 고려대 법대에 진학했으나 부역자 가족이라는 이유로 평생 꿈을 펼치지 못했다. 마음 아파 못 온다고 고향에 발길 끊은 지 오래”라고 말했다. 맹씨의 아버지는 재판을 받고 무죄로 풀려난 뒤에야 가족 소식을 듣고 화병이 나 이내 세상과 이별했다고 한다.

맹씨의 고향인 배방읍 휴대리 1에는 여덟집 제사가 한날이다. 비슷한 슬픔을 간직한 이웃이 여럿이란 얘기다. 고발자 후손과 희생자 후손은 소 닭 보듯 산다고 한다.

박선주 충북대 명예교수(원 안)가 7일 충남 아산시 배방읍 공수리 성재산 옛 방공호 터에서 열린 ‘아산 부역혐의 희생사건 유해 발굴 개토제’에서 참석자들에게 발굴 일정 등을 밝히고 있다. 송인걸 기자
박선주 충북대 명예교수(원 안)가 7일 충남 아산시 배방읍 공수리 성재산 옛 방공호 터에서 열린 ‘아산 부역혐의 희생사건 유해 발굴 개토제’에서 참석자들에게 발굴 일정 등을 밝히고 있다. 송인걸 기자

이날 개토제는 지난해 5월 아산시가 이곳에서 시굴을 해 유해 일부와 탄피를 발굴하는 등의 성과를 내자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유해 발굴에 나서기로 결정하면서 열렸다. 한국전쟁 부역혐의 관련 집단 희생자 유해 발굴 작업은 주로 지방자치단체나 시민단체가 나섰을 뿐 국가기관이 직접 나선 건 이번이 처음이다.

발굴을 맡은 박선주 충북대 명예교수는 “시굴에서 나온 유골은 성인 남성의 허벅지뼈와 여성이나 어린이의 정강이뼈 등이다. 유골과 함께 발견된 탄피는 카빈총과 일본군 99식 소총탄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유해 발굴 작업은 앞으로 4주 동안은 성재산, 그 뒤 2주는 또 다른 학살지인 염치읍 백암리에서 진행된다. 유골은 감식을 거쳐 대전 산내 골령골에 조성 중인 산내평화공원에 봉안될 예정이다.

7일 충남 아산시 배방읍 공수리 성재산 옛 방공호 터에서 열린 ‘아산 부역혐의 희생사건 유해 발굴 개토제’에서 유족대표 맹억호(왼쪽 셋째)씨 등이 시삽을 하고 있다. 송인걸 기자
7일 충남 아산시 배방읍 공수리 성재산 옛 방공호 터에서 열린 ‘아산 부역혐의 희생사건 유해 발굴 개토제’에서 유족대표 맹억호(왼쪽 셋째)씨 등이 시삽을 하고 있다. 송인걸 기자

앞서 아산시는 희생자 유해 발굴에 나서 2018년 배방읍 중리에서 208구, 2019년 염치읍 백암리에서 7구를 각각 수습한 데 이어 2020년 희생자 전수조사를 해 1304명이 숨졌다고 밝힌 바 있다. 김도훈 아산시 과거사지원업무담당은 “배방읍 수철리 폐금광 등 10여곳에서도 20~30여명씩 희생됐다”고 말했다.

발굴 담당 기관인 한국선사문화연구원의 우종윤 원장은 “희생자 유골 발굴은 국가가 유족에게 드리는 첫번째 위로이며 치유를 위한 첫걸음”이라며 “영혼이나마 정상적으로 모셔질 수 있도록 발굴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송인걸 기자 ig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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